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운, 『행운이 구르는 속도』, 사계절, 2024
* 쪽수: 148쪽
제4회 사계절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행운이 구르는 속도』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장하늘'은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입니다. 이야기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관점에서 한국이 얼마나 불친절하고 몰지각한 공간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지요. 아마 이 분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김지우일 텐데, 어린이문학에도 그런 동시대적 고민을 예리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나온 것 같아 반가웠어요.
하늘이네 집은 바닷가에서 슈퍼를 합니다. 슈퍼 2층에는 세를 놓았는데, 몇 달째 비어 있던 이 방에 이라크에서 온 '마람' 언니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람은 하늘이와의 밤산책길에서 자신이 램프의 요정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관한 설정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마람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면서 램프의 요정들도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정들은 시험을 봐서 성적이 낮을수록 먼 나라로 파견을 가야 합니다. 마람이 먼 이라크에서 한국까지 오게 된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죠.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럼으로써 세계에 행운을 나누어 주어야만 합니다.
글쎄,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저 마람이 하늘이와 친해지기 위해 건넨 이라크식 농담일 뿐인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하늘이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소원을 빌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독자도 하늘이가 가진 '단 하나의 소원'이 무엇일지 짐작해 보게 되지요.
이 대목에서 비장애인이 흔히 갖는 편견 한 가지가 중요하게 지적됩니다. 장애인들의 첫 번째 소원이 필시 그 자신의 장애를 없애달라는 것일 거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아주 뻔하고 따분하지요. 장애인인 하늘이가 가질 수 있는 소원의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합니다. 단짝 친구를 갖고 싶을 수도 있고, 엄청나게 센 주먹이 갖고 싶을 수도 있고,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갖고 싶을 수도 있는 거죠. 이 당연한 사실을 상상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혐오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작품에서 그 상상력 빈약한 혐오자를 대변하는 인물은 하늘이와 같은 반인 '박구'입니다. 별명은 당연히 '빡구'고요. 박구는 시종 하늘이를 비하하며 폭력과 혐오를 일삼습니다. 이야기는 박구를 통해 세상에 엄존하는 혐오자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죠. 어느 날 마람 언니에게 선물 받은 은빛 구두를 신고 등교한 하늘이에게 박구는 말합니다.
"네가 이런 신발을……?"
빡구였다. 이름은 박구지만 절대로 박구라고 발음되지 않는 빡구. 옆에 있던 나나가 어이없어하며 빡구에게 따졌다.
"왜, 하늘이는 이런 신발 신으면 안 돼?"
"얘는 신발이 필요 없으니까 그러지."
96쪽
그러니까 혐오자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따분합니다.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 미지로 가득 차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따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량한 편견으로 끼워 맞춘 생각들이 마치 진실의 전부인양 말하고 행동하지요. 타인의 세계를 궁금해하지 않는 그들은 자기 주변에 쳐놓은 벽 안에서 극도로 비좁은 삶을 살면서 그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바깥사람들이 보기에 이건 그냥 시시하고 엽기적인 기행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박구도 바로 그런 따분하고 유해한 인물이지요.
이렇게 한심한 박구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 이유는 순전히 박구가 어린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어린 박구가 볼품없는 혐오로 긴 인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결말부에 박구의 개선을 암시하는 에피소드가 간단하게나마 실리길 바랐습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박구는 끝까지 한심한 인물이었네요. 하긴, 세상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강도 높은 혐오를 일삼는 이들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