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올리비에, 『뚱보, 내 인생』, 바람의아이들, 2004
* 쪽수: 160쪽
미카엘 올리비에Mikaël Ollivier의 『뚱보, 내 인생La Vie, en gros』은 2001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지 3년 만에 한국에 번역 출간된 청소년소설입니다. 2024년 3월에 개정판이 나와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는데, 여전히 재미있네요. 작중 설정의 일부는 지금 시점에 오히려 더 시의적절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고요. 참고로 『오백 년째 열다섯』, 『열세 살의 걷기 클럽』 등을 쓴 김혜정 작가의 2012년작 『다이어트 학교』에서도 이 책 『뚱보, 내 인생』이 짧게 소품으로 등장한 바 있지요. 아마 『다이어트 학교』를 먼저 읽은 독자의 상당수는 『뚱보, 내 인생』도 읽었을 거예요.
이야기는 청소년 당사자가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해 갖는 욕망을 가식 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만 이슈에 대해 청소년문학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태도는 인물이 자기 몸의 고유한 가치를 점차 깨닫고 수용해 가는 것일 텐데, 막상 비만 때문에 고민인 독자들은 여기에 불만을 느낄 수 있겠죠. 자기 일이면 저렇게 뻔하고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겠냐면서 말이에요. 하긴,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항상 말하지만 문학은 신이 아니라서 모든 독자를 빠짐없이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도 『뚱보, 내 인생』의 경우는 그런 불만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작품이 대단히 파격적인 뭔가를 시도했던 건 아니에요. 20여 년 전이라는 시기적 요인을 고려해 봐도 그렇죠. 주인공 '벵자멩 프와레'는 중3에 심각한 과체중이고, 자주 자기 몸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같은 반 여자아이인 '클레르' 앞에서는 더 그렇게 됩니다. 벵자멩은 엄마와 둘이 살고, 간간이 아빠와 아빠의 여자친구인 '소피 아줌마'를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전문가의 권유에 따라 다이어트를 하죠. 지지부진하던 다이어트는 클레르와의 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완전히 실패하게 되고, 그때부터 벵자멩은 마치 자기 삶에 벌을 주듯 폭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에서 결말이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장면은 물론 자기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결말부의 벵자멩은 도입부에 비해 조금도 날씬해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소피 아줌마와의 대화를 통해 나름의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 결과 자기 몸을 혐오하지 않고 음식에 병적으로 매달리지도 않게 되지요. 그러니까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이 자기 몸을 받아들이고 성장한다는 기본 도식에 충실한 전개를 따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뚱보, 내 인생』은 그리 진부하거나 안일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전 이 이야기가 가진 특유의 발랄함과 솔직함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뚱보, 내 인생』은 사회가 청소년에게 쉬쉬하는 여러 소재를 좋은 말―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로 애써 포장하지 않아요. 문학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지만,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거든요. 예컨대 이 이야기는 첫 챕터부터 여성 간호사의 외모 품평을 하는 남성 주인공의 모습을 1인칭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벵자멩은 자기 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몸을 제대로 존중하는 방법도 모르는 거죠. 더 뒤로 가면 클레르의 몸을 구체적으로 욕망하는 벵자멩의 상상이 이런 문장으로 묘사됩니다.
난 클레르와 나 사이에 대해 훨씬 더 고귀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둘이서 손을 잡고 거니는 꿈을 꿨다. 달콤한 입맞춤과 그윽한 눈길. 내 손으로 클레르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는 장면도 그려 봤다. 그러고 나선…… 클레르의 티셔츠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부드럽고 따스한 살을 만져 보고, 결국엔 손길을 더 뻗쳐……. 오! 가슴이 터지는 듯해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 앞에 이토록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다니.
109쪽
이런 상상 자체는 물론 청소년기의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과, 주위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버릇과, 좋아하는 여자의 몸을 은밀히 상상하는 버릇을 모두 가진 주인공으로 청소년소설의 로맨스를 쌓기는 정말로 쉽지 않거든요. 나아가 벵자멩의 극적인 성장도 결국은 클레르와의 관계 회복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이 보여준 거침없는 솔직함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