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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아니라 위기

런던 시내의 시위대를 보며

by 앨리스

지난 월요일, 나는 런던 시내에 나갔다가 엄청난 시위대를 만났다. 런던 한복판의 레스터 스퀘어 길이 꽉 막혀있었고, 역에서 코벤트가든까지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데 막히지 않은 길을 찾아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다. 무슨 메시지를 말하는 건가 하고 찾아봤더니 그들은 지금의 기후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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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시위대, 그들이 나눠 준 리플렛

코로나 이후 이렇게 대규모의 시위대를 길에서 보는 풍경 자체가 생소했고, 평일 대낮에 유동인구 가장 많은 길을 다 막은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독특한 건 마치 축제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시위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 적어도 내가 이 날 본 광경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https://www.bbc.co.uk/news/uk-48607989


나도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에 불평불만했었는데,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에 여름 날씨는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날은 베트남보다 더웠고 비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그 변화는 훨씬 심해졌고 지구 곳곳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로 난리였다. 최근 몇 달만 해도 독일에는 홍수가, 그리스와 터키에는 산불이, 미주 서부에는 엄청난 폭염이 있었다.


3주 전쯤에는 베트남에서 볼 법한 폭우를 영국에서 목격했다. 이 날 나는 운전 연수 중이었는데 차 앞 유리가 아예 안 보일 정도로 비가 2시간 동안 세차게 와서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해도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배수가 잘 안되는지 차도와 인도의 경계 부근에는 금방 물이 차올랐다. 이 날 소셜미디어에는 물에 잠긴 지하철역, 도로 등이 잔뜩 올라왔다. 베트남에서는 이 풍경이 익숙했는데 영국에서까지...? 원래 이렇게 강한 비가 오나 싶어서 찾아보니 최근 이런 기습 폭우에 물난리가 나는 게 기후 변화 영향이 없지는 않다고. (그 외에는 도시화로 인한 인구 집중, 낡은 배수 시스템 등)


https://www.bbc.co.uk/news/science-environment-57969877


그리고 얼마 전, IPCC에서 내놓은 리포트에 대한 기사가 BBC에 매우 자세하게 실렸다. 결론은 인구 증가가 확실히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미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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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의 마지막 기회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어야 그나마 사람 살 곳이 된다고 했는데 날짜를 보니 205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https://www.bbc.co.uk/news/science-environment-58130705


영국 와서 생긴 습관 몇 가지
1) 채식

살면서 베지테리언/비건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아마 한국에 산다면 대부분) 생소했는데,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 채식이 도움이 된다는 건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지테리언, 비건으로 살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채식을 지향한다. 양고기는 원래 잘 안 먹으니까 점차 소고기를 줄이고, 가능하면 닭이나 생선으로, 또 어떤 날은 두부로 단백질을 섭취하기도. 라떼는 보통 오트 밀크로 먹는다. 평소에 우유를 아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이건 쉽게 대체 가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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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부요리들

그리고 영국에 와서 좋은 건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재료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트에만 가도 non-dairy, meatfree 제품이 한가득. 또 코로나 이후 유행하는 밀키트 구독 서비스 중에 '비건 밀 키트'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9803b574-7a83-4d2d-9938-ff7c7535a31e_Screenshot+2020-03-10+at+12.53.21.jfif 출처: allplants

나도 요리하기 귀찮을 때를 대비해 구매해 봤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돼서 아주 간편. 의외로 맛도 괜찮았다! 또 밀키트 보낼 때 썼던 보냉재랑 박스는 업체로 다시 리턴 가능. 어디서 본 글인데 1명의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보다 10명, 100명이 온건하게 채식 지향을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채식이 힘들다면 고기 섭취를 이전보다 10-20%만 줄여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건강 챙긴다 생각하고 하면 어렵지 않다. 또 여기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식당마다 항상 있기 때문에 외식도 문제없는 걸로. 의외로 한식으로 채식 요리하면 정말 맛있는 게, 간장 양념이 들어가면 뭔들...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닭/생선/계란 정도까지 먹는 베지테리언은 한식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2) 플라스틱 빨대 못 본 지 한참

마트에서 놀랐던 게, 보통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 음료들 보면 항상 빨대가 붙어이었는데 여긴 그게 없다. 처음에는 불량인가 했는데 영국 정부에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정책을 실시해서 그렇다고. 그래서인지 카페에서도 종이 빨대가 대부분. (베트남에서도 의외로 빨대는 공심채, 쌀 빨대 등을 많이 써서 이건 익숙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7085492&memberNo=33159364

--> 내가 작성한 베트남 노 플라스틱 운동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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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 없거나 종이거나


3) 실리콘 지퍼백 & 클립, 그 외 주방도구


부끄럽게도 코로나 이후 집밥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회용 지퍼백을 많이 썼었는데, 여기 와서는 실리콘 지퍼백 몇 개 사서 씻어 쓰고 있다. 특히 빵이나 대파같이 비닐 오염이 거의 되지 않는 물건들도 일회용을 썼던 게 죄책감이... 그리고 냉동식품이나 과자 같은 거 한 번 뜯고 다 소비하지 못했을 때 비닐백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케아에서 봉지 클립 사서 딱 싸매니까 비닐 낭비도 없고 좋다. 여기 와서 하늘하늘한 비닐백은 거의 안 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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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지퍼백, 클립


그 외에도 음식 데울 때 쓰던 랩은 전자레인지용 뚜껑으로 대체했고, 비닐장갑은 진짜 불가피한 거 아니면 그냥 맨손으로 요리한다. 베트남에서는 생수 박스로 샀었는데 여긴 물이 깨끗하니까 브리타로, 물티슈 대신 행주로... 뭐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노력 중이다.


4) 소비 줄이기

이건 좀 슬픈 이야기인데 영국에 와서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자연스레 쓸데없는 소비가 줄었다. (ㅠㅠ) 베트남에서는 거짓말 안 보태고 거의 매일 외식 아니면 배달을 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면 버는 돈 다 쓰게 될 수도... (심지어 그렇게 한 외식이나 배달이 그만큼 맛있지도 않....ㅠㅠ) 또 코로나 이후 외출이 줄어서 옷, 화장품 소비는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여기서 산 옷이나 신발도 방수 재질 필수템 밖에 없네...



grind.PNG 출처: grind

요즘 여기서 받는 택배나 밀키트 보면 거의 생분해 가능한(biodegradable) 재질로 돼 있다. 또 네스프레소 호환 가능한 캡슐 중에도 퇴비화 가능한(compostable) 것들도 나오는 중. (* 네스프레소 캡슐은 재활용 프로그램 통해서 돌려보낼 수 있음) 사실 안 쓰고 덜 쓰는 게 제일 효과적이긴 한데.. 하루아침에 생활 습관 바꾸는 게 참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비행시간이 너무 짧은 단거리 국내선 비행기는 금지시킬 수도 있다고 하던데 영국에서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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