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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조금 다르다’는 약간은 비합리적인 자신감은 분명 브랜딩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게 ‘나라서’라는 식의 발화는 아무리 수준 높은 어휘로 치장되어 있을지라도 십중팔구 유아적으로 비친다. 새로운 것은 절대 개인의 능력과 개고생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그 개인을 둘러싼 조건, 우연, 주변인들의 기지가 없는 진공 상태의 창작이라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쓰면서도 새삼스럽다. 불특정다수가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에 자아를 너무 많이 드러냈던 경험이 개인적으로도 트라우마로 남아있기에 하는 말이다.
인터뷰 덕후다 보니 내가 하는 작업에 인터뷰가 잦다는 사실이 자못 행복하다. 이번 티빙 오리지널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만들면서 산업에 종사하는 정말 많은 분들을 인터뷰했다. 어떤 창작물에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많은 말들이 촬영을 할 때나 편집을 할 때 내 주변에 좋은 에너지가 되어 돌았다. 분명한 건,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인터뷰에서도 ‘자아 정체성’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거다. ‘중요한 건 사유’라고 하거나,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거나, ‘남겨질 메시지’라고 말하는 많은 크리에이터들.
개인적으로 인류가 창작이라는 행위에 너무 많은 환상과 거품을 부여해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창작을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개념으로 접근하면 그 어떤 랜덤한 업계의 업무 영역에서나 심지어 요리나 의류 수선 같은 생활적인 면에서까지 크고 작게 적용되는 일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대단함에만 속하는 창작은 별로 없다. 개인이 살면서 보고 듣는 레퍼런스는 세상 전부에서 온다.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드는 세상은 지옥이다. 지옥이기만 한 세상에서 어떻게 추진력을 얻고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작은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PR에 대해 나도 늘 고민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중간중간에 얻는 소결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달라’라는 다소 과장된 자신감마저도 모든 결과물의 지분을 주변인들의 노력과 환경 덕으로 돌리는 겸양지덕과 공존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카메라는 무기다’ ‘말 편집은 권력이다’라는 걸 제일 먼저 배웠던 건, 단어 하나의 선택으로 겸손과 자신감을 동시에 갖춘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고 오만함 혹은 자기 비하의 양 극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걸 너무 많은 경우에 선배들이 이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