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잡음들이 있었다. 적어도 5월까지는 계속 조정될 거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리고 나는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부터 계속 "저요! 저요!" 하며 차라리 잘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손을 들고 있다.
발전이 없는 것만 같은 업무에 또 한 번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네'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정이 있었나' 싶은 순간도 있다.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회사는 내게 애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를 '애증'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팀원들 때문일 것이다.
"옮긴 회사는 어때요?"
"이전 회사보다는 나은 듯"
자주 묻고 답하는 건 이런 내용의 대화들.
팀원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한 명씩, 한 명씩 떠나는 중이다. 물론 나는 "우와 부럽네... 나도 퇴사" 정도의 답변을 한다.
한 달 내내 지금에야말로 이직하기 딱 좋을 때라는 말을 밥먹듯이 반복했다. 입맛이 떨어졌고 최근에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무기력해 있었다. 남아있는 팀원들이 나의 정신건강을 걱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거 딱 우울증 초기 같은데..." 오늘은 마침내 주중에 한 번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회사 한탄과 욕도 지긋지긋하고 나도 내 앞길을 찾아 떠나야 할 시기가 아닌가 자주 생각하곤 한다.
왠지 모르게 나만 가라앉고 있는 배에 그대로 남아 프로 배웅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요즘...
과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은 뒤로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 분위기가 내가 하는 일과 팀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그때의 난 이런 글을 적었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프로 배웅러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약 1년 뒤, 나는 회사와 이별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회사와 단절되었다. 권고사직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회사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나도 결국 잘렸다.
물론 작년부터 마음속으로 계속 손을 들고 있긴 했다. 근데 막상 그 일이 실제가 되니 기분이 묘한 건 사실이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회사에서 1개월 치의 위로금도 함께 지급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하게 되자 회사가 최악은 아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대로 회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긴 했다.
퇴사한 후 지금까지 계속 쉬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푹 쉰지 3달 가까이 된 것 같다. 그 와중에 할 일도 하긴 했다.
올해 초에 편입한 학교의 1학기를 마무리했고, 이번 달에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못했던 것들도 했다. 운전면허 따는 것이나 블로그 하겠다고 했던 것들 말이다. (미루기 대마왕이라 운전면허만 1n년을 미뤘다. 아놔..)
작지만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긴 하나 블로그를 통해 협찬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운전도 하고 있다. 내가 온갖 핑계로 미뤄왔던 것들은 이상한 완벽주의와 욕심만 내려놓자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니 권고사직을 당해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빠릿빠릿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마음만 조급했지 남들보다 약간 느린 사람이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내 나름대로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재작년이나 작년처럼 '내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정말 조금씩이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으므로. 다시 이직할 타이밍이 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더 강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어디에서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