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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가드너 Dec 02. 2021

우리 집 다람쥐가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린 나의 하늘다람쥐 친구.



함께 지내던 다람쥐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하늘로 증발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여느 때와 같이 방 어딘가에 있고 싶어 하는 시기라 나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다음엔 방 곳곳에 숨겨둔 먹이로 잘 지내고 있겠거니 믿는 마음이었고, 다른 방에 잠깐 놀러 갔을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내가 그 다람쥐와 2년 살면서 익숙해진 모든 패턴을 벗어나자 이상한 낌새가 피부로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하늘다람쥐가 사는 환경은 천차만별이고 비록 환경은 내 방이지만 바람이 뭔지, 햇빛은 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방충망이 있는 창가에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햇빛이 간접적으로 들게끔 숨어 지내는 구조도 바꿔줬다. 자연을 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케이지 안에 수경 식물도 넣어 같이 지내게끔 했다. 최근에 겨울바람이 추워지자, 나는 추위가 걱정되어 케이지를 방 안쪽으로 옮겨줬다. 그때부터였다. 그 친구는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고 집 밖을 유난히 열심히 돌아다녔다.


아이가 사라지기 전 며칠은 정말 유난히 활동성이 좋았다. 열심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살펴보고, 먹이도 열심히 먹고, 먹이를 먹고도 새로운 먹이를 찾았다. 그 친구가 사라진 날은 새벽 6시까지 그 친구가 방을 돌아다니며 유난히 모든 것들을 기웃거리며 살펴보던 날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새벽 6시까지 시끄러웠던 전날과 다르게 방이 정말 고요했다.


먹이를 숨겨놓는 특성 탓에 평소 하던 대로 숨겨둔 먹이를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먹이가 연이어 줄어들지 않자, 집안 곳곳 먹이를 두고 홈캠을 설치해 모니터링했지만, 아이는 없었고 먹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배변 흔적도 하나도 없었다. 회사에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놓치는 시간 동안 밥을 못 먹고 아사하거나, 어딘가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자꾸만 상상 갔다. 작은 동물인 만큼 내가 이 생명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갔다. 자연에서는 그 친구가 자율적으로 새로운 먹이와 환경을 찾을 수 있지만, 이 방에서 내가 제공하는 것은 진짜 딱 이 방과 내가 주는 음식들이기에.


나는 이상한 낌새가 피부로 느껴진 그 순간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뒤졌다. 책장, 옷장, 책상, 침대의 위아래, 벽의 틈, 그리고 모든 서랍, 서랍 속 모든 물건들. 후드티의 모든 주머니, 에코백 등 하늘다람쥐가 숨기 좋은 모든 장소는 확인했다. 하지만 아이는 없었다. 이 정도로 찾았는데 없다니, 내가 놓치고 있는 장소가 있을까, 내가 갇혔는데 못 확인한 위치가 있을까. 


집을 돌아온 후엔 내가 혹시 몰라 놓쳤을 은신처 공간을 찾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 방을 함께 뒤졌다. 이만하면 진짜 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모든 짐들을 헤집으며 마신 먼지에 머리가 아팠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계속 들여다봤던 터라 자꾸만 현기증이 올라왔다. 포기할 수 없어

다음날 다람쥐를 찾기 위해 재택근무 일정으로 양해를 구하고 바꾸고, 점심을 거르고 그 시간에 거실, 부엌 등 모든 공간을 찾았다. 이 집에서 20년 간 살았지만 20년 치의 물건을 모두 뒤지기는 처음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혹시 몰라 모든 방에서 웅크리며 1-2시간 조용히 버텨보며 그 친구가 나오기 기다리기를 며칠. 식량 없이 지내는 골든타임은 야속하게도 지나갔고 유난히 차가웠던 새벽의 공기는 정말 유난히도 금방 지나갔다.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이상 할치만큼 아무런 흔적이 없다. 혹시라도 먹이 먹은 흔적은 없지만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 적외선 카메라 대여를 회사 업무 중간 틈틈이 알아봤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활발하던 아이가 증발하듯 모든 흔적이 없을까. 그때였다. 방충망을 밀어보니 견고해 보였던 방충망 사이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틈이 벌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나갈 만큼의 공간은 아닌 것 같았지만, 하늘다람쥐를 키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반응은 한결같았다. 나가고도 남는다. 대체 언제부터 방충망이 벌어지기 시작했는지, 추운 날씨에 열어두지 않는 창문인데 언제 나간 건지,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다만, 호기심이 많은 하늘다람쥐가 방충망 사이로 나갔을 것이라는 단서는 생겼다. 아파트 마당을 살펴보긴 했었지만, 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혹시나 겨울이라 너무 추울까 봐 잠잘 곳과 먹이를 두었다. 아이는 자유를 찾고 잘 지내고 있을까. 너무 추운 날씨에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최근 새롭게 만들어줬던 은신처


오빠는 군 시절 너무나도 외로워서, 하늘다람쥐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하늘다람쥐는 야행성이다. 그것이 그 아이를 반려동물로 키우게 된 주된 이유였다. 강아지와 같이 사람과 보내는 낮시간이 중요하지 않고 독립적인 아이. 그래서 책임질 수 없는 외로움을 겪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그 야행성이라는 점이 그 아이가 없어지니 찾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어 돌아왔지만. 해외 취업을 한 친오빠의 하늘다람쥐를 더 나은 좋은 곳에 입양 보내지 않고 내가 키우겠다고 한 것은 그 외로움에 대한 위로를 지키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소중했고, 앞으로의 시간을 더 잘해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를 풀어서 키웠다. 하늘다람쥐는 높은 나무에서도 안전하게 활강해서 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물이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코앞에 있는 해바라기씨를 몇 분 동안 안 먹을 정도로 경계하던 시기를, 내 손 위로 절대 안 올라오던 시기를 지나서, 내 몸 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정도로 나와 익숙해졌을 때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나는 야속하게도 반복된 패턴을 읽고 믿고 안심했기에 사라진 이후의 이상 증세가 안심 범위 내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골든타임을 야속하게 지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패턴이라는 것이 얼마나 안일함이 되는 순간 위험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패턴이 한순간에 깨질 수 있음을 이제 안다. 추위를 싫어할 줄 알고 바꿔줬던 위치였지만 내가 느끼게 했던 햇빛과 바람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평소 위험한 좁은 공간을 파고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케이지에 가두는 게 싫어 방 안에 풀어줬지만, 아이에겐 방이 새로운 차원의 케이지였을 수도 있다.


길에서 발견한 우리집 다람쥐 같은 벽화와 내가 그린 우리집 하늘다람쥐


찾는 과정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은 현실이었다. 아이가 없어졌지만 아이를 찾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생각, 모든 것을 내가 자초했다는 생각, 내가 자유를 줬지만 위험을 줬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유분방함 대신 위험함을 줬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가족의 부재. 같이 찾아줄 가족이 없고, 이런 상황에 우호적이지 않아 가족이 잠든 시간에 몰래 찾는 내 모습이, 그 과정이 내겐 스트레스였다. 생명 하나를 지킬 자격도 환경도 되지 않으면서 키웠던 거구나. 내 욕심이었다. 내 방안에서는 안전했을 수 있었어도, 내 방을 벗어나는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환경은 대비하지 못했다.


찾는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간 나에게 주었던 위로였다. 방 안에서 같이 조용히 숨 쉬어주는, 기척을 내주는 동물의 힘이 정말 대단한 거구나. 그래서 그 생명이 같은 공간에서 꺼져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힘든 취준 시절부터, 전환형 인턴 기간 풀어놓은 아이가 다칠까 봐 새벽 내내 깨면서도 나는 어쩌면 경계심이 유난히 많은 그 아이가 나랑 유난히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은 만큼, 그 친구를 돌보면서 내가 위로를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방 밖으로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려 마음이 심란했을 때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슬펐던 모든 순간에 작은 생명이 있었다.


왜 사람은 뭐든 잃고 나서야 느끼는 걸까. 브런치 글에 그간 느꼈던 상처를 들여다보겠다고 글을 몇 개 채 올리지 않은 지금, 그 모든 순간에는 작은 생명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고 숨는 것을 좋아하는 하늘다람쥐. 그 모든 습성이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지금, 그리고 방충망 사이에 벌어진 틈을 발견하기까지. 어쩌면 아이는 더 가고 싶은 세상을 향해 갔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유난히 추운 오늘이 아닌, 날이 좋은 봄날 나가지. 봄바람에서 꽃 향기도 나고, 피어나는 식물에 심심하지 않은 봄에 나가지.


마음의 아무는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브런치 글 발행 2건도 되지 않아, 위로에 구멍이 생겼다. 분명히 잔잔한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 긴 만큼, 앞으로도 마음의 구멍은 더더욱 크겠지. 그래도 마음의 위로를 다하며,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어쩌면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돌아오고 싶었을 수 있었는데 골든타임을 놓쳐 정말 미안해. 너는 작지만 전혀 작지 않은 동물이었다. 너의 기척에 위로받았던 모든 순간을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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