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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ug 28. 2020

연애와 취업의 틀린그림 찾기

이젠 둘 다 그만 실패하고 싶은데요

 어떤 이별 앞에서든 꼭 울고 말았다

 


 새벽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동아리 행사가 있어서 온종일 준비하고 정리하느라 바쁘게 보냈던 날이었다.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랑 술 한 잔 하고, 이틀 뒤에 시험이 있어서 밤을 새겠다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야, 무슨 밤을 새냐. 그냥 가서 자라."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그래도 당장 시험이 며칠 안 남았는데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자정이 넘은 캠퍼스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도서관 열람실에도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개별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서, 가방 안에 넣어뒀던 프린트를 하나하나 꺼냈다. 가득 쌓인 프린트 중 일부를 꺼내서 공부를 하려는데, 역시나 단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고요한 적막 그 자체. 사람도 별로 없어서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나 책장 넘기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하하호호 웃고 즐기다가, 갑작스러운 적막을 맞이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남겨진 기분. 애인이 있었다면 '너무 조용해서 기분이 이상해'라고 톡이라도 보냈겠지만, 헤어진 지 24시간도 안 된 상황에서 그런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을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고, 이별을 말한 것도 나였고, 헤어지고 나서도 슬픔이나 그리움보다는 분노만 남았던 터였다. 그런데 그 고요한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자니, 그제야 이별이 실감이 나서 눈물이 났다. 이별이 실감이 났다기보다는,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듯한 감각이 슬펐던 것 같다. 모르겠다. 그냥 그 조용한 도서관의 칸막이 안에서 혼자 울었던 그날. 어쩐지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그날이 생각났다. 어떤 이별 앞에서든 꼭 한 번쯤은 울고 마는 것 같아서.


면접장에서 이만큼 쫄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오늘 또 조금 울었다. 이번엔 애인과 헤어져서가 아니라, 가고 싶었던 회사의 탈락 소식을 접해서. 이젠 탈락 소식을 접할 때 담담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이번 회사는 좀 달랐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분야이기도 했고, 면접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를 가져봐도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당 분배되는 질문이 많지 않은 다대다 면접이 아니라, 그래도 충분히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다대일 면접이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게 내 자신을 보여줬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면접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기대를 할 수밖에 없어서 다른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안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5일을 기다린 끝에, 확인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실패한 취업과 실패한 연애는 닮았다
저도 신명나게 출근하고 싶었는데요

 

 기다리는 5일 동안, 나는 마치 그 회사가 내 회사처럼 출근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출근하는 장면과 회식하는 장면, 어설프게 하다가 점점 나아지는 장면과 주변 동료들과 으쌰으쌰하는 장면. 친구들에게 '나 여기 합격했어!'라고 기쁘게 자랑하는 장면과 낯선 이들에게 나의 직업을 소개하는 장면까지. (기대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 치고는 과한 설레발이긴 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어찌하겠나. 이미 내 회사처럼 애정을 품었던 5일이었는데,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 불합격 소식을 확인했으니 슬플 수밖에. 슬프고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에 조금 울다가, 내가 왜 탈락했는지 이유라도 듣고 싶다고 내내 생각하다가, 혹시라도 추가 합격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다가, 추가 합격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게 우스워졌다. 그렇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잠잠해진 이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거, 실패한 연애랑 너무 비슷하잖아.


 그 연애가 좋았든 싫었든 끔찍했든, 헤어지고 나면 꼭 한 번은 울고 말았으니까. 지나고 나면 또 그 기억이 괜찮아 보여서, 한 번쯤 다시 연락해볼까 고민했으니까. 그 사람도 나를 조금은 그리워하지 않을까, 미련이 남지 않을까 상상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나랑 헤어진 것을 후회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실패한 취업의 프로세스는 실패한 연애의 프로세스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 사람을 좋아하면서 전전긍긍했던 내 마음과 시간이 아깝다, 이런 결론을 내다가도 또 그 시간도 나름 반짝거리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실패는 그만하고 행복하고 싶은걸요

 

 실패한 연애와 실패한 취업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운 날들이 많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조금씩 울었던 날들이 쌓여서 이젠 그만 울 수 있는 단단한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쌓인다 하더라도 실패한 연애와 실패한 취업 앞에서는 자꾸 울게 될 것만 같다. 이만큼 마음을 주고 이만큼 좋아했는데, 경험이 많이 쌓인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맞이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조금씩 많이 울고, 또 '뭐 그런 일에 울었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별을 마주하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언젠간 그렇게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날도 오겠지. 그렇지만 에디슨처럼 만 번의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서, 이젠 그만 실패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s. 그래도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많이 애썼다고. 실패한 과정은 어떤 결과물로 남는 게 아니라서, 그 과정 동안 노력하고 애쓴 건 내 자신밖에 모를지도 모른다. 내 자신을 그만 미워하고, 그만 비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다. (어유 이 오그라드는 말 그렇지만 미래의 나 그만 울고 힘내라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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