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끌다 Apr 02. 2021

히어로처럼 멋있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만화영화를 참 좋아했다. 이불을 덮은 채 안방에 누워 TV로 만화를 보던 게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재미였다. 내가 원했던 건 만화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거였다. 원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삶. 생각만 해도 멋질 것 같았다.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그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금세 다시 일어나서 악당을 물리쳤다. 언제나 끝에는 친구들과 또 부모님과 화해했고, 라이벌이나 주인공을 싫어하던 사람들도 곧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위험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짠-하고 변신도 한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완전히 진화하는 것이다. 정말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흔한 사람 중 하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도 악당을 물리치기는커녕 내 지지부진한 일 하나조차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아니, 사실은 원하는 삶은 있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돈이 안 되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돈을 더 좋아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완벽하기를 원했고, 완벽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강박도 있었다. 완벽한 삶을 꿈꿨던 이유는 내가 완벽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고 하던가. 완벽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완벽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문득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물속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마치 계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완벽을 떠나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쩌면 그렇게 찾기가 어려웠던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내 삶을. 히어로처럼 멋있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진정으로 '내'가 되는 순간들 말이다.


자, 진정으로 내가 정말 행복해했던, 또는 행복할 순간들을 그려보자. 어떤 날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은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쓰는 일이고, 나는 돈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 어떤 날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맥주를 마시고, 애리조나의 도로 한복판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밤을 구경한다거나, 유우니 소금사막에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고 있는 나…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있지 않을까. 어떤 날은 나 혼자서 일기를 쓰기만 해도 행복하고, 어떤 날은 사람들 속에서 나에 대해 말할 때 행복할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들을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 안에서 나는 평안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길 원하며 수많은 부서진 것들을 치유하길 원한다. 글을 계속 쓰길 바란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것에서 누군가가 사랑을 보기를 바란다. 일상 속에도, 선택의 순간에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더 깊게 써 내려가다 보면 그 중심에는 완벽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있다는 걸 보게 된다.


만화영화 속의 히어로처럼 멋있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멋들어진 삶이 아니더라도 충분하다.


결국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란, 내 삶의 모든 미완성인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완벽한 히어로가 아니라, 불완전한 나, 그 자체로서.

작가의 이전글 어떤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