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두려움은 뒤집으면 기회가 될까
최근 누군가 회사에서 기댈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나에게 사수가 그런 존재라고 대답했다. 최근 사수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과장님이 되셨으니 이직하시면 미리 말씀해주셔야 해요"라고 썼다가 지웠던 오늘의 대화창.
직장 생활을 하면 '퇴사 직감'이라는 것을 장착하게 되는 걸까. 지금껏 퇴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평소와 똑같이 책임감 있게 일을 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평소라면 극복할 스트레스를 먼발치서 관망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이제 나와는 먼 이야기라는 듯이.
최근 직사수가 진급을 했고, 단순히 이직 타이밍이 좋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달라진 기류가 느껴졌다. 평소와 같이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 선배였지만 그 일에서 미래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내 뇌를 관통한 생각은 '이 일이 곧 내 일이 될 것 같다'였다.
모르겠다. 직사수가 퇴사하면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아 주변에도 아무래도 퇴사할 것 같다고 징징거리며 말한 요즘이었다. 이유있는 징징거림이 되어버렸고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속했던 팀의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2년간 6명. 팀원은 모두 사라졌고, 팀은 다시 찢어져 나는 아예 새로운 팀에 속하게 됐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떠나는 사회생활이란 건 알고 있지만 뭐랄까,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끼워가는데 큰 영향을 주고 일의 깨우침을 주던 사람이 부재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첫 단추와 팀에 대한 기억을 모두 온전히 나의 기억으로만 남가는 느낌을 줬다.
문득 두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밀물처럼 들어오지만 썰물처럼 빠질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일. 사회생활에서 할 줄 아는 게 많아질수록 할 일을 적게 만드는 것도 노련한 능력이구나 느끼는 요즘. 일에 쓸 수 있는 나의 에너지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나의 책임감과 욕심이 물리적인 일의 양을 견딜 수 없음을,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을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통제 불가한 영역들. 일도, 사람도 그렇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이 일어나게 될까.
회사에서 의미를 찾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는 것 같지만. 과연 이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생각하던 의미 있는 것들은 사실 진짜 의미 있는 것들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던 의미들이 퇴색되는 순간이었다. 뭐든 무슨 소용이었을까 싶은 느낌이었달까. 이러면서 사회인이 되는거겠지.
최근에는 정말 일을 하기가 두려워서 출근하기가 무섭고 편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긴장하는 느낌에 자꾸만 위장이 아프기도 했다. 처음으로 몸이 자꾸만 아프니 내 스트레스가 몸까지 전가된 것 같아 걱정스러운 요즘이었다. 사수의 퇴사 소식까지 듣자 출근이 두려워져서 집에 오자마자 12시간을 내리 잤던 내가 일어나서 도서관으로 가며 생각을 곱씹었다. 바로 '뒤집기'.
대학생활 동안 매번 내가 되새겼던 '뒤집기'가 생각났다. 한참 평범하게 느꼈던 모든 생각들에서 인사이트를 찾아보자며 토론을 거치며 기획서를 고치고 또 고쳤던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매일매일 조금씩 관점을 뒤집어보자고 했던 그때. 브러치 글쓰기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시작했었지. 그땐 그렇게 감각을 살아나게 하려는 나의 노력이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뒤집기가 필요할 때. 두려워서 퇴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바꿔야겠다.
허점은 뒤집으면 기회가 돼. 그럼 두려움도 뒤집으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 벌어졌어야 할 일, 난 조금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지도 몰라. 책임의 시각은 내 일의 관점의 시각을 바꿔둘 테니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팀에서의 팀원은 낙동강 오리알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조직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된다고 느꼈던 팀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벌어지지 않는 최고의 리셋의 기회일지도. 배울 사람이 없어져서 두려운 마음을, 내 뜻대로 정답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것. 진짜 나답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대학생활 동안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것들을 뒤집어 새로운 것들을 만드려고 노력했는데. 그토록 원하던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이 정형화되어 그 안에서 움직이는 나야말로 새로운 관점이 진짜 필요한 게 아닐까. 경력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이 어쩌면 뒤집어 새로운 출발선을 바꿔야 하는 시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