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혜 Nov 14. 2016

대체휴가 덕분에 상념 글쓰기

내일부터 다시 출근,,, 자소서 인생들 응원합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즌이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는 알량한 이유로 그들의 자소서 첨삭을 종종 부탁받곤 한다.

주로 읽어보지도 않고 거절한다.

나 따위가 누군가가 자신의 가장 밑바닥까지 훑어가며 공들여 썼을 자소서에 대해 평할 자격도 없거니와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부탁받는 자소서의 유형도 다양하다. 입사 자소서부터 장학금 지원 자소서, 고시반 자소서, 대외활동 자소서,,,

세상은 수없이 나를 몇 자 안에 설명해 내라고 요구한다. 그 때 받았던 고통은 여전히 이 컴퓨터 구석에 그리고 내 맘 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 고통을 알기에 나는 요며칠 내게 자소서에 대해 물어온 이들에게 몇 마디 덧붙여줬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이 고통의 시간동안 자신의 밑바닥만 바라보지 않기를, 내가 아는 그대들의 더 매력적인 모습들이 어필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소서와는 별개로 그들이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더 풍성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쓴 글을 열심히 읽진 않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힘들 정도로 요즘 완전히 방전된 나를 채우기 위해 오늘 월요일 대체휴가를 미리 내뒀고 덕분에 상념에 젖을 수 있었다.

낙엽을 밟으며 촉촉한 가을비를 적시는 그런 영화같은 모습이 아니라, 현실은 엄마의 심부름을 가느라 후드티 눌러쓰고 나온 백수의 모습이었다. 사실 평소에 그리는 솔직한 나의 꿈은 이런 모습에 더 가깝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나는 주로 그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보다는 질문 하나마다 온전한 나를 보여주기 위해 진심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자소서의 기본은 인재상이니 나는 결코 좋은 첨삭러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 편을 쓰고 나면 뻗기 일쑤였고 그 시즌에 처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 가을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장애가 재발했었다.(그리고 또 한번 이번 가을 다시 고통받고 있다.)


끝까지 내 소신껏 대답을 써놔야 했던 고집쟁이도 항상 막혔던 한 가지 자소서 질문이 있다. 요즘은 면접에서도 잘 안묻는다는 고전 베스트 '존경하는 인물'. 같은 직군만 준비해왔던 터라 그냥 그 때마다 내가 자소서에서 어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균형을 맞출 수 있을만한 사람을 적어냈다. 애초에 존경(사전적 정의: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라하지 않는 반항기 가득한 나에겐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의 인격, 사상, 행위의 부족함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꼭 빼닮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그랬는데 사랑하는 나의 친구님들 덕분에 1년만에 자소서 항목들을 다시 보았던 이유 때문인지 심부름가는 길 엘리베이터에 비친 후줄근한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까 싶어졌다. 그리고 심부름 갔다 돌아오는 길, 5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내 답을 얻었다. 이번에도 인재상이나 누군가에게 보일 나의 모습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고집쟁이 마인드 그대로 답을 뽑았다.


"이 시대에 사는 모두가 존경받아 마땅하다." 평범한 모든 이가 각자 제자리를 지키는 것, 그 삶을 놓아버리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바깥이 무섭게 여겨지게된 지는 꽤 됐다. 다음 모퉁이를 돌 때마다 놀랄 일, 슬플 일이 또 있지는 않을지 무서운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매한가지일 거다. 주변에 구덩이가 너무 많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깊이 빠져버리지는 않을지 두려운건 나뿐만이 아닐텐데,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백만이 조용히 촛불을 들고 다음 모퉁이로 나왔다니 그들을 존경하고 싶다. 나보다 짠 땀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 수만큼의 마음이 촛불과 함께 떠 있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졌던 주말이었다.


기자가 되어 자기소개서 쓰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게된지 9개월차. 자소서를 쓰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꿈을 이뤄서 행복해?"

그럴 땐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들과 옛날 이야기만을 나누고 돌아오지만, 머릿 속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 마치 꿈을 이루는 일은. 어쩌면 꿈을 계속 만들어내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 예쁜 비눗방울을 가진다는 것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비눗방울을 계속 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얄궃게도 그런 이치로 이루어진 세계 같다고."_오지은, 익숙한 새벽 세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