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분명 괜찮은 기분이었다.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어쩌면 올해는 잘 풀릴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현실감 있게 최대한 작게 시작해야지, 계획도 과하게 세우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집중해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저녁 7시쯤부터 갑자기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도무지 어떤 문제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내가 진짜 미친 거 아닐까 싶었다.
오히려 그냥 쭉 우울할 땐 '지금 좀 우울한 상태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래서 우울하구나' 하고 납득이 됐는데, 이건 괜찮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심지어 환경은 오히려 더 좋아졌는데) 갑자기 기분이 급격하게 내려가니까 너무 막막하다.
책도, 게임도, 드라마나 영화도, 평소에 보던 유튜브 영상들도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그 어떤 걸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일찍 자기 위해 10시쯤 항우울제를 먹었다. 침대에 누워서는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SNS를 봤다. SNS도 재미가 없다. 평소에 화가 났던 주제에도 화가 안 난다. '오늘 몸을 좀 안 움직여서 그런가. 내일은 수영을 가야겠다. 일찍 일어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려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또 수면이 문제다.
잠이 안 와서 그냥 누워 있다 보니 또 잡생각이 든다.
우울증이 싱크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건드린 것도 아니고 누가 덫을 놓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땅이 꺼지는 것처럼 기분이 꺼진다.
그러다가 또 아무 이유도 없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특히 엄마가) 힘들게 살아온 삶, 그리고 내 삶까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상태인데 왜 이런 잡스러운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안 힘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이 지루한 걸까? 나는 나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지 않으면 심심한 걸까?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싫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꽉 막힌 것처럼, 체한 것처럼 불편했다. 손끝도 갑자기 이유도 없이 욱신거렸다. 실제로는 먹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어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까보다는. 약도 어쩌지 못하는 내 상태를 글쓰기가 조금 도와주는 기분이다. 내 속에만 고여 있던 걸 어쨌든 바깥으로, 글로 꺼내서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누워 있을 때보다는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쓴 게 나은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 생각이 난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을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에게 글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서'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을 바꿔야겠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게 맞다. 내가 바깥으로 풀어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설사 글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일기처럼 써야지.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