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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가드너 Dec 31. 2021

2년 전 경쟁자가 오늘의 내 승진을 축하해줬다

공채 결과가 나왔던 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2년 후 승진


내 팀에서 선물해주신 승진 축하 꽃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나는 평범한 대학 졸업생으로서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채에 실패하면 내게 남는 것은 공백뿐. 나에게는 치열한 노력의 흔적이었어도 나를 뽑는 사람들은 그것을 공백이라고 불렀다. 참 감사하게도 나는 공채 과정에서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결과가 나오는 날은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서류 전형, 인적성, 임원 면접을 통과해 다시 한번의 면접 과정 대신에 5주 인턴 과정을 거치기까지 거의 몇 달의 시간. 결과가 나오던 그날은 취업 준비로 나빠진 건강 상태로 미루던 병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병원에서 치료할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 길에 합격 소식을 들었고, 약간은 잔인하게도 통장엔 5주 간 진행했던 인턴 전형의 월급이 들어왔다. 이게 바로 병 주고 약 주고 던가.


합격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실 기뻤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지만,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같이 일하던 누군가를 밀어내고 얻어낸 자리였고 그 친구들이 진정 나에게는 배울 점 넘치는 대단한 경쟁자였기 때문에. 나는 5주간의 인턴 생활 동안 업무보다 그 친구들에게 배운 점들이 단언컨대 더 많았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진정으로 서로를 축하해주기 어려웠고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주기 어려웠다. 너무나도 대단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온 친구들이기 때문에 다른 어딘가를 가도 잘했을 것이라는 걸 모두가 그리고 그들도 스스로도 알았지만 그때는 모두가 그럴 수 없었다. 위로와 축하라는 것은 건네는 사람, 받는 사람을 만나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 돌이켜서 결과로 이야기하자면, 그 친구는 더 멋지게 나의 곁에 남았다.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나 언제나 닿을 수 있는 법이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친구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내 고객사의 주요 인물이 되었고 내가 속해있는 팀과 같이 일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도 잘해서 국제적인 수상도 이뤄냈다. 공채 과정에서 그 친구를 팀원으로 뽑는 내 팀이 그땐 갑이었다면, 갑의 존재로 돌아온 친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통쾌했다, 내 친구가 내 갑이라니! (나는 갑을관계가 명확한 광고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친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좋고 자랑스러웠다. 


곧이어 그 친구는 자신이 꿈꾸던 회사로 이직해 내 회사와 마주하는 건물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다니는 회사를 떨어진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니 누군 붙고 누군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더 좋은 길을 가기 위해서 돌아간다는 말이 시간이 지나 정말 현실로 닿았다. 이젠 언제든지 부르면 만날 수 있고 언제든지 물어보면 답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메리-크리스마스!와 승진

그리고 2년 후 이번 크리스마스 그 친구로부터 진짜 과분한 승진 축하를 받았다. 2년 전 경쟁 사이었던 우리가 2년 후 이렇게 서로를 축하해주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직급이라고 생각했기에, 스스로에게도 마음껏 축하해줄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진급을 하게 되면 그만큼 내 몫을 해내야 하는데, 한몫을 해내고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나 스스로 축하받을 생각이라고 못했던 그 순간이었는데, 진짜 넘치는 축하를 받았다.


항상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왜 유난히 나 스스로 내가 노력해서 얻을 것을 그대로 축하해주지 못했을까. 왜 남은 승진과 내 승진은 느낌이 다른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나 스스로 냉정한 잣대를 들이밀었을까. 회사에서 진행한 송년회에서 대리 진급자를 매년 소개했지만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마땅히 축하받을 일인지도 몰라 일을 하고 있었을 만큼 냉정한 회사 분위기에 익숙했던 나였다. 그렇게 내 이름이 호명될 때, 딱 2년 전에 내 모습처럼 공채 인턴 과정을 보내고 있던 내 옆자리 인턴 분이 나의 승진을 축하해주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2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올해는 정말로 숨어서 슬픈 날이 많았다. 직장에서는 성희롱 사건에, 줄줄이 직원들이 나가면서 팀도 해체되고, 가족들이 정말 심하게 다퉈 나까지 가족들이랑 대화 없이 지내야 하는 시간도 많았고, 키우던 다람쥐가 사라지고, 조금 괜찮아질 때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돌을 던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가는 것을 기억하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려고, 해결 방법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말 올해가 드디어 지났다. 올해를 잘 보냈다는 것에 진심으로 나 스스로 대견했다고 칭찬하고 싶고,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 보냈다고, 그간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일이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솔직히 달라지는 건 딱 1초, 그냥 넘어가는 하루의 시간뿐일 테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힘든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들도 많겠지. 힘든 날이 많다는 건 어쩌면 나 스스로도 잣대가 냉정하다는 게 아닐까요. 딱 남에게만 축하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위로해 줬으면 합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축하와 위로는 때가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 올해 참 고생했어요. 저는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올해의 마무리, 새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사러 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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