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노 Art Nomad Nov 19. 2024

#07 바할라 나 7화 _ 한국산 쓰레기

신의 뜻대로

뒤따라 나온 안젤라는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겼다. 민수의 가슴팍이 젖어들었다. 아이들이 연달아 실종되었다는 말에 안젤라는 남일 같지 않았다.      


민수는 이럴 때 가슴에 이는 뜨거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아부나 아첨, 거짓말, 허세 이런 말들은 배우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배우지 못했다는 핑계로 머뭇거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저 어색하게나마 등을 약간 토닥여 보고는 그마저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필리핀 여자와 재미 본다는 말을 들을까, 그게 안젤라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민수의 손은 오늘도 오갈 곳을 잃었다. 

     

멋쩍은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다윗이 무언가를 발로 비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봉사 나온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표정이 있었다. 썩은 내 나는 매립지 위에 세워진 마을의 제1 구역부터 제3 구역까지 바쁘게 돌며 무거운 물품을 나누어주다 보면 감정을 감추기가 어렵다.     


사람 좋은 척 예의를 갖추던 사람들도 여기만 오면 대놓고 욕을 하거나, 구역질하는 사람도 있다. 성철은 이런 축이다.     


하다못해 지친 기색이 뚜렷하거나 비위가 상해 콧등을 찡그렸다. 기숙은 이 축이다.      


민수는 어떤 쪽이냐 하면, 의외로 웃는 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만큼은 희한하게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반죽이 좋은 아이들은 민수에게 달려와 쑥스러운 듯 팔을 뒤로 하고 몸을 배배 꼬았다. 이럴 때 민수는 하나밖에 없는 딸 수지 생각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래 결혼할 생각조차 없었던 그는 자신이 이렇게 아이들을 좋아할지 몰랐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미소가 고정이라도 된 듯 얼굴에 달려 있었지만, 만들어 씌운 듯한 그 표정 외에는 다른 표정이 없었다. 질문도 없고, 고통이나 연민도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싹싹한데… 어딘가 무엇이 빠진 것만 같았다.      


민수는 고개를 모로 틀고, 그가 무얼 그렇게 발로 비비는지 알아보려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다윗이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이게 왜 여기 있죠?」 

「뭔데…」     


민수는 다윗의 시선이 가닿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민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민수는 그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민수는 다윗 역시 그게 무언지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다윗은 분명 ‘이게 뭐죠?’ 하고 묻지 않고 ‘이게 왜 여기 있죠?’ 하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발끝에는 '해피바쓰'라고 뚜렷하게 쓰인 바디샤워 용기가 있었다.      


「이거 향이 엄청 좋더라고요. 저 군대 있을 때 PX에서 팔던 건데, 이게 왜 여기 있을까요?」      


쓱쓱 발로 쓰레기 더미를 헤치던 다윗이 다시 물었다.      


「이거 봐요, 이건 삼다수예요. 이 물 진짜 맛있었는데. 프렌치 카페도 있네요? 저도 이거 좋아하는데. 근데 이건 빨간색이네요. 빨간색은 스모키인데 이건 좀 쓰더라고요. 전 노란색이나 초록색을 좋아했어요. 달달한 걸 좋아하거든요. 이름이… 돌체였던가?」      


이쯤 되면 질문이 아니라는 건 민수도 알았다. 그건 일종의 향수(鄕愁)였다.      


「어? 이건 스팸이에요! 오오… 그거 아세요? 이런 노란 뚜껑 있는 스팸이요, 이건 한국 거라는 뜻이에요. 필리핀 스팸은 이런 뚜껑이 없거든요. 그리고 한국에는 스팸 종류가 많지 않더라고요. 음… 생각보다 덜 짜서 신기했어요. 동기들은 세상에 별의별 스팸 맛이 있다는 걸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뭐 솔직히 알아서 좋을 건 없죠. 스팸 몸에 안 좋다고 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건강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이런 걸 좋아하다니, 이해가 안 돼요. 그죠?」


민수는 이제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발밑에 쌓인 한국산 쓰레기는 수치심을 자극했다. 

민수는 다윗이 왜 이런 얘기를 자기에게 건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윗이 고개를 들고 민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런 게 왜 여기 있는 걸까요?」     


민수는 순간 오싹했다.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데도 팔의 잔털이 솟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되받아 칠뻔했다. ‘한국이 한국산 쓰레기를 수출해서 그런다, 왜!’ 하고. 민수는 가까스로 으쓱 어깨를 들어 보이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06 바할라 나 6화 _ 실종된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