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끌다 May 17. 2021

노란 손수건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

내가 어렸을 적, 수건 돌리기만 하면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다리면 언젠가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괜한 기대감에 언제나 손수건만 쫓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손수건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노란 손수건이었다. 나 이외의 사람들이 많은 학교는 언제나 적응하기 어려웠다. 사람이 많은 곳에 본능적인 불편을 느꼈으나, 그 불편을 느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 주기를, 주목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수건 돌리기를 하면 늘 내 뒤에 손수건이 놓아져 있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노란 손수건을 건네받는 일 아닌가. 적어도 내 뒤에 손수건을 놓는다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어떻게 보면 참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남들은 누군가와 자리가 바뀌고 서로 돌고 도는데 나만 아무에게도 선택받는 일 없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워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수건 돌리기만 하면 그렇게 손수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그 손수건만 쫓다 보니 막상 내 뒤에 손수건이 놓아져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는 '탈락감'이 너무나도 싫었다. 나는 그렇게 소외받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무던히 발버둥을 쳤다. 누군가에게 선택받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막상 행복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답변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살다 보니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잘 몰랐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고, 두루두루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할 줄 알았다. 살다 보니 생각한 것들은 빗나갔다.


남의 행복을 좇다 보니
삶에서 자꾸만 술래가 되었다.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반에서 교우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자퇴를 했다. 왜 이렇게 자꾸만 엇나가는 걸까, 생각하던 찰나에 나를 만났다. 바닥을 기며 누군가의 손길과 온기를 갈구하던 나를. 나는 찌질한 나의 모습을 돌봐주기로 했다. 삐딱한 자세와 어색한 표정과 가끔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하는 '히키코모리 찐따'. 그게 내 모습이었다.





누구나 가끔 어떤 부분에서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완전하게 '주류'에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외딴섬처럼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그래, 내가 섬이라면 나는 나의 섬지기가 되겠다. 내가 섬이라면, 적어도 나는 나 스스로의 섬지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먹을 것은 잘 먹고 있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요즘 관심이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그렇게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사람은 충분히 스스로 행복하다.


나에게도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넉넉하고 여유로울 정도의 돈을 버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신뢰감 있는 관계와,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바란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있으면 행복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또 내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한 지도 안다. 행복을 '쫓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단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충분한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글을 쓰며 나의 유년시절과 지금의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도 사람이 많은 자리는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조용히 주목받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선택의 척도,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