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업계에서 회자 중인 세 가지 소식
이런저런 소식을 접하는 일이 많은 직업이라 예전과 달라진 업계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쉽다.
깊은 통찰 같은 걸 하기는 어려운 짬밥이나, 대충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식 정도는 정리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골라본 요즘 리빙 업계 세 가지 이슈. 완전 주관적.
1. 코로나 시대의 가구 쇼룸은 이렇게 변한다.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카시나의 신제품 발표회
사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도 우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중이었다. 생활공간은 빠르게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기존의 산업 생태계가 서서히 분리되고 있었다. 급진적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 옛것과 새것이 힘겨루기 하는 구도도 생기는 중이었다. 결국 세계는 언택트 시대의 삶 속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카시나 같은 글로벌 가구 디자인 업계의 공룡에게 미친 악영향은 단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 전 세계의 디자인 인플루언서며 기자를 모아놓고 가구를 선보여야 하는데 국경이 닫혔다. 둘째, 가구는 만져보고 앉아보고 들여다보고 사야 하는데 상점도 문을 열 수가 없다. 브랜드로서는 디지털 문명으로의 급진적 전환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을 터. 이 달 2021년 신제품을 발표한 카시나의 선택은 버추얼 쇼룸이다.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3D로 만든 가구가 세 가지 콘셉트를 지닌 가상의 주거 공간에 전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상의 거실, 주방, 부엌 등을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돌아다닐 수 있으며, 좌우로 180도쯤 돌아가는 화면으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제품을 클릭하면 제품 설명과 디자이너 인터뷰 영상도 재생 가능.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사진으로만 접하는 것보다는 나은 경험이다. 브랜드 설립 이후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카시나의 온라인 쇼룸. 앞으로 어떤 진화를 거듭해갈지 궁금하다.
2. 건축은 어떻게 될까
프리츠커 상의 환경적 선택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수상 건축가에게는 훈장이며, 일반인에게는 한 해의 키워드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프리츠커 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2014년부터 사회문제를 건축으로 해결하는 이에게 시선을 돌려왔고, 세계가 직면한 문제점의 핵심을 꿰뚫는 설계를 선보인 건축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재단의 회장 톰 프리츠커는 올해 “좋은 건축물은 누구에게나 자유를 주는 개방된 공간입니다. 모습을 뽐내기보다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일상을 내밀하게 돌보는 동시에 인간에게 친근하고 유용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올해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건축 듀오 얀 라카통과 장 필립 바살은 1987년 ‘라카통&바살’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래 유럽,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베테랑 건축가다. 이들 건축의 원칙은 ‘건물을 절대 부수지 않는 것’. 수상자 라카통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짓기보다 고치는 편을 택하는 건축가다.
변화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죠. 철거는 가장 쉬운 결정이지만, 단기적인 목표 설정입니다. 에너지와 물질, 건축물의 역사를 낭비하는 행위라고 봐요. 제겐 공공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폭력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더 넓은 개방적 공간이 있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도쿄’, 불필요한 파사드 대신 주민이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생활공간 면적과 창을 설계한 ‘라 투르 부아 르 프레트(La Tour Bois le Prêtre)’ 프로젝트가 바로 이들의 작업. 전 세계적 전염병으로 지구가 홍역을 앓고, 관계는 비대면화 되어가는 오늘날. 환경과 도시, 나아가 개인의 삶을 고려해 집을 ‘고치는’ 건축가가 2021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결국 현대인들로 하여금 공존에서만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란 메시지가 아니려나.
전설적인 두 브랜드가 만났을 때
지난달 가구&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의 최고 이슈는 아마도 놀과 허먼 밀러의 합병 소식이었을 것이다. 지난 100여 년간 두 회사의 관계를 묘사하자면 이러했다. 갤럭시와 아이폰, 배트맨과 어벤저스, 펭수와 뽀로로.... 경쟁과 공존을 함께하던 기라성 같은 두 브랜드의 결합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지, 소비자와는 관계없는 일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합병 소식을 전한 직후 공개된 허먼밀러의 사무가구 ‘OE1’은 기존 허먼 밀러가 출시해 온 사무용 가구들과 조금 다른 결이란 점이 명징하다.
가볍고 얇고 매끈한 스틸 소재로 만든 책상과 화이트보드, 수납용 스토리지 등으로 모두 바퀴가 달려있고, 컬러도 다채롭다. 디자이너 샘 해치와 킴 콜린은 민첩하게 헤쳤다가 모여야만 하는 새로운 업무 환경을 예견하며 이런 가구를 디자인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사무환경 변화에 따라 ‘사무실은 그저 업무용 도구가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어쩌면 이로부터 가구업계의 새로운 바람을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