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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끌다 Jul 03. 2024

애매한 성인 ADHD?

요즘 성인 ADHD에 대한 말들이 많다. 나는 알고만 있었지 내가 이걸 검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검사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회사 동료분의 추천을 받아 ADHD 검사를 했다. 그 동료분은 ADHD로 약을 먹고 계신 분이었는데, 보다 보니 나도 맞는 거 같다고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는 내가 당연히 아닐 줄 알았다. 그래서 검사를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때의 난 조용한 편에 가까운 아이였던 것 같았다. ADHD라고 하면 겉으로 굉장히 산만하고, 한 곳에 잘 있지 못하고, 장난이 많은 그런 쪽에 가깝지 않은가. 물론 지나고 나서야 그건 내가 단면적인 면만 본 거라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서 그런지 그 당시 내 알고리즘에는 온통 성인 ADHD에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검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회사 동료분의 경험담과 이야기들, 온갖 콘텐츠들을 통해 결과가 어찌 되었든 검사를 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맞든 아니든 일단 한 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걸 먼저 고백해야겠다. 나는 정신과 자체에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 병원에 간 날에는 뭔지 모르게 긴장됐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 자체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 전 회사 동료분이 많이 도움을 줬다. 막상 상담을 하면 까먹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나에게 가기 전에 말할 것이 생각나면 메모를 해두라고 말했다.


그 메모에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두고 오는 건 기본이고 개인적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기 힘들어할 때가 많다는 것(흥미가 떨어지는 대화는 거의 날리는 수준으로 잘 못 듣는 편이다.), 날짜 감각이 없는 편이고, 별거 아닌 고지서 금액을 처리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몇 번이나 연체되었던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메모해 뒀던 것들을 토대로 나의 과거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거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집중하신 부분은 나의 기분에서 양극성이 조금 보인다는 거였다. 평소에도 우울감이 있을 때와 좀 더 적극성을 띄고 있을 때 완전히 달랐다. 적극적일 땐 모임을 몇 개씩하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우울감이 있을 땐 집 밖으로 아예 나오질 않았다. 6개월 동안 히키코모리로 집에만 있었던 적도 있다.


"양극성이 조금 더 보이는데.. 원래부터 이랬나요?"

"음.."

잠깐 고민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원래부터 나 그랬네? 싶었다.

"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계속 잘 놀던 친구들인데 집으로 찾아오면 놀기 싫고 부담스러워서 안 놀겠다고 가라고 쫓아낸 적도 있어요. 근데 왜 그랬지?"


생각해 보니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세상 외향적인 사람처럼 친구들과 지내기도 했고, 가끔 너무나도 혼자 있고 싶어서 같이 놀자고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들을 내쳤다. 그냥 사람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후부터는 정말 여러 가지 검사를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주의력 결핍에 집중되어 있는 성인 ADHD가 맞긴 했다. 근데 좀 애매한 케이스였달까?

다른 검사에서는 다 맞다고 나오는데 뇌파는 또 깨끗해서 이럴 땐 나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고 했다. 처음엔 그게 어떤 말인지 몰랐는데 '약'을 말하는 거였다. 어쨌든 이것도 정신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약을 먹을지 말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는데, 나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거였다.


고민하다 결국 약은 안 먹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정할 때만 해도 이상하게 또 긍정적인 감정이 갑자기 훅- 들었다. 지금까지 약 안 먹고도 잘 살았는데 이제 인지는 했으니 잘 될 일만 남은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약 안 먹을 수 있으면 안 먹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그리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또 순식간에 기분이 바뀌어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애매하니까 오히려 불안했다. 이렇게 결과도 애매하니까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나같이 이런 애매한 케이스도 있는 걸까?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아예 뇌파에서도 맞다고 나오면 약이라도 먹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런 데서도 애매하다니. 난 역시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검사 결과지를 두고 왔다.

그걸 역에 도착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현타가 왔다. 물론 뭔가를 두고 오는 거 자체는 일상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걸 두고 올진 정말 예상 못했다. 멘붕이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무섭기도 했다. 이런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과는 잠시 뒤로하고, 일단 약은 먹지 않기로 한 뒤부터 나름대로 좋아지기 위한 방법을 써보고 있다. 지금 가장 해결하고 싶은 게 돈에 관한 문제들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회복, 끈기를 기르는 것 정도인데 가계부와 일기를 쓰는 것으로 이 부분을 연습하고 있다.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대단하게 말고 아주 작게 시작하려고 했다. 원래도 그랬지만 그 이후 더더욱 나만의 기록 시스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사 후 일상생활에서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와 주의력 부족으로 또 한 번의 현타를 맞은 것까지 그 부분은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다룰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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