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탈락이었을까요 합격이었을까요?
낮잠을 자던 어느 날
낮잠을 잘 때에는 머리맡에 핸드폰을 놓아두고 잔다.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그대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깐 잠드는 탓이다. 어제도 그렇게 잠시 낮잠을 잤고, 핸드폰이 짧게 진동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요즘은 시도때도 없이 긴급재난문자가 오는 시절이지만, 긴급재난문자는 짧은 진동 하나로 끝나지 않으니 그건 아닐 테고. 그냥 뭐 광고 문자나 그런 것이겠지. 요즘의 나에겐 급하게 확인해야 하는 연락 따위가 올 리가 없었고,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조금 더 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이 한 번 더 울렸고, 그때는 그냥 잠이 깨버렸다.
안경도 쓰지 않은 채로 확인한 핸드폰에는 문자 1건, 메일 1통이 와 있었다. 지원했던 회사의 결과가 나왔으니 확인하라는 문자. 그리고 메일 역시 같은 회사에서 왔지만, 문자와는 다르게 친절하게 ‘합격’과 ‘불합격’ 결과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젠 메일을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메일 알림에 뜨는 짧은 인사말만으로도 이게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제는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비몽사몽한 상태였고, 그런 구분을 할 새 없이 그냥 클릭해서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불합격. 지금 쓰면서도 마음이 조금은 시리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결과를 확인하고 조금 울었다. 사실 조금보다는 더 많이 울었다. 지금껏 불합격 글씨를 봤던 중 가장 많이 울었다. 그렇다고 몇 시간을 엉엉 운 건 아니고, 한 10분 정도 울었나. 그렇지만 소리내어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딱 2번 울었던 것 같은데, 한 번은 억울해서 눈물이 났고 이번엔 막막해서 눈물이 났다. 아,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고 하면 무슨 채용 비리? 내정자? 이런 게 있었나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의미로 쓴 말은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다고 살았는데 고작 서류 합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생이 억울했다. 겨우 이런 일에 ‘억울하다’라는 표현을 쓰다니, 쓰고 나니 너무 거창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랬다. 최종 탈락도 아니고, 서류 탈락을 연속으로 주구장창 맛보면 그렇게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는 것이다.
이번엔 서류 탈락은 아니고, 인적성 탈락이니 억울할 것은 없었다. 나보다 시험을 잘 본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떻게 억울해 하나. (물론 그렇게 따지면, 서류 탈락도 나보다 직무에 적합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왜 억울해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사람 기분의 차이다) 시험을 못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고, 인적성 합격률이 높다는 말에 큰 걱정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어차피 면접의 관문에서 떨어질 거야 – 그런 생각을 했던 회사였지만, 그래도 인적성의 관문 정도는 가볍게 통과할 줄 알았다. 그건 어디에서 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건 ‘근거 없는 자신감’에 불과했고, 그렇게 나는 낮잠을 자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내 ‘근거 없는 자신감’에게 크게 한 방 맞았다.
바보야,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안 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는 했지만, 준비를 안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막막했고 눈물이 났지. 뭘 더 어떻게 해야 붙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다. 학력도 학점도 스펙도 자소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요즘은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합격할 수 없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야지 뽑히는 거야, 이 바보야. 요즘 중요한 건 학벌이 아니고, 그 이외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봤고 그 말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학벌만 믿고 팽팽 놀면서 보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걸. 자소서용 멘트가 아니라,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보면 동의하면서도 조금 슬펐다. 나도 학벌은 괜찮지만, 그것 빼고 아무것도 없는 부류에 속하는 걸까. 그건 아닌데. 지나간 세월을 아무리 훑어봐도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는데. 그 시간에 대해 남은 후회는 없는데. 그래도 이 시기에는 ‘코로나’라는 엄청난 핑곗거리가 있었고, 내 자신을 탓하는 게 지겹고 우울해질 때면 속 편하게 생각하곤 했다. 이건 다 코로나 시대에 취업하는 탓이라고.
그렇게 마음이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그래도 삶은 잘 이어졌고 오늘도 낮잠을 잤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다가 평화롭게 잠들었으나, 꿈속에서도 낮잠을 자다가 인적성 결과를 확인하는 꿈을 꿨다. 실제로 현실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의 등장이었다. 꿈속에서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려 애썼고 결과가 합격이었는지 불합격이었는지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현실과 동일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머리맡의 진동 소리에 비몽사몽으로 핸드폰을 확인했고, 그건 역시 결과 안내 문자였다. 기업 이름만 바뀌어서 그렇게 꿈에 나오더라.
꿈에서 깨고 나서, 조금은 웃겼고 조금은 슬펐다. 무의식 중에 오늘도 낮잠을 자다가, 합불 연락이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낮잠 시간마저도 뺏기다니. 그게 조금 슬펐고 동시에 조금은 웃겼다. 그러니 앞으로는 2시~3시 사이에는 문자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이 시간만큼은 평화롭게 보내고 싶다고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깨어 있는 채로 마음이 종종거리느니, 그냥 속 편히 잠자다가 확인하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에서 깨자마자 이건 글로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것도 웃겼다. 취준을 하면서 생각만 늘어서, 취준 일기 시리즈를 연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에피소드는 꼭 써놔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서 자소서 쓸 생각은 안 하고, 취준을 어떻게 열심히 준비했는지에 대한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고, 취준하면서 어떤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꼈고 그래도 어떻게 우당탕탕 잘 굴리고 있는지에 대해 쓸 생각만 있다니. 애초에 이런 사람이 매 순간을 열심히 벅차게 사는 사람들과 경쟁했을 때 뽑힐 확률이 낮은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도 이런 글을 쓰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걸. 그래서 썼다 – 인생 한 치 앞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일단 쓴다.
*참고로 족구왕은 안 봤다. 그런데 갑자기 스틸컷을 찾다 보니, 갑자기 족구왕이 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자소서 쓰는 일 빼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재밌어하니 큰일이다. 그런데 족구왕은 너무 보고 싶으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