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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Apr 21. 2023

작고 따듯한 바닐라 라떼

나는 올해 직장생활 10년 차로, 마음은 신입이지만 새로운 업무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매일이 긴장감의 연속이면서, 무난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정신없는 회사 생활을 끝마치고 굳은 목과 허리의 숨통을 잠시나마 틔워주는 운동 후, 한 시간 반의 퇴근길에 오른다. 다시 굽어진 몸으로 내려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운다. 

피곤에 절여진 몸을 잠시 눕히고 나면, 다시 새벽에 일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회색빛의 하루를 살아낸다. 


적막한 지하철 속 발들은 기계처럼 움직이고, 사람들의 미간은 저마다 잔뜩 찌푸려져 있다. 

넓고 푸른 초원 위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주말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조차 부족하고, 평일은 길고 무겁다.


하지만 이런 일상들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면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들이 오히려 감사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끔 내 삶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질 때면 나에게 작고 따듯한 선물을 쥐여준다. 

바로 따뜻한 바닐라 라떼다. 


새벽녘 첫 공기가 숨에 턱 하고 걸릴 때나, 회사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울 때 바닐라 라떼를 손에 쥐여준다. 마치 어렸을 적 병원 문 앞에서 엄마가 손에 쥐여주던 작은 사탕 같은 거다. 

약간의 달콤함에 적셔진 몸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저 밑 가라앉은 희망의 찌꺼기들이 보인다. 


세상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들을 발견한다. 

데일 정도는 아닌 따듯한 첫입을 마시고 나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입안을 감싸고, 쌉쌀하고 텁텁하게 마무리되는 매력이 마치 내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유독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설탕으로 덕지덕지 뒤덮인 찰나의 시간보다는, 

은은한 단맛과 쓴맛이 고루 섞여 그사이의 진짜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한 요즈음이다. 

오늘도 지루한 삶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작은 미소와 함께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쥐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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