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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Apr 04.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32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14

   <탈출까지 D-75:인도집 인스펙션>



  <은교가 썅년이 되기까지 단 몇 초>

  매일 밤 각자 소음을 만들기 바빴던 콩가루 집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집안 돌아가는 꼴을 읽은 건지, 자식 붙잡고 험담을 한 건지는 몰라도 아손마저 더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제가 그린 그림을 자랑하기 위해 남의 방문을 마구 두드려대던 눈치 없는 녀석이었는데... 이 폭풍 전야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서로가 서로를 없는 취급 했다.

  이사까지는 일주일이 남았고, 적은 공급 안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많았다. 오일 쉐어, 치안, 도보권(40분...)에 마트가 있는지 등등.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오일 쉐어였다. 최선은 브라이언의 차를 계속 타는 것이었고, 그럴 수 없다면 오일 쉐어를 구하기 용이한 곳으로 가야 했다. 아니, 사실 이것저것 따질 처지도 아니었다. 일주일 안에 집을 못 구하면 가든 여인숙으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노인이 또 수 틀리게 되면 더 빨리 쫓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환승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처럼 조용히, 가능한 한 빨리 '보험'을 찾아야 했다.

이미 맥도날드에서 1차를 하고 왔다

  인터넷도 잘 안 터지는 양공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집을 찾고, 퇴근 후에는 짐을 줄이기 위해 한 상 거하게 차려 먹었다. 며칠 전, 빵이나 과자로 대충 때우던 날들을 참회하며 쌀 10kg와 고기를 잔뜩 사 왔기 때문이다. 머슴도 손사래를 칠 만큼의 밥을 먹으며 다짐했다. 새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으리라. 건강이고 나발이고 과자 쪼가리로 연명하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보살이에 무엇도 투자하지 않으리라.


  <이력서에 쓸만한 특기:욕, 무단횡단>

  카시트 사건 이후로 다시는 인도와 엮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인스펙션 약속으로 이어진 건 인도네 집이 유일했다. 마른기침을 할 때마다 죽음의 기운을 뿌리는 발정 난 노인과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인도인... 지금 회사보다 낫기를 바라며 이직했어도 새 회사에는 또 다른 개 같음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새 유형의 고통으로 돌려 막아가면서라도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듯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를 취해야 했다. 재클린 드라이브 29의 공식 X 년이 된 은교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월요일, 인도네 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신념을 지키며 살기 어려운 더보이기에.

  인도네 집은 더보의 두 번째 핫플인 오라나몰 근처에 있었다. '몰'이 붙었다고 스타필드나 더 현대 같은 대형 쇼핑몰을 떠올렸다면 잊어라.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덩그러니 있는 이마트를 상상하라! 이마트가 어떻게 핫플이 될 수 있냐고? 평일 3시만 돼도 온 두보인들이 죄다 오라나몰로 모여드는데 어찌 핫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여기 살면 장 보기는 쉽겠지. 재클린 드라이브에서는 노인의 차를 얻어 터거나 주말에 읍내에 나간 김에 장을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오라나몰까지 가는 길에는 신호등이 하나도 없었다. 차에 치이기를 각오하고 두어 차례 길을 건너 장을 보고 나면 또다시 목숨을 걸고 횡단을 해야 했다. 마트에 갈 때마다 명줄이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스릴 가득한가. 호주에서 는 건 욕과 무단횡단 실력뿐이지만, 그런 내게도 오라나몰 코스는 고난도였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은 내 무단횡단 실력을 호주인급으로 성장케 했다.

카트 끌고 무단횡단도 껌 (사진은 인도)


  <인도를 욕하지 않는 사람은 인도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뿐이다>

  칙칙한 갈색 벽돌집이 늘어선 윌러스 레인에 흐린 하늘까지 끼얹자 암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중 인도집의 녹색 줄무늬 차양은 유독 꾸질꾸질해 보였다. 한숨을 내쉬고는 인도네 집으로 발을 들였다. 인도 부인과 두 명의 자식들이 나를 맞았다. 인도 부인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어려 있었고, 애들 또한 쭈뼛대며 낯선 이를 탐색했다. 그리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시트 사건 이후로 인도를 향한 깊은 불신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인도네 집은 인도가족의 구역과 세입자의 구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인도네 구역인 거실에는 대형 티비와 푹신한 소파, 그리고 장식용 러그가 깔려 있었다. 그 뒤편에 있는 두어 개의 문 너머에는 킹 사이즈 침대를 비롯한 각종 소품이 즐비해 있었다. 입주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낮에는 인도애들이 돌고래 소리를 만들었고, 밤에는 인도부부가 서로에게 달라붙어 애정행각을 하기 바빴다.

  세입자들의 구역은 눈에 띄게 단출했다. 방 세 개 중 작은 방은 일본인이, 큰 방은 한국인 두 명이 사용 중이었고, 남은 방이 우리가 보러 온 방이었다. 체리 몰딩을 연상시키는 고동색 몰딩과 한 번도 트렌드였던 적 없는 벽장, 커다란 창에 달린 빛바랜 커튼... 하지만 이 모든 걸 합쳐도 자주색 침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림판 기본 팔레트에서도 강퇴당하기에 충분한 인도스러운 색은 무엇이란 말인가. 너무도 강렬해서 이불이 없다는 사실도 뒤늦게 인지할 정도였다. 이런 당연한 걸 묻는 것조차 웃기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이불행방을 물었다.

  "이불은..?"

  "있을 리가,."

  인도부인이 머쓱하게 웃었다. 본인도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알아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이 방이 320불 짜리라고? (독방으로 사용 시 350불) 시드니보다 더 비싸잖아! 웃음만 나왔다. 와중에 창문이 분명 닫혀있음에도 차소리가 여과 없이 들렸다. 누군가 창을 깨고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보안과는 동떨어진 이 집의 유일한 보안 요소는 너무도 후져서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보호색처럼.

  "화.. 화장실 보러 가자."

  인도 부인은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노인의 집처럼 인도집 역시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협소한 화장실에는 청소용 호스와 변기, 청소도구, 휴지가 간신히 들어가 있었다. 휴지가 제공되냐고 묻지 않은 건 이런 걸 묻는 것조차 웃기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연히, 당연히 제공된다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휴지는 기존 세입자들이 내돈내산 한 것이었고, 우리가 입주하자마자 화장실은 휴지 없는 화장실로 변하게 된다.

출처:연합뉴스

  "화장실이랑 욕실 청소는 다른 세입자들이랑 번갈아가면서 하면 돼."

  여러 집에 살아본 건 아니지만, 한 번도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 곳은 없었다. 대체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가? 비를 피할 천장이 있고 몸을 누일 바닥이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지경까지 내려가게 생겼다. 이 정도로 눈을 낮춰야 한다면 무소유와 다름이 무엇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이 마지막 설마가 아니었다. 실은 화장실에서 인도의 것은 호스와 변기, 휴지걸이뿐이었으니까. 기존 세입자들은 남의 집 청소를 하기 위해 청소 도구까지 내돈내산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인도이니까!


  <인도부인.. 당신의 코리안 네임은 전청조인가요?>

  부엌은 인도가족과 공유하는 유일한 구역으로, 카레냄새(오뚜기 카레 x, 향신료 가득한 본토냄새)가 진동을 했다. 훗날 기존 세입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한식을 해 먹을 때마다 인도 남편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말라'차례 호통을 쳤다고 했다. 또 어느 날은 밥 먹는 일본인에게 뜬금없이 '너 나가!'하고 강퇴 통보를 했다고도 한다원래도 요리할 생각이 없었지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요리와 멀어졌다. 그렇게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은 나는 매일 저녁 온 집안을 메운 카레 냄새에 고통받게 된다.

  인도부인이 서랍장을 열어 보여주었다. 첫 번째 칸에는 칼 여러 개와 뒤집개 하나가 있었고, 두 번째 칸은 비어 있었다.

  "여기 있는 거 다 써도 되구, 여기도 써도 되고, 자유롭게 쓰면 돼."

  그렇게 말하며 인도부인은 뒤쪽 개수대에 쌓인 식기구와 조리도구, 커피포트를 광범위하게 바라봤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당연히 모든 주방 용품이 제공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워홀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듯이 인도의 지독함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십여 자루의 칼과 뒤집개뿐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세입자들 것이었다. 입후에 인도부인으로부터 '니들이 쓸 수 있는 건 칼뿐임'을 확인사살 당하자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다음날 두 번째 서랍장에는 적선용 머그잔 두 개가 들어있었다. 부엌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걸 어디에 쓰라고. 빗을 선물 받은 대머리가 느꼈을 모욕감이 이런 걸까? 나는 그대로 서랍장을 닫아 잔을 봉인했고, 며칠 뒤 머그잔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조리가 필요 없는 음식 한가득! 아보카도 왜 있냐고요? 칼은.. 아니, 칼만 쓸 수 있으니까...

  컵라면을 잔뜩 사재기했다. 그나마 식사 같으면서 조리를 할 필요 없는 음식은 컵라면이 유일했으니까. 커피포트라도 있는 게 어딘가 위안했지만, 다음 날 커피포트는 사라졌다. 그 또한 세 들어 사는 한국인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들이 왜 남의 물건을 막 쓰냐고 따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모르고 그랬다고 항변조차 못 한 채 부엌은 점점 단출해져 갔다.

  마지막으로 세탁방과 빨래를 말릴 수 있는 안뜰을 확인했다. 비록 건조기는 없지만, 빨래 줄과 빨래건조대가 넉넉해서 괜찮아 보였다. 앞서 수 차례 반복된 패턴에서 짐작했겠듯이 이 또한 기존 세입자들의 내돈내산이었으며, 한국인 세입자는 빨랫줄이라도 사용하고 싶으면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 허락을 받으라고 팁을 전수해 주었다.

  집을 모두 둘러보았을 때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둘러보고 오겠다 말하고 옷가게를 나서듯이 인도 부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둘러보러 간 손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나도 그럴 작정이었다. 하지만 도파민이 넘치는 내 두보살이는 나를 도파민 구렁텅이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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