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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pr 02. 2022

영국에서 장롱면허 탈출

공포의 라운드어바웃(roundabout)과 좁은 골목길을 지나

작년 여름, 나는 영국에서 운전연수를 받았다. 내가 사는 곳은 런던 센트럴이 아닌 외곽 지역이라 차 없이 다니기는 좀 힘들다. 여하튼, 나는 연수 10시간짜리를 하루에 1시간씩 받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아침 7시에(!) 나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때 차량 통행량이 적어서 도로주행을 최대한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 한국이었으면 2-3주 내에 끝났을 연수가 여기서는 두 달이 걸렸다. (중간에 선생님 여름휴가 감) 연수 시작하기 전에 10시간이면 하루 2시간씩 5일 연속할 수 있냐 했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ㅎㅎ; 꾸준히 길게 하는 게 좋고 그 사이에 혼자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에서 초보운전 표시 어떻게 할까


한국에서 운전 연수받을 때는 크게 '초보운전' 써 붙이고 다녔는데 과연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초보운전은 영어로 뭐지 생각하다가 찾아보니 여기에서는 P Sign이라는 걸 붙이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영국에서 초보운전 표시는 이렇게

아마존에서 'p sign' 아니면 'p plate'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제품. 뒷면이 자석으로 돼 있어서 차에 찰싹 붙는다. 보통 2개씩 묶어서 팔고 차 앞/뒤에 하나씩 붙이면 된다. 특별히 붙이는 장소에 제약은 없었던 걸로 기억. 우리 차는 보닛 부분이 철제가 아니어서 저 사인이 붙질 않는 바람에 나는 운전석 옆 + 조수석 옆 + 차 뒤쪽 이렇게 붙이고 다녔다. (1개는 테이프로 보닛에 붙이고 다니다가 날아가서 잃어버림..^^...) 


그리고 다니다 보면 L sign을 붙이고 다니는 차들도 많이 보인다. 이건 provisional license (수습 면허) 까지만 딴 사람들로 full license는 아직 안 받은 상태라는 것. 수습 면허만 있는 사람은 L sign 필수, P sign 정식 면허를 갖고 있지만 운전한 지 얼마 안 된, 말 그대로 초보를 위한 표시라 의무는 아니고 권고 정도다. 


https://www.gov.uk/driving-lessons-learning-to-drive/using-l-and-p-plates


영국에서 운전하기 전, 보험은 필수!


영국 면허증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운전 강사 차로 연수를 받거나 자기 차로 연수받는 것 둘 다 가능한데 (*한국에서 자차 연수가 불법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다.) 영국에는 워낙 오토 (= 자동 기어) 차들이 없어서 자기 차가 있으면 그냥 그걸로 연수받는 게 편하지 싶다. 물론 그전에 보험은 꼭 필수! 연수 시작 전에 선생님이 보험 몇 번이나 확인하던지.... 


내가 운전 연수 시작할 시점은 코로나 락다운이 풀린 직후여서 그전까지 운전 연수 못 받은 사람들이 워낙 밀려있다 보니 연수 신청해도 최소 1-2달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수습 면허까지만 있는 사람들도 연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바로 연수받는 건 어려웠다. 나는 내 한국 면허를 영국 면허로 교환해서 나오자마자 신청했는데도 2달 가까이 기다렸던 걸로 기억한다. 


공포의 회전 교차로 (Roundabout) 


영국에서 운전한다고 하면 제일 걱정하는 것 1순위는 핸들 방향이 한국과 반대라는 것. 그다음은 회전 교차로다.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건 내가 이전에 운전을 많이 안 했기 때문에 의외로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 거의 볼 일이 없는 회전 교차로. 동네만 다닌다고 해도 이 회전 교차로를 안 지날 수는 없다. 작은 건 그렇다 치는데 가끔 보면 차선이 4-5개씩 있는 초대형 회전 교차로도 있음. 더 환장하는 건 여러 개의 작은 회전 교차로가 큰 회전 교차로를 해바라기처럼 감싸고 있는 디자인도...^^; (말잇못)


공부는 필수!

나는 연수받기 전에 유튜브에서 미리 룰을 공부하고 갔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unspoken rule를 잘 따르는 게 중요. 


- 회전교차로 진입 전에 무조건 서행 (+ 운전자 기준 오른쪽에서 차 오는지 확인 필수) 

- 운전자 기준 우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무조건 우선함 (오른쪽에서 차 움직이면 반드시 멈출 것)

- 내가 나갈 출구에 맞춰 차선 대기

- 출구 나갈 때 왼쪽 깜빡이로 나가는 표시

- 진행방향 기준 270도 이상 회전하면 오른쪽 깜빡이 켜고 들어가기


처음에는 멘붕이지만 차츰 하다 보면 괜찮아진다. 나도 아직까지 초대형 회전교차로 만나면 손이 덜덜...


몰랐는데 이 회전 교차로가 배기가스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반 교차로는 차가 항상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야 하지만 여기는 차들이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지나가기 때문에... 하지만 그만큼 통행량이 많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차들이 줄줄이 서 있는 좁은 골목길
흔한 영국 거주지 풍경

처음에 영국 왔을 때 놀란 건 차선이 진짜 좁게 느껴진다는 것. 이 좁은 길에 버스나 트럭도 잘 지나다니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거주지역도 그렇고 동네 작은 길들은 보면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다닐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양쪽에 주차가 쫙 되어 있고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후들후들.... 


이럴 때는 마주오는 차를 만났을 때 내가 비켜 줄 수 있는 상황이면 빨리 비켜주는 게 낫다. 나는 초보라서 어디로 피해야지 두리번 하는 순간 마주오는 차가 휙 차를 비켜주고 헤드라이트 두 번 깜빡이는 경우가 많다. 참, 영국에서 헤드라이트 두 번 깜빡이는 건 양보의 의미다. '너 먼저 지나가라'라는 뜻. 운전 연수받을 때 선생님한테 한국에서는 뒤차가 상향등 두 번 깜빡이는 건 I will kill you (농담 식으로 과장해서 얘기함 ^^)라는 뜻이라 말했더니 선생님 빵 터졌었음. 


이런 길에서 좀 더 가겠다고 가까이 갔다가 차 피할 데 없어서 멘붕 올 수 있으니 욕심내지 말고 피할 수 있을 때 재빨리 피하는 게 상책. 보통 영국 사람들은 먼저 잘 비켜주기는 한다. 그리고 불법주차하는 경우 거의 없어서 어지간해서는 차 비켜줄 공간은 나온다. 남의 집 입구라든지, 전기차 충전하는 자리라든지... 불법주차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벌금이 어마 무시했기 때문^^... (불법 주정차 페널티 금액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또르르) 


횡단보도 앞에서는 무조건 서행, 정지


이건 정말 부러웠던 점 중 하나다. 여기에서 Zebra Crossing이라고 부르는 이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무조건 차는 멈춰야 한다. 누가 횡단보도 앞에서 얼쩡거리기만 해도 양쪽에서 오는 차들 다 속도 줄이고 멈추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음. 그리고 보행자가 완전히 횡단보도를 지나야 만 차가 출발할 수 있고 걸음이 느린 노약자, 어린이, 유모차들이 건널 때는 정말 아무도 빵빵대지 않고 묵묵히 기다린다. 


혼자서 드라이빙 성공


지난여름에서 가을까지 연수받고 올해 초부터는 슬슬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친구 데리고 집에서 2-30분 거리에 있는 공원도 가고, farm shop 가서 브런치도 먹고.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들 편히 다닐 수 있어서 정말 편하다. 


그리고 런던 센트럴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버스 배차 간격이나 노선도 한국 수도권처럼 촘촘하지는 않아서 어디 가려면 시간을 아주 길게 잡아야 한다. 차로 20분이면 가는 곳을 버스 타고 가면 거의 4-50분 걸림. 


드라이빙과 우아한 브런치


그저 운전, 그저 자동차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 힘으로 자동차를 통제하며 내 갈 길은 내가 정하는 것, 바로 '자유'와 연결된다.

<하트 시그널의 여자들은 운전하지 않는다> 중
https://www.goham20.com/?p=60592&ckattempt=1


내가 얼마 전에 읽고 머리가 띵했던 문장 중 하나다. 한창 인기 많았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에서는 남자들이 항상 운전하고, 여자들은 늘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이 기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적 세계관'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 


나도 운전면허 따고 10년은 운전하지 않고 살았지만 - 그만큼 수도권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편했다 - 베트남도 그렇고 영국에 와 보니 기동력을 갖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았다. 물론 운전 안 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내 생활 반경이 제한되는 느낌이 싫었다. 안 그래도 낯선 해외생활, 이렇게 탐험하며 살지 않으면 우울해지기 쉬우니까. 



결론은 장롱 탈출하고 자유를 얻었다는 점! 물론 요즘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막 돌아다니기에는 좀 아깝기는 하지만... 



TMI


영국에서 운전 강사 찾는 법 (feat. 정부 사이트)

https://www.gov.uk/find-driving-schools-and-lessons?step-by-step-nav=e01e924b-9c7c-4c71-8241-66a575c2f61f

- 공인된 강사들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음. 이외에도 지역 커뮤니티 (페이스북 그룹, 넥스트 도어 등)에서 추천받는 것도 방법이다. 


보험 없이 자동차 운전하면 불법

-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보험 없이 자동차 운전했다가 걸리면 페널티 난리남. 이때 벌점 받으면 다음 보험 가입이 안 되거나 보험료를 왕창 내야 할 수 있으니 꼭 보험을 드는 것으로.


한국 면허는 영국 면허로 교환 가능

- 영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면허증을 영국 면허증으로 교환해야 한다. 요즘 한국에서 영문 면허증도 발급받을 수 있지만 그건 1년 내에 쓰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됨. 대사관 홈페이지나 블로그 후기 등 운전면허 교환 방법은 잘 나와있으니 꼭 교환할 것. 


런던 센트럴에 차 가지고 들어가면 congestion charge를 내야 한다. 

- 미리 요금 지불하거나 autopay 등록해서 자동으로 청구되게 해놓지 않으면... 또 벌금. ^^;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congestion charge 면제해줘서 한 번 차 가지고 센트럴 나가봤다. 면제해 준 이유가 있음,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무도 안 돌아다녀서!  


그 외에도 자동차 운전 관련해서 한국과 다른 점이 정말 많은데... 이건 나중에 모아서 써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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