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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정 Mar 05. 2019

공시꽃

2013년 3월에 쓴 글이 너무 귀여워서 모셔둡니다.

친구가 있다. 일찍이 진로를 결정하고 올 8월에 있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군대 전역과 동시에 휴학. 많은 공시생 중 하나가 되기로 결심하고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했다. 학원에 가니 20대 후반을 훌쩍 넘긴 공시생들이 많았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오래 준비하다보니..... . 다른 공시생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친구는 시골길 민들레처럼 조용히 피었다가 해가 지면 일회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먹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찬물 샤워를 하고 다시 공부했다. 자정이 넘어가면 눈꺼풀 시계가 시간을 알렸다.어김없이 아침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은 수업을 하던 선생님 눈에 띄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앳돼 보이는 얼굴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몇 살인가?’ 친구는 노랗고 깨끗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23살입니다.’ 뒷자리 학생들의 탄식과 부러움이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반에 있던 누나들이며 형이 조금 관심을 보이며 웃어주기도 했다. 

 

산들산들, 봄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민들레 같은 그는 문득 벚꽃이 보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벚꽃 보러 어디로 가고 싶냐’고 다시 묻자 아니라고 한다. 그의 빡빡한 일정표가 눈에 아른거려 나도 '그래 꼭 벚꽃을 보러 가자'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신 한철 피고 지는 벚꽃이 뭐가 그리 좋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아슬하게 뿌리내리고 섰다가도 가장 높이 뽀송하게 뜨는 민들레가 훨씬 예쁘다. 지금은 흙길 옆에 피어서 조금 코가 매워도 이 봄이 지나면 가볍게 하늘로 둥실 떠오르리라. 벚꽃이 피는 4월, 난 이 친구를 끌고 동네 변두리 공원에 들를 생각이다. 구석에 핀 민들레 찾으러.



* 2013년 <LE DEBUT> 활동 중 쓴 원고입니다. 같이 민들레 찾으러 갔던 친구는 다음 해에 멋있는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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