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욱현, 『6교시에 너를 기다려』, 문학동네, 2024
* 쪽수: 112쪽
예전에 전 오카다 준의 작품 『밤의 초등학교에서』를 읽고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학교는 그동안 수많은 동화의 배경으로 묵묵히 쓰여왔어요. 때때로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인물과 사건들이 그 안에서 빛을 발하곤 했지요.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를 이토록 아름다운 무언가로 빚어낸 작품이 얼마나 있던가요. 학교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라면 이 책을 꼭 한 번이라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욱현 작가가 『밤의 초등학교에서』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6교시에 너를 기다려』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동화에서 학교를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으로 그려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아주 드뭅니다. 의외죠. 언뜻 그 반대일 것 같잖아요. 하지만 실제론 많은 동화가 (정도는 다르지만) 학교를 어린이에게 적대적인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그건 작가 본인이 유년기에 경험한 학교가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전 좀 더 실용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동화를 쓰기에는 아무래도 학교가 좀 나쁜 쪽에 머무는 게 유리하다는 거죠. 인물이 헤치고 나아가야 할 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해 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최근 동화가 당연하다는 듯 학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에는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실 학교는 좋든 싫든 대부분의 어린이 독자가 매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간이잖아요. 그런 공간을 단순히 도구로만 쓰면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를 꼭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6교시에 너를 기다려』만 해도 학교를 무조건적으로 예찬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다만 여기에는 학교와 그 안의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있고 최소한의 존중이 있습니다. 책에는 여섯 편의 짧은 판타지 동화가 실려 있는데, 각 작품의 제목은 「커튼 뒤편에서」, 「교문 사이에서」, 「복도 아래에서」, 「서랍 안에서」, 「운동장의 끝에서」, 「칠판 너머에서」입니다. 목차만 보아도 학교 구석구석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요.
이야기들에서 학교는 교실 커튼을 날개처럼 달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교문 한가운데 서있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하루아침에 거대하게 자라 교문을 막아버리기도 하고, 거대한 지렁이가 굉음과 함께 복도 바닥을 뚫고 나타나 소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나무가 교문을 막은 건 첫날 새 친구를 사귀지 못한 '지후'가 "콱 교문이 막혀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기 때문이고, 거대한 지렁이가 나타난 건 복도를 마구 뛰어다니며 지렁이의 배를 마사지해 주던 아이들이 얌전해지는 바람에 지렁이가 배탈이 났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책에는 학교와 어린이의 본질을 오래 응시한 이의 시선 끝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반짝이는 발상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예전에 오카다 준의 이야기를 읽고 남겼던 말을 그대로 적용해 볼 만한 작품이 드디어 한국 어린이문학에도 나온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 한국에 있는지 여부는 적어도 저에겐 아주 큰 의미를 갖거든요.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학교는 그동안 수많은 동화의 배경으로 묵묵히 쓰여왔어요. 때때로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인물과 사건들이 그 안에서 빛을 발하곤 했지요.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를 이토록 아름다운 무언가로 빚어낸 작품이 얼마나 있던가요. 학교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라면 이 책, 『6교시에 너를 기다려』를 꼭 한 번이라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