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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노 Art Nomad Nov 17. 2024

#04 바할라 나 4화 _ 봉사회

신의 뜻대로

성철이 민수의 아내를 거들먹거리는 통에 장민수는 화가 단단히 났다. 부들거리는 손은 금방이라도 성철을 메다꽂을 것만 같았다.  


그때, 차앙! 하는 드럼통 테이블 내리치는 째지는 소리가 「정원가든」 안을 가득 메웠다. 내리친 잔에서 소주가 맑고 청아하게 출렁여 번영회 회장의 붉은 매니큐어를 적셨다. 일순 민수와 성철이 조용해졌다. 주변의 호흡마저 가라앉았다.      


「앉아.」      


자리를 정리하는 건 언제나 번영회 회장 기숙이었다. 그녀는 힘 있는 어조로 다시 한번 말했다.


「앉으라고, 장민수!」      


아무리 민수라도 번영회 회장 앞에서 기싸움할 수는 없었다.


「성철 씨도 그만하고.」

      

눈을 치켜뜬 기숙은 잠시 아무 소리 않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다윗 씨는 가서 고기 좀 더 가져올래요?」     


번영회 회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친절을 가장한 명령조로 말했다. 미소 띤 다윗은 묵묵히 일어나 고기 쟁반을 들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윗이 멀어지자마자 번영회 회장은 낮은 어조로 빠르고 차갑게 말했다.      


「이 사람들 앞에서 추태 부리지 마. 누구 하나라도 한국인 명함 달고 추태 부리면 그다음엔 수습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부려 먹기 힘들어진다고. 그러니까 사고 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들어가.」      


기숙의 서슬이 파랬다. 성철은 멋쩍었는지 너스레를 떨어 넘어가려 했다.      


「아이고, 예에 회장님.」

「형님, 진짜 마지막 경곤데요, 한 번만 더 가족을 건드리면 진짜 죽습니다. 다음엔 참지 않아요, 예?」  

   

성철은 벌떡 일어나 상에 대가리를 박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예에. 알아 모시겠습니다.」      


어느새 쟁반 가득 대패 삼겹살을 담아 온 다윗은 그저 불판 위에 모두 부어 버렸다. 마치 한국 사람처럼.

          

3.      


번영회 산하 지역 봉사 모임은 이번에도 민수의 처가에 모였다. 민수의 처가가 봉사활동 나가는 빈민가 초입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수의 처가는 이들이 봉사 가는 빈민가 일대에서 유명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벽돌집이나마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민수의 처 안젤라가 남편을 잘 만나서 그렇다고들 했다. 빈민가 중에서도 극빈층이었던 안젤라는 여섯 형제가 쓰레기 매립지 위에 천막으로 세운 집에서 살았었다.     

 

안젤라는 민수와 결혼한 후에 한인타운 상인 번영회와 지역 교회를 설득해 봉사회를 만들었다. 두 달에 한 번, 주로 라면과 쌀, 과자와 음료수 같은 것을 오색 봉다리에 담아 한 가정에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봉사 나가는 지역의 가정이 보통 한 집에 일곱에서 열 명 가까운 식구가 있다 보니 잘하면 사나흘밖에 버티지 못할 양이었다. 그나마도 빈민가에 차를 대어 놓고 운반하면 약탈당할 우려가 있어 민수의 처가를 거점으로 삼았다.

      

민수는 안젤라가 살던 쓰레기 마을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늘 무거웠다. 동북쪽 끝에 한때는 떵떵거리고 살았을 메스티사(Mestiza : 스페인 혼혈) 할머니가 있다. 그녀의 집에는 아직도 여러 개의 아즈텍 유물이 있는데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머언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라 했다.      


그 아즈텍 유물이 아즈텍을 짓밟은 자신의 스페인 피를 증명하기나 한다는 듯 쓰레기 마을로 오면서도 고이 챙겨 왔다.      


할머니는 안젤라가 이 마을에 살던 때부터 그녀를 예뻐했다. 안젤라가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봉사하러 오자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아즈텍 유물 중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휘이―, 불면 죽은 자의 비명이 울린다는 데스 휘슬 Death Whistle이었다.


민수는 안젤라 외에는 여기 있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습관이 무관심을 이겼다. 두 달에 한 번, 칠 년을 다니다 보니 메스티사 할머니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과 같이 어느 깨에 누가 어찌 살고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첫 몇 해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불편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민수 앞에서 늘 주눅 들어 있었고, 눈치를 보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수의 뒤에서 그가 안젤라를 버리고 곧 떠날 거라고, 안젤라는 주소만 남기고 사라진 남편을 기다리는 옆집 에이미 같은 처지가 될 거라고, 피부색이 다 다른 아이들을 줄줄이 키우는 뒷집 케이시 같은 처지가 될 거라고 수군거렸다.      


그렇게 오 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를 영웅 취급했다.      


한 번은 코피노 아이를 키우는 에이미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와 남편의 주소를 건넸다. 남편 좀 찾아달라고. 그녀가 내민 종이쪽지에는 흘겨 쓴 남성의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18 그걸 믿냐, Korea’


뜻을 이해한 안젤라도, 얼굴이 달아오른 민수도 할 말을 잃었다.      


잠시 뒤, 민수는 별다른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수첩에 옮겨 적으며 찾아보겠노라고 했다. 안젤라는 집에 혹시 아픈 사람은 없는지 물으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픈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자 약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건 다음 봉사 때나 가능했지만, 적어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는 걸 그녀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게 그녀가 에이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오늘도 민수의 발소리를 알아들은 사람들은 먼저 문간에 나와 민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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