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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Feb 06. 2019

'요알못'에게 요리란, <우리가족: 라멘샵>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찌릿한 라멘 포스터

 한동안 카메라를 살까 말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카메라를 장만하고, 인스타그램에 분위기 있는 사진들을 올린 탓도 있겠지만, 카메라가 갖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좋아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은 시기였다. 그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을 오롯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생각만 하고 품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마음들, 너무 벅차서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글을 쓰곤 했는데, 글만으로는 그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이렇게 담아내고, 저렇게 담아내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다 보면 내가 가진 마음의 크기, 모양과 닮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 세상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당시 떠올랐던 가장 괜찮은 방식이 사진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카메라를 사지는 않았지만,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을 보면서 떠올랐던 것은 그 당시 카메라를 사고 싶어했던 내 모습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세상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다 말했어도, 요리를 선택지로 고려한 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음식만큼 직관적으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도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냄새, 훅 끼치는 따뜻한 온기, 식욕을 돋우는 차림새, 한 입 베어물었을 때 맴도는 맛, 보글보글 끓는 소리까지,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드문 매체이니까.


 영화가 시작할 때, 정갈한 라멘 한 접시를 차리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스크린으로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오감이 자극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자극적인 이 시대에, 웬만한 자극을 접해서는 자극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살면서, 온몸의 감각이 꿈틀거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음식이기에 가능하고, 음식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요알못'이기에 음식이 가진 힘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알았다. 그래, 음식이 가진 힘은 이렇게나 강력하구나. 요리를 배워야 하는 걸까?



뜨뜻한 국물 하나면 사랑에 빠지고, 다시 하나가 되고

    


 영화 제목이나 포스터, 오프닝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가족: 라멘샵>은 라멘과 바쿠테를 내세운 음식 영화다. 라멘도 그렇고, 바쿠테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국물이다. 사실 바쿠테를 먹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라멘과 갈비탕 그 사이의 맛이라고 하니 대충 상상이 갔다. 간단하게 이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들이 사랑했던 맛을 다시 배우고 싶어하는 아들은 싱가포르로 떠나고, 싱가포르에서 삼촌을 만나 바쿠테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오랜만에 삼촌을 만나 바쿠테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면서, 할머니와 관련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음식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서 화합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바쿠테'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자,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 주기도 하고, 진정한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로 기능하기도 한다.


 엄마아빠가 만나서 결혼하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삼촌을 찾고, 연을 끊었던 할머니와 다시 껴안게 되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 라멘 가게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모두 '바쿠테' 하나에 있다면,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사실 진정성이 담긴 '바쿠테' 하나에 의존하여 모든 갈등이 술술 풀리고, 모든 감정의 깊이가 진해지기 때문에 등장 인물의 감정선에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관객도 '바쿠테'를 함께 맛보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체험형 영화였다면 모를까, 그 '바쿠테'가 무슨 음식인지도 잘 모르고,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저 정도 맛이라면, 그래, 뭐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그래, 다 용서할 수도 있지. 그래, 제일 잘 나가는 라멘집이 될 수도 있지"라고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화니까, 음식을 내세운 음식 영화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수긍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음식 영화라고 해도 너무 지나치게 음식에만 의존한 스토리텔링이 아니었나 싶어 아쉬웠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가 조명하고 싶었던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갈등은, 엄마와 할머니 간의 갈등이었다. 싱가포르인인 어머니가 일본인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자,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할머니는 그 둘의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한다. 어떤 한 개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국가를 싫어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결혼을 반대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역사적인 배경을 그 이유로 채택했다면, 그 부분을 잘 집중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바쿠테'와 '라멘'의 결합 하나로 너무나 쉽게 갈등을 해결해 버린다. 그렇게 흐지부지 풀어나갈 것이었다면, 굳이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했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역사적인 배경인지, 아니면 음식을 통한 한 가족의 화합인지, 아니면 음식을 통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인지, 아니면 음식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법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 어느 한쪽의 비중이 크다든지, 인상적이었다든지 하는 게 없다 보니 그 어느 쪽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삶에서 음식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홍보 문구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직 당신을 위해 요리합니다"와 "오직 당신만을 위한 따뜻한 솔푸드 드라마"였다. 이 두 문장을 보면서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만을 위해 요리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해 줄 건가요?" 이 두 질문이 떠올랐다. 요리에 흥미없고, 음식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평소에 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영화에서 '바쿠테'를 통해 모든 문제가 너무나 쉽게 풀린 게 아니냐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음식 앞에 사람이 무장해제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만든 따뜻한 음식이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지, 음식을 먹다가 누군가가 그립고, 누군가가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또 누군가와 연결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음식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나에겐 그 음식과 대상이 누구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했다고 본다. 그렇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으나, 마음 따뜻했던 음식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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