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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연 Dec 22. 2019

나비효과



 그녀의 작은 실수가 나비효과로 되돌아왔음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그 날 우면동의 개발실 한 편에서는 안 팀장님과 부서 이사님 등 한 팀의 머리를 맡고 있는, 소히 말해 우두머리들 간에 열띤 언성이 오가고 있었다. 그녀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사실 그녀가 개발했던 코드에는 버그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코드를 제 기능을 하도록 고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굳이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자면 확인되지 않은 수정사항을 위에 언급하지 않은 그녀의 잘못이긴 했다. 잘못 개발되었던 소스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죽은 코드였기에 문제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숨어있던 시한폭탄은 제기능을 되찾았고, 이후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그녀는 가시방석 위에서 최종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겨우 이틀 전에 새로운 버전이 적용되었던 소스를 원복(이전 버전으로 복구)하는 일이었다. 갑인 업체에서 센터장의 결정은 곧 법이었다. 그녀 팀의 이사님께서는 최소한 ‘원복’하는 일만은 막기 위해 힘써 언쟁하고 계셨다. 사실 코드 한 줄만 수정하면 모두 해결될 문제였기에 원복을 하게 된다면 몇 달간 여러 업체들 간 거쳐 진행해왔던 검증 단계를 다시 거쳐야 했다. 어쨌든 원초적인 원인제공을 한 셈인 그녀는 절벽 끝에서 적어도 강풍만은 불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부서 이사님께서는 문제에 대한 수작업 방안을 그녀에게 부탁했다. 결국 최악의 상황은 피한듯했다. 코드 한 줄을 수정하여 적용하기 전까지는 당장은 조금 귀찮은 수작업으로 상황을 해결하기로 합의된 것이다.

...

 이제 슬슬 갈 준비 하자.

 점심식사 후 사무실에 들어와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던 송 부장이 지난 일들의 고난을 회상 중이던 그녀를 깨웠다.

 네. 이제 드디어 돌아가네요.

  그녀의 말은 왠지 무겁게 들렸다. 외근지는 본사보다 멀었기에 먼 거리를 오가는 피곤함을 고사하며 그녀의 소중한 하루 시간 중 세 시간가량을 내어왔던 것이다. 거의 반년 동안 말이다.

 [나는 김찌.]

 그의 문자였다. 그녀의 시간에서 점심을 먹은 지는 꽤 흐른 뒤였다. 타지에 있는 그의 시간은 조금 느렸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은 듯했다.

 김치찌개라.

 그녀는 그 함축된 문장을 조금 응시하다 이내 짐을 챙겼다.

 택시로 이동하며 지금 당장 복귀 중이라는 소식을 그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그가 물어왔다.

 [택시 타고 어디가? ]

 [너한테 가는 중! ]

 그녀는 그가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가벼운 장난이 그리웠을 뿐이었다.

 차창을 통해 오후의 기분 좋은 오렌지빛 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좋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건물들 사이를 지나치며 가끔씩 스쳐지는 오렌지빛 볕에 취해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본사에 도착해 있었다.

 [난 중국인데... ]

 그에게 답이 왔다. 그는 그녀의 장난을 받아줄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

 어유, 고운 씨 오랜만이네. 고생 많았지?

 정말 오랜만에 뵙는 사장님이었다. 그녀의 자리로 와 반겨주셨다.

 네 아닙니다, 감사해요. 반년만에 돌아왔네요.

 그녀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인사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서 이사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그녀가 정리를 마저 마칠 수 있도록 사장님과 자리를 피해 주셨다.

 얼마만의 내 자리인지.

 그녀는 정리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휴식을 청했다. 마치 친정에 돌아온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책상 위의 캘린더는 5월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캘린더의 마지막 장을 펼쳐 두었다. 12월의 둘째 주 목요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해의 끝자락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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