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물류업을 하게 된 과정
사업과 관련된 지출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사용하지만 정작 저 자신한테 사용하는 지출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색합니다. 1년에 쇼핑 한 번을 하지 않고, 신발도 한 켤레로 몇 번의 사계절을 버팁니다. 그나마 저에게 하는 사치는 매일 가는 카페뿐입니다.
그런 제가 2024년 3월 현재 벌써 세 번의 쇼핑을 해서 신발 네 켤레와 옷 열 벌을 구매했습니다. 이 중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유는 테무와 같은 중국 쇼핑몰의 국내 진입입니다. 듣기로 테무는 중국의 생산공장에서 한국의 소비자를 바로 이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하고, 그렇게 사용자가 늘어나니 주문 물량도 늘어나서 규모의 경제도 이뤄졌을 거고, 더욱이 테무라는 서비스 자체가 돈 벌 생각은 없는 것처럼 해외 배송과 환불, 판매, 광고를 하니 저 같은 사람마저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신발을 클리닝 맡기는 비용으로 새 신발을 구매할 수 있고, 어차피 국내에서 판매되는 물건들도 결국 판매자들이 중국에서 싸게 들여온 것이니 품질도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품질이 좋지 않다고 해도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화도 나지 않습니다. 저도 테무에서 처음 구매한 물건 중에 몇 개 실패한 경우가 있는데 그건 상품의 문제이기보다는 제가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구매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아직 뜯지 않은 것도 있지만 잘 사용하고 있는 것들만 해도 이미 저에게는 과하게 남는 장사였습니다.
하지만 난 해외 물류업 대표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테무는 신세계이지만 해외물류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헬게이트와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테무를 사용하면서 이제는 굳이 복잡하고 귀찮은 해외직구를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굳이 해외직구 할 필요 없겠네...'
물론 실제로 그렇지 않은 면도 있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테무와 같은 서비스들은 늘어날 거고, 그러한 과정에서 구매 가능한 품목과 국가도 늘어날 겁니다. 내가 판매하는 물건을 지금 당장 내가 생산해서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해도 경쟁이 안 될 지경인데 나중이 되면 어쩌면 개인 온라인 셀러나 쇼핑몰 사장님들은 역사에 한 줄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업으로 하고 있는 해외 물류업의 시작은 개인 해외직구였습니다. 개발 회사 6년 다니다가 퇴사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경험, 자본만큼이나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운 좋게 뭔가 하나를 찾았고, 그게 개인 해외직구를 대행해 주는 업무였습니다. 해외직구대행/구매대행/배송대행 등 제가 했던 일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고, 해외 소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의미 있는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해외직구는 결국 그만두어야 할 일
문제는 구매대행업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의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확신이 들었을 때 테무나 알리가 지금처럼 활개 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구매대행업 자체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제가 직접 그 일을 하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뭔가 대안이나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 계속 머리와 눈알을 굴렸습니다.
해외 물류업
그러다 찾은 게 해외 물류업이었습니다. 구매대행업의 고객은 대부분 해외직구를 하는 개인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개인이 아닌 기업 한 곳이 저와 거래를 하고 있는다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업 고객이라고 해도 단 건 주문을 하는 경우는 개인 고객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은 동일한 상품을 매일매일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고 있었고, 그 소비자에게 배송 보내는 업무를 제가 하고 있던 겁니다.
이런 기업 고객을 늘리면?!
구매대행업은 결국 그만두어야 할 일인데 나한테 여러 건의 배송 업무를 매일 맡기는 기업이 있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유형의 고객이었습니다.
한 번에 여러 건의 주문을 요청한다
해외 상품의 구매가 아닌 배송 업무를 맡긴다
개인이 아닌 기업 고객
이 고객 유형의 끄트머리를 계속 잡아가면서 뭐가 나오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타이틀이 해외 물류업입니다.
거래 금액 단위가 바뀌었고,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는 해외에서의 재고 관리와 보관/포장/배송 업무이며, B2C가 아닌 B2B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초에 테무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에 바로 몇 개 상품을 구매해 봤습니다. 옷, 신발, 무선이어폰... 모두 중국산이었지만 그건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가볍게 무시 가능한 수준이었고, 국내에서 더 비싸게 구매했어도 어차피 중국 제품인 건 변함이 없기도 했습니다. 해외배송인데 배송비 없고, 배송도 빨랐습니다. 상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옷이나 신발은 국내에서 주문한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으아 올 게 왔구나
해외 물류업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구매대행업은 의도적으로 무시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매대행업의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었고, 해외 물류업에서 결과가 발생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테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직접 사용해 보니 이게 내가 우려했던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건 시작일 뿐이겠죠. 지나가면서 봤던 그 하나의 기업 고객을 정말로 지나쳤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전부터 줄어든 매출에 고민이 한가득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외물류업으로 전환한 덕분에 그 타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건 아닙니다. 이제는 매일 기업 고객들과 만나고, 협의를 하고, 설명을 하고, 계약을 맺으면서 구매대행업보다는 큰 규모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구매대행업처럼 해외물류업도 결국 테무와 같은 회사들한테 먹힐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테무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보내야 하는데 이게 해외 물류업과 관련이 없는 게 아닙니다. 이미 여러 해외 업체가 한국에 대형 물류 창고를 짓고 있습니다. 저 같은 하찮은 개인이 그런 기업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입니다. 아니 해외 물류업 분야에서 이제 막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메기도 아니고 최상위 포식자의 활동 영역과 겹쳐 버린 겁니다.
구매대행업을 할 때도 그렇고 해외물류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 대기업이나 대부분의 경쟁자가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것들만 취급하려고 했습니다. 그들과 경쟁해서 이겨낼 자신도 없었고,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승리일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제한이 더 많은 걸 찾았고, 남들이랑 다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거나 참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되겠다 혹은 이거다, 해야 한다 싶으면 그냥 했습니다. 안되면 당연한 거고, 되면 그 하나 덕분에 1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로 매년 버텼고, 그 하나를 찾아 내년을 버티기 위해 매년 달렸습니다. 해외물류업은 계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찾을지 아니면 여기까지 일지... 뭐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