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명 브랜드 라이마스(LIMAS)에 관해서
인테리어는 패션만큼이나 거대하고 촘촘하게 카테고리화 되어 있는 시장이다. 어떤 룩을 보여주느냐의 문제는 여러 가지 디자인과 기능, 그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디테일로 결정된다. 그런 시장에서 조명은 상의, 하의, 신발처럼 큰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일종의 품목이다. 인테리어에는 조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
그러나 빛과 관련한 얘기라면 조금 달라진다. 우울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의사가 햇빛을 자주 쬐라고 권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조명 디자인 산업이 발달했다. 장사가 잘 카페엔 형광등 대신 은은한 조명이 있다. 빛 아래에서 느끼는 ‘좋은 기분’이 얼마나 중요한 지 설명할 수 있는 예시들이다. 빛은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인 동시에, 어떤 이에겐 삶을 바꾸는 매개다. 라이마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조명 브랜드다. ‘Change your Light, Change your life’는 라이마스가 말하는 빛이다.
“바뀐 게 없습니다. 조명만 달았는데 좀 괜찮은 느낌이 들죠? 삶은 그렇게 바뀌는 것 같아요.” 라이마스의 곽계녕 대표가 사진 2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30평대 아파트의 평범한 식탁 사진이었다. 한 장은 형광등이, 한 장은 펜던트 조명이 달려 있었다. 눈을 해치는 형광등의 쨍한 빛과 펜던트 조명에서 은은하게 내려오는 빛은 그 감도부터가 다르다. “친누나 집이에요. 제가 직접 달았어요.” 라이마스는 고급스럽고 견고해 보이는 네이밍 때문에 서구에서 온 브랜드라는 느낌을 받기 쉽다. 사실 라이마스는 청계천 출신 브랜드다. “라이마스(LIMAS)를 거꾸로 뒤집어 읽으면 삼일(SAMIL)입니다.” 곽계녕 씨는 1973년 청계천에서 태어난 조명 회사 ‘삼일조명’ 대표의 막내아들이다.
삼일조명이 호황기를 누린 1970~80년대는 국내 경기가 급격히 호재로 돌아서던 때였다. 그때는 집집마다 거실의 정중앙,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큐빅 장식이 화려한 샹들리에를 다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 삼일조명이 선보였던 풍성한 샹들리에 조명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쇠락이 생각보다 빨랐던 게 문제였다. 도시 밀집 현상이 일어난 1990년대부터 사람들은 아파트를 선호했다. 층고가 낮은 아파트에선 샹들리에보다 천장에 딱 붙어 있는 형태의 형광등이 인기를 얻었다.
2010년 삼일조명이 경영난으로 폐업을 결정했을 때 곽 대표는 미국에 있었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전공에 맞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곽 대표는 그 길로 가업을 잇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청계천 일대를 중심으로 가업을 잇고 100년 가게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그렇듯이, 곽계녕 대표에게도 조명은 뿌리 같은 존재였다.
삼일조명이 문을 닫을 뻔한 이유는 삼일조명보다 더 값싼 가격에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파는 회사가 너무 많아서였다. 기술력은 더 우수했지만 그걸 사람들에게 잘 알리지 못했다. 곽계녕 대표는 브랜딩과 마케팅, 디자인의 영역에 동시에 접근했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질 좋은 국산 조명이란 점은 삼일조명이 다른 브랜드들과 크게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먼저 곽 대표는 건축을 전공하며 단련했던 미감으로 타 브랜드와 차별화될 수 있는 예쁜 조명을 출시했다. 에어(Air)였다. 곽 대표가 가족, 친척, 지인의 집에 찾아가 직접 조명을 달아주고 사진을 찍어 웹으로 홍보했다. 더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으려고 밤새 유튜브를 보면서 사진 공부도 했다. 에어는 잘 팔렸다. 연매출 상승폭이 10배나 됐다.
라이마스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는 삼일조명 대표의 막내아들이 그다음 과제들을 바르게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넘친다. 라이마스가 만드는 모든 콘텐츠는 제품이건 사진이건 영상이건 모던하다. 그런 방식으로 라이마스의 조명이 만들어지는 섬세한 과정과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라이마스는 리브랜딩에 성공했다. 조명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로컬 가구 브랜드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건축가 그룹, 셀렉 숍을 기반으로 시대에 걸맞은 브랜드로 재탄생하는 중. 청계천에서 시작해 국내 인테리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이 브랜드의 꿈은 ‘100년 가게’다. 어쩌면 라이마스의 빛은 개인의 삶이 아닌 국내 로컬 브랜드의 경로를 다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리빙센스> 매거진 8월호에서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