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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20. 2024

누가 진짜 악을 행하는가

김이삭,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래빗홀, 2024

김이삭 작가의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를 읽었습니다. '괴력난신'의 범주에 들어갈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고요. 각 작품의 제목은 실린 순서대로 「성주단지」, 「야자 중 XX 금지」, 「낭인전」, 「풀각시」, 「교우촌」입니다.


괴력난신이란 '괴이, 용력, 패란, 귀신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최근까지도 멸칭으로 쓰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나 흥미를 가질 법한 시시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식으로요. 알다시피 이건 장르문학 일반에 통용되던 생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사람들은 더 이상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의 역할을 딱 잘라 나누려 들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의미 있게 전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에 적합한 재료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죠.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최근의 그러한 기류를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그간 이 땅에서 차별받고 억압받은 약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도구로서 괴력난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익숙하고 타당한 방식이죠.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전해온 수많은 귀신 이야기들이 한 서린 약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으니까요. 살아서 다 못 푼 원한을 죽어서 풀어내고자 했던 귀신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괴력난신은 다수 기득권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귀신이 선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도대체 진짜 악은 누가 저지르고 있는가. 잡스럽고 시시하다는 이유로 괴력난신을 회피하는 이들이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바로 그 진실을 겹겹이 드러냅니다.


전 귀신은 무섭지 않아요. 사람이 무섭죠.

39쪽


「성주단지」의 주인공은 독신여성이고, 스토킹 범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에 '깨진 성주단지'라는 익숙한 오브제를 동원하여 독신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를 절절하게 묘사하지요. 이 작품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물론 성주신이나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남자입니다.


「야자 중 XX 금지」는 학교괴담입니다. 이야기 속 '광명고'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학교인데, 본관과 관련된 특이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방과 후 본관에 머물 수 없고, 닫힌 문을 함부로 열어서도 안 됩니다. 금기와 불문율은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비일상으로 나아갈 강한 동기를 부여하지요. 이 학교 학생인 '아영', '정원', '예원'은 괴담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방과 후 몰래 본관에 들어와 교실의 게시판을 뜯고 비밀의 문을 열어젖힙니다. 문 너머에서 세 친구는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그것이 남긴 근원적 공포를 충격적으로 맞닥뜨리게 됩니다.


「낭인전」에서 '낭인'은 표면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떠돌이(浪人), 하나는 늑대인간(人)이죠. 주인공 '옹녀'는 여섯 해 동안 여섯 명의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고향 마을에서 쫓겨납니다. 처량하게 삼남을 향해 가는 길, 옹녀는 길에서 한 낭인을 마주치게 됩니다. '변강쇠'라는 이름의 이 낭인의 정체는 늑대인간입니다. 옹녀는 '마음씨는 비단결 같고 용모는 천상 선인 같으며 수명은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변강쇠를 자신의 낭군으로 점찍게 되죠. 이 역시 옹녀가 속한 현실의 유해한 남성상에서 적극적으로 이탈한, 괴력난신의 전복적 이미지를 투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풀각시」는 인형을 만들어 살을 날리는 저주술을 소재로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 '서율'은 기억이 흐릿해진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가 어릴 적 살던 고택으로 갑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고택에 얽힌 과거의 사연과 서율의 현재를 잇는 인과의 끈을 절묘하게 엮어서 보여주지요. 할머니는 어릴 때 동첩으로 보내질 뻔한 적이 있고, 서율은 얼마 전 자신을 노린 의금부 좌참찬의 아들을 검으로 베어 부상을 입힌 바 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누가 누구에게 은밀히 살을 날리게 될지는 명확하지요. 결국 이 작품에서도 정말로 섬뜩한 건 풀각시나 저주술이 아니라 그러한 의식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군의 끔찍한 인간들과, 그 인간들을 견고히 지지하는 한국식 가부장적 전통의 비루함입니다.


「교우촌」의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신부에게 바치는 고해성사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조선에서 있었던 가톨릭 박해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전 읽으면서 '너희 중 가장 낮은 이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다만 여기선 그 가장 낮은 자리에 상상도 못 했던 존재가 도사리고 있어서, 이 세계관에서 뚜렷한 죄악을 저지른 이는 모두 이곳으로 빨려 들어가 최후의 심판을 맞게 되네요. 책을 덮는 순간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소설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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