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쵸 Feb 22.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30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12

  <탈출까지 D-93~D-71:번따새의 헌팅기 3/히치하이킹>



  <60살 어린 아들보다 20살 많은 은교>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기다란 조리대에 반쯤 엎드려 있었다. 어안이 벙벙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였다.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다시 오일쉐어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과 막막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하품이 쏟아졌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내 양 옆구리를 푹 찔렀다.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오르며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노인이 있었다. 내가 굳어서 눈만 깜빡대자 노인이 웃었다. 가뜩이나 자글자글한 노인의 얼굴에 깊게 고랑이 패었다.

  "얀~~"

  노인은 히마리 없는 늦여름 모기처럼 다 꼬부라진 혀를 굴렸다. 불쾌감이나 모욕감 같은 구체적인 감정보다는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변태처럼 웃으며 계속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노인도, 바보처럼 굳은 내 몸도, 노인과 유아의 흔적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괴한 집구석도. 마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서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유리된 것처럼.

  "잇츠 얀~~~~"

  노인이 하품하는 흉내를 냈다. 나는 하품이 영단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기점으로 yawn은 깊게 각인되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한 명 지나가기도 비좁은 통로, 내가 허리를 숙이고 있어 더 비좁았을 그곳을 일부러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리고 내 뒤에 서서 양 옆구리를 찔렀다. 거리, 위치, 자세 모두 성행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성적인 의미가 잔뜩 함의된 행동임은 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양공장에서 평생 일해 모은 돈을 베트남에서 여자를 사 오는데 쓸 정도로 여자에 미친놈이니까. 그런 주제에 그런 짓을 한 이유가 '하품'이 영어로 뭔지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다니.

좁다! 내 취업길보다 더 좁다!

  "잇츠 야아아안~~~ 유 얀~~"

  어떤 말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너 하품했잖아'라고 웃으며 반복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살의가 얼굴에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빤히 그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웃음으로 여유를 가장한 채 자리를 떴다. 마치 성희롱성 농담을 하고서 재빨리 치고 빠지는 중년 부장처럼.

  머릿속에는 '왜?'가 둥둥 떠다녔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다 죽어가는 송장한테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심지어 그는 아주 유쾌한 농담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도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한 척을 했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인지부조화 때문에 나는 오래오래 여운에 잠겨야 했다. 

  어느 날은 불쑥 화가 났다. 노인을 죽이고 싶었고 한마디 쏘아붙이지 못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내 정신은 자꾸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최소한 한국어로 욕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일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골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도 내가 노인에 대한 증오를 몇 차례 표출하자 단칼에 잘랐으니까. '나는 당한 게 없어서 앙금 없어.'라고. 내 상처는 남에게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 아예 입을 닫았다. 내 복수는 직접 하리라 다짐하고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 밤이면 잠금장치 없는 방 문이 열릴까 잠도 잘 이루지 못했으면서.


  <이별조차 쉽지 않은 곳>

  이튿날 아침, 얼른 돈을 주고 안전 이별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노예들로 북적이는 탈의실에서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빠져나왔다. 컨테이너 굴뚝에서 나오는 증기가 어두운 하늘과 대비됐다. 암울하고 눅눅한 풍경에 절로 '가기 싫다' 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적응은커녕 매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드는지.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억지로 발걸음을 떼는데 굿가이가 짜증과 당혹감이 섞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큰일 났어! 돈 잃어버렸어!"

  그는 20불 중 지폐 한 장이 주머니에서 빠진 것 같다고 했다. 구색에 가까운 헐거운 죄수복 주머니는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물건이 빠지기 일쑤였다. 휴대폰같이 무겁고 큰 물건도 예외는 아닌데 돈은 어떻겠는가.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미 그도 본인의 경로를 되짚어봤지만 흔적조차 없었다고 했다. 어제 내가 '내' 돈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을 당했는가가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었다.

  "그냥 가만있어보자. 말하면 주고. 솔직히 걔네 너무 괘씸하잖아."

  부정할 수 없었다. 총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름없지 않았는가. 잃어버린 10불을 다시 채우면 하루치 이용료가 15불인 셈이 된다. 가난한 통장 잔고,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여서 더 솔깃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한국인도 몇 없는 여기서 내 행동으로 집단 전체가 싸잡히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추잡해지는 걸 택하기에 10불은 너무 쌌다.

  곱창을 뒤집으며 중간중간 바깥방 동태를 살폈다. 밀린 곱창을 해치우고 다음 곱창까지 시간 여유를 확인하고서야 닐람에게 갈 수 있었다.

  "미안한데 오늘 챙겨 온 20불 중에 10불을 잃어버렸어. 괜찮으면 내일 줘도 될까?"

  "괜찮아, 안 줘도 돼. 신경 쓰지 마."

  닐람은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괜찮으니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 잘했다. 내 앞에 산재한 여러 문제들은 여전했지만 일단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세상은 살만한 곳, 하지만 별로 살고 싶지 않다네>

  다시 우버와 택시를 타던 생활로 되돌아오니 출퇴근권이 보장됐던 하루가 한 여름밤의 꿈같았다. 그래도 우버로 출근은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퇴근이었다. 우버가 있어도 잡히지가 않았다. 간신히 잡혀도 도착 예정 시간이 18분 뒤, 26분 뒤라고 뜨기 일쑤였다. 먼지 풀풀 날리는 몽골 사막에 앉아 차를 타고 떠나는 무리들을 바라볼 때면 질투와 박탈감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다. 내가 저 차 크루였어야 해... 저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해...

  도축공장에서 일하려면 필수인 큐피버를 맞은 날, 퇴근 시간에서 고작 한 시간 지났는데 우버가 전멸이었다오전조는 퇴근했고 마감조는 일하는 시간이라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이게 사람 사는 곳 맞냐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걸었다. 허허벌판 유배지에는 인도도 없어서 종아리께까지 억세게 자란 풀밭 위로 걸어야 했다. 간간히 대형 트럭이나 특수차량이 빠르게 옆을 스쳐갔다. 강렬한 햇빛에 인상이 절로 써졌다. 마치 '안 나가떨어지고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이 있었다. 집까지 태워주고, 읍내에 들러야 한다고 하니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데려다주겠다 하고, 가던 길도 되돌아와 태워주고, 친구들에게 오일 쉐어를 물어봐 주기도 했다. 전쟁통에도 사랑이 싹트고 진흙탕 속에서도 꽃이 피듯이 시궁창 같은 더보살이에도 간간히 희망은 있었다. 깃털방의 캐롤과 신디, 하베스트 2층의 졸로와 그 친구, 중국인 남자, 콜드룸 안나 등...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가 없는 호의들, 그 덕에 버틸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호의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면 더 빨리 도망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간간히 접하는 선인의 위로만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더보는 지옥이었기에.

  장장 2주 반동안 숱하게 헌팅과 실패를 반복한 끝에 오일 쉐어를 구했다. 졸로가 콜드룸에서 일하는 브라이언을 소개해준 덕분이다. 브라이언의 차는 브라이언과 운전자 시저, 또 다른 필리핀 친구까지 총 세 명이 이용하고 있었다. 뒷 좌석에 세 명이 끼어 타야 해서 불편했지만 그래도 카시트랑 타는 것보다 쾌적했다. 게다가 금액도 첫 번째 오일 쉐어의 절반이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플레이리스트였다. 항상 브라이언의 차에서는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하나는 위켄드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정체 모를 뽕끼 가득한 노래였다. 영어는 아닌데 멜로디가 익숙해서 아마추어가 커버한 곡인가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곡은 샘 스미스의 Too good at say good bye였다.) 싸이월드 눈물셀카를 뛰어넘는 자아도취, 감정 과잉, 소몰이 창법, 느끼한 음색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출근길, 어둠 속을 가를 때도 구슬픈 부르짖음을 들어야 했고, 퇴근길, 양 떼 목장을 지날 때도 구슬픈 부르짖음과 함께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클라이맥스 부분을 따라 부르고 있었고,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차에 오를 때마다 제3국 가수가 부르짖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저의 플레이리스트가 바뀌는 것보다 내 처지가 더 빨리 변했다. 노인이 날 집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뽕삘 샘스미스에 뇌가 절여진지 정확히 2주 만의 일이다. 다시 집과 오일 쉐어를 구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뭐 하나 쉽게 풀린 적 없었다. 사소한 일들도 매번 어긋나 해결하기에 바빴다. 어쩌면 당장 도망가라는 계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남는데 급급한 나는 힌트들을 외면했고, 그 후에 복리처럼 더 큰 재앙이 찾아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짚어보는 게 무색하게 나는 이미 한참이나 잘못 꿰어진 궤적에 서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