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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정 Apr 03. 2019

라키비움 Larchiveum이 뭔가요?

알아두시면 좋은 시사상식 단어입니다. 

언제나 존경해마지않는 매거진에서 원고를 의뢰받았다. (나(따위)한테 칼럼을 써보라고 하(해주시)다니!) 작은 역할이어도 엄청 영광이다. 뭐든 간에 잘 쓰고 싶다. 욕심이 나서 어떤 주제가 떨어져도 쓸 수 있다고 하고 싶었다. (사실 어떤 원고인지 듣기도 전에 '네 쓸 수 있어요'라고 카톡방에 적고 있었다.)



"라키비움에 대해서 쓸 수 있겠어요?" 



아. 이렇게 까지 모르는 단어를 듣는 일도 흔치 않은데. 어떤 해괴한 신조어를 들어도 그 뉘앙스 정도는 대충 파악할 수 있겠던데. 근데 이건 아예 감이 안 왔다. 그리스에 있는 무슨 신전 이름인가? 내가 모르는 독일 건축가 형제 그룹 이름인가? 이럴 땐 빨리 검색해봐야 한다. 



????


아. 네이버도 자세히 모른다.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문화적 목적의 공간/기관 세 개의 기능을 융합해놓은 것'이란 것 정도. 그나마 뉴스 기사가 예문으로 떠서 라키비움이 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라키비움을 찾아 책을 활용한 체험을 할 수 있고,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 라키비움이 공간을 일컫는 말이구나. 이제 다른 검색 엔진도 돌려본다.



이렇게 짧은 위키백과는 처음이다. 그래도 좀 전의 것보다는 나으니까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팩트 :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다. / 세 기관이 가진 복합적인 기능을 한 데 모아 이용자 수도 늘리고 그들의 편의도 도모하는 데 이 공간의 의의가 있다. /  북문화콘텐츠 진흥원에서도 라키비움이란 곳이 운영 중이고, 여기선 온갖 걸 즐길 수 있다. / 문화의 오아시스다. /




라키비움 Larchiveum 은 예술과 문헌정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생기는 새로운 공간 서비스다. 




정보의 산재가 내가 속해있는 업계에만 큰 영향을 미치는 줄 알았더니 여러 공공기관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전통적인 역할을 하던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 같은 곳들의 단일성과 유일성이 사라진다니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그러나 뭐, 미래를 생각하면 재미있고 역사적인 현상일 것이다. ('할미가 어릴 땐 책만 모아놓은 도서관이 따로 있었지 홍홍' 이런 말을 미래 손주들한테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라키비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검색 엔진을 돌려 나온 자료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의 사전적 정의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 어느 누구에게 라키비움에 대해 물어야 하는지 조차 확실치 않았다. 



1. 광주 아시아 문화 전당 


일단 국내에서 가장 큰 라키비움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에 문의하기로 했다. 알아본 바로는 광주에 있는 아시아 문화 전당(ACC)이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가장 활발히 관객들과 교류하고 있다.  ( ACC 소개 관련 <에스콰이어> 매거진 참고 기사 : https://bit.ly/2Ufm4eX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나는 광주가 좋다. 내가 만난 광주 사람들은 대체로 시원시원한 성격에 정이 많았다. 출장 갔다 하면 밥이고 간식이고 음식이라면 무조건 다 맛있었다. 이렇게 멋있는 공간까지 있다니 정말 굉장한 도시다. 이 멋있는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은 서로 다른 아시아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과 역사를 연구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하는 연구기관이다. 이렇게 연구, 수집한 자료들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문화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들이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라이브러리 파크가 바로 '라키비움'이다. 지하 3, 4층에 3400평 규모라니. 사실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안 온다. 어쨌든 그런 규모라면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을 다 한다는 것에 수긍할 수 있다.


광주는 이번에도 좋았다. ACC에 연락을 했을 때 아주 깔끔한 정답들을 얻을 수 있었다. 라키비움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신 최정화 팀장님 감사합니다. 아래는 그녀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 



라키비움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나요?

라이브러리파크는 도서관, 아카이브, 박물관의 기능을 통합한 라키비움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정보 공간입니다. 아시아 문화예술 관련 정보 열람, 전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 들이 이루어지는 아시아 문화향유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Q 라이브러리파크는 어떤 프로그램과 공간 구성을 가지고 운영 중인가요? 

라이브러리파크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열람할 수 있는 주제 전문관과 기획전시관, 도서 열람공간, 북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관람객은 아시아 전역의 전문가들이 수집한 주제별 자료와 도서, 이미지, 영상 들을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습니다. 주제별 강연, 체험 워크숍, 상영회를 개최하여 아시아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라키비움이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일반 관람객은 어떻게 이용하면 되나요?

라키비움이라는 용어가 생소해서 그렇지요? 단어일뿐예요. 학술적이고 전문적이라고 느끼실 수 있는데, 편하게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려 전문도서관이거나 주제 전문 아카이브센터/박물관이 아니니 일반 관람객이 더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뭔가를 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나 매체들을 같이 접하면 다양하게 이해하고, 쉽게 이해하거든요.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파크에서 음악을 즐기시고 싶으면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 주제 전문관(인도네시아 대중음악 컬렉션 기획전 Lagu~Lagu 1960s-1980s)에 오셔서 저희가 수집한 자료 전시도 보시고 음악도 들으시면서 이와 관련된 도서도 한 공간에서 읽으실 수 있겠죠?  건축에 관련 책을 보러 오셨다가 이와 연관된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전시도 관람하실 수 있고요. 10월에 예정된 건축 생산 워크숍에도 참여해볼 수 있을 겁니다.  


팀장님과 얘길 나누고 나니 사실 라키비움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인간은 이미 모두 어느 정도 그 라키비움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77년 지어진 퐁피두 센터 (혹은 그 무렵부터 지어진 거의 모든 복합 문화공간)들이 비슷한 형태로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지 않나? 해서. 


유럽에선 아주 옛날부터 극장, 갤러리, 도서관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을 '미디어테크'라고 불렀다. 도서관, 갤러리, 미디어 라이브러리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라키비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라키비움과 '복합문화공간' 사이에는 티셔츠 대신 셔츠를 입거나 가죽재킷 대신 코트를 입는 정도의 격식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퐁피두 센터


2. 라키비움의 탄생

잠시 라키비움의 탄생 과정을 알아보자. 2008년,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텍사스주립대 메간 위젯 교수가 인포메이션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줬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오세요.' 학생들은 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도서관, 전쟁기념관, 국가기록원 등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과제를 마친 학생들은 하나같이 매간 위젯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자료가 전부 흩어져 있나요? 찾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과제를 열심히 하느라 발바닥이 아플 지경이었던 학생들의 볼멘소리로 볼 수도 있었지만 위젯 교수는 이 말에 무릎을 탁, 쳤다. “정보가 필요한 사용자들은 자료가 산재해 있어 불편함을 느끼는 느끼는 군!” 위젯 교수는 이후 이 깨달음을 발전시켜 문헌정보학계에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을 합친 공간, 즉 '라키비움'의 필요성을 말한 세계 최초의 사람이 됐다.  


구글링 한 메간 위젯 프로페서


메간 위젯 교수의 전문분야는 Information Science다. 한국말로 문헌정보학. 그러니까 라키비움은 박물관학이나 예술의 분야가 아니라 문헌정보학 분야의 단어다. 위젯 교수가 라키비움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도 방점은 

다른 기관보다는 도서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젯 교수가 학계에서 '라키비움'을 이야기할 때는 이용자의 니즈만큼이나 중요한 근거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시대의 변화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과 기록이 디지털 데이터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기록과 박물의 경계가 확연하게 있었다. 각각의 까다로운 조건에 맞게 관리되어야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기록과 박물의 대상이 똑같이 디지털화되면서 그 둘을 관리하는 방법에도 경계가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라키비움의 탄생 신화다. 




3. 위키피디아와 게티

미국 LA에 위치한 게티센터
게티센터.. 와.. 


도서관과 기록관과 박물관. 세 공간은 모두 시대를 반영하는 서비스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사용자들이 사는 시대가 곧 세 기관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같은 것.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 폰에 태블릿 PC에 노트북까지 들고 다니는데, 언제까지나 있던 자리에 앉아서 관람객의 방문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토론하는 사람이 없는 광장을 아고라라고 부를 수는 없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대부분의 것들은 잊히거나 사라진다. 세계적인 도서관과 아카이브, 박물관들이 일찍부터 이 사실을 알고 준비했다. 


세계적인 웹 기반 아카이브인 위키피디아에서는 2015년부터 글램(GLA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도서관, 기록관 그리고 박물관의 기능에 갤러리의 역할까지 추가한 서비스다. 사진 아카이빙 서비스 게티(Getty) 역시  LA에 위치한 그들의 센터에 예술작품과 서면 자료를 디지털 라이 징하고 소장 예술 작품과 관련된 60만 권의 도서를 일반에게까지 공개했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33개국 에서 2200개 이상의 국립 도서관과 박물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시스템 유로피아나 컬렉션스(Europeana Collections)도 있다. 문화유산과 예술품, 고문서와 논문 자료까지 라이선스 구별이 어려운 작품 등을 디지털화 해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의 글램 서비스.  갤러리(Gallery), 도서관(Library), 아카이브(archive), 박물관(Museum)의 약자다.


유로피아나 컬렉션스 웹페이지 캡처


도서관은 예상치 못했던 정보 또는 영감과 만나게 되는 것이 근간이고, 기록관은 어떤 키워드에 대해 정확하고 밀집된 고급 정보들을 제공한다. 박물관은 공적으로 이로운(대체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아티스트를 연계 해 그게 관객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미래의 정보기관'이 되는 일은 세 기관에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을 것 같다. 결국 당대에 가장 많이 생산, 이용되는 자료들을 반영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방식에 대한 해답이 라키비움인 것이다. 



4. 걱정


그러나 한 편으론 조금 걱정된다. 각각의 정보 공유지로서 역할하던 세 기관이 합쳐지면, 너무나 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하고. 단지 전시로 일상을 환기하고자 들어가던 공간에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의 역할이 더해져 복잡함만 배가 된다면? 


나 같은 무지렁이 천둥벌거숭이는 지식과 교양이라는 머나먼 우주를 탐사하겠다는 결심도 못하고 집에 갈 것 같다. 이 걱정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훌륭한 국내 라키비움 운영 사례 중 하나인 국립 무형유산원의 도레미 사무관님이 달래주셨다.(사무관님 이름이 너무 예뻐서 기절) 

전주에 위치한 국립 무형유산원의 라키비움 '책마루'는 책가도를 모티프로 디자인된 공간이라고 한다.
국립 무형유산원의 라키비움 '책마루' 개방감 있고, 넓고, 편안한 의자도 많이 보인다. 남향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지난해 라키비움 공간을 이용한 관람객들 중 40% 이상이 ‘라키비움으로 인해 유산원을 알게 됐고 유산원이 다루는 무형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라고 설문조사에 답변했어요. 라키비움이라는 기획 자체는 관람객들과 한 층 더 깊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니 성공적인 셈이지요.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다양한 설명을 곁들인 문화공간이에요. 라키비움 내부에는 앉아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 많죠. 남향이라 해가 잘 들고, 편히 기대 누워 책을 보거나, 영상을 관람할 수도 있는데요, 뭘."



Decentering the Center (탈중심:수평 차원의 다원적 미술문화복합공간). 평창동 미술문화복합공간은 이런 형태가 될 예정이다. 아크 바디 김성한 소장님이 설계했다. 


2021년 오픈 예정인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이자, 평창동에 새로 생길 라키비움 형태의 미술문화복합공간을 기획 중인 서울시의 관계자도 이렇게 말했다. "라키비움은 일종의 콘셉트이죠, 데이터를 외부에 잘 보여주고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느냐의 문제예요. 미술관이나 도서관 입장에서는 콘텐츠를 풍부하게 할 방법론이고요." 잘 달래어 기우를 막아주신 두 분께 감사드린다. 



5.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의 결론

그래서 그 두 분의 말을 듣고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들렀다. 생경한 전시 방식인 개방형 수장고는 물론 미술은행까지 있는 일종의 국립 현대 미술 아카이브처럼 보였다. 이 곳 역시 올해 11월부터 본격적인 라키비움 공간을 선보이기로 했다. 라키비움 공간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굉장한 규모의 공사가 이루어지는 걸로 보아 관람객의 마음을 빼앗을 만한 규모의 공간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MMCA 청주관 방문 후기는 다음에)


개방형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른 층의 미술은행을 천천히 둘러보다 이미 거기서도 라키비움 방식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시가 끝날 무렵 흰 면벽 한가득 작고 희고 깨끗한 캐비닛이 잔뜩 붙어있었다. 전시실에 있는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이름들이 정갈하게 쓰여있고. 천국으로 가는 우체통이면 이런 모습일까, 싶게 엄청 설렜다. 


캐비닛을 열자 작가의 생애와 예술사조, 해당 작가의 오래된 전시 도록들이 들어있었다. 뭘 궁금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예술 알못에게 그저 최고였다. 복잡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잠시 서서 어떤 작가의 생애에 관한 글을 읽고 난 후 다시 그 작품 앞으로 돌아가 그 작품을 조금 더 잘 느끼면 되는 거였다. 이런 게 라키비움이라면 진짜 괜찮다고 생각했다. 


개방형 수장고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존 버거(John Berger)는 그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1972)’에서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의 영향을 받는다”라고 썼다. 그는 어떤 담론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독자들이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자로 개입하길 소망했던 것 같다. 


나에게 라키비움은 내가 적극적인 해설사로 나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굉장히 순수한 정보에 접근해 나만의 생각을 얻는 경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갇혀 사는 내 삶에서 그리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보고. 내가 느낀 라키비움은 그런 일을 일어나게 하는 꽤 괜찮은 미래 정보기관이자 교양의 미래다. 



6. 그래서 원고는

아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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