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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07. 2024

어른의 세계를 흔드는 어린이들의 연대

진형민, 『왜왜왜 동아리』, 창비, 2024

* 쪽수: 200쪽



진형민의 신작 『왜왜왜 동아리』를 읽었습니다. 『사랑이 훅!』(창비, 2018) 이후 오랜만에 나온 장편이네요. '술술 읽히는 글'이라는 표현이 점점 진부한 촌평이 되어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진형민의 작품을 읽을 땐 어쩔 수 없이 그 비슷한 말을 하게 됩니다. 『왜왜왜 동아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매끄럽고 재미있습니다. 이건 어린이 독자에게 아주 커다란 매력으로 느껴질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어른 세계의 논리에 저항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 작품은 위기철의 『무기 팔지 마세요!』(현북스, 2002)였습니다. 장난감 권총으로부터 야기된 불편한 감정이 전쟁과 평화에 관한 보편윤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죽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주장에 설득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동시에 어른 세계를 지탱하는 논리가 얼마나 기이하고 위태롭게 뒤틀려있는지 깨닫게 되죠.


『왜왜왜 동아리』도 그렇습니다. 이야기 속 '왜왜왜 동아리'의 멤버는 5학년 '이록희', '박수찬', '조진모', '한기주', 이렇게 네 명입니다. 왜왜왜 동아리는 록희가 만든 자율동아리인데, 록희가 동아리를 새로 만든 이유는 그저 학교 동아리활동 시간에 혼자 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무언가를 쉼 없이 하라고 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시끄러운 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거죠. 동아리를 개설하려면 회원 세 명이 필요합니다. 그중 한 자리는 록희의 단짝 수찬이가 채워줍니다.


이제 남은 한 자리만 채우면 소기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깁니다.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는데 두 명이 온 거예요. 게다가 이 둘은 적당히 시간만 때우려 했던 록희의 취지와 달리 사뭇 진지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기주는 왜왜왜 동아리의 회원 모집 포스터에 적혀 있던 '궁금한 것을 끝까지 파헤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가입했다고 하죠. 록희가 동아리를 개설한 장본인으로서 뭔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이제 이야기는 기주와 진모가 겪고 있는 문제를 따라 중요한 화두를 향해 가게 됩니다.


기주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모네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원래 살던 동네에 산불이 나면서 집을 잃은 거죠. 와중에 키우던 개 '다정이'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정이가 타버린 빈 집을 맴돌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까 봐 기주는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기주가 왜왜왜 동아리에서 파헤치고 싶은 것은 다정이의 행방입니다.


진모가 궁금해하는 것은 누나 '조진경'의 머릿속입니다. 진경은 금요일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가서 학교 대신 시청으로 갑니다. 거기서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죠. 진경은 자신의 시위에 '미래를 지키는 금요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왜왜 동아리 멤버들은 진경을 만나러 간 곳에서 진경이 만든 팻말을 둘러봅니다. 그중 한 팻말이 록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경석 시장님! 우리의 미래를 걸고 도박하지 마세요!' 이경석 시장은 록희의 아빠입니다. 진경의 설명에 따르면 기주네 동네에 난 산불은 이경석 시장의 석탄 발전소 건설 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작은 문제 하나를 가볍게 해치우고 싶을 뿐이었던 록희는 어느덧 타인의 인생의 무게가 실린 묵직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전 이 대목에서 작가가 기주와 진경의 사연을 기록하는 방식도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주의 사연은 기본적으로 산불 피해의 당사자인 기주가 직접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중간에 스토리텔러가 수 차례 바뀌거든요. 기주가 자기 사연을 들려주는 사이사이에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을 형식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한데 버무려놓은 거죠. 그 결과 독자는 마치 둥글게 앉은 네 친구의 머리 위에서, 마치 부감 쇼트로 촬영된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듯 기주의 사연을 듣게 됩니다. 인상적인 연출이었어요. 그 자체로 눈에 띌 뿐 아니라, 한 사람의 고통을 그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과 공유하게 함으로써 감정적 기억을 전이시키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방식이지요. 진경의 사연은 연극 대본 형식으로 기록되었는데, 전 여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기 팔지 마세요!』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우리의 둔감함을 지적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왜왜왜 동아리』는 기후 위기에 대한 우리의 안일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문제들은 특정 지역, 특정 국가만의 고민이 아니고, 현대인들만의 고민도 아니지요. 이 두 작품이 한국 어린이의 일상 공간을 넘어 외국의 어린이들과 정서적으로 강하게 연결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현실적이고 시의적절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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