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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Dec 26. 2019

10년째 장롱면허, 베트남 오토바이 운전 도전

나도 한다

베트남에 산 지 만 1년을 채우고 나니 가장 불편한 게 어디 갈 때마다 차나 오토바이를 불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가는 곳마다 택시가 있고 그랩 바이크가 어찌나 빨리 오는지 정말 편리했는데 땡볕에 기다리는 시간, 제대로 길 못 찾을 때의 짜증, 내가 그 길 아니라고 했는데 길 잘못 들어놓고 우기는 드라이버 등등 어디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점점 누적됐다. 


한국에서 면허는 땄지만 10년 넘게 장롱면허로 살아온 내가 (수도권은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운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 주차난도 한몫) 혼돈의 카오스인 이 곳에서 스쿠터를 운전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최근 조금씩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하지만 호치민에 여행 와서 오토바이를 모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알다시피 이 곳은 그야말로 카오스이기 때문에 처음 온 사람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 


나는 이 도시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된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핸들을 잡았다. (쓰고 보니 거의 1년 걸린 듯) 



1단계: 교통 흐름을 파악한다. 
그랩 바이크 탑승

지난 1년 간 나는 그랩 바이크를 타면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어떻게 운전하는지 살펴봤다. 왜냐하면 자동차 운전할 때처럼 핸드폰 내비 보면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날치기 위험, 화면 보면서 다니는 건 초보자에게 쉽지 않음) 길을 외우는 게 좋다. 


내가 사는 안푸 지역은 번화가인 타오디엔까지 큰길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데 유턴을 꽤 여러 번 해야 한다. 이때 어디서 신호를 받고 어느 지점에서 합류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 그리고 오토바이는 길 상태에 따라 승차감이 크게 좌우되기도 하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잘못하면 넘어질 수도 있어서 길 상태를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2군 안에서는 편하고 빠르니까 그랩 바이크를 타고 엄청나게 쏘다녔다. 그 덕분에 타오디엔 곳곳에 숨은 가게를 찾아다니고,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점차 성장했다. 


(뜬금없이 인스타그램 홍보)

https://www.instagram.com/placesinhcmc/


2단계: 드라이빙 레슨 


공터에서 연습하기 (폭우내려서 멈춤)

내가 처음 오토바이 운전 준비를 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게 레슨이었다. 아니 자동차도 연수받고 나가는데 오토바이도 생전 처음 만져보면서 바로 길로 나갈 수는 없으니까. 수소문 끝에 영어로 50cc 오토바이 드라이빙 레슨을 해 주는 곳을 찾았고, 나와 비슷한 이유로 오토바이를 운전해 보고 싶은 기혼 여성 3명을 더 모아서 레슨에 참석했다. 


남들은 10분 배우고 바로 도로로 나간다는데 나에게는 이 1시간 반이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단 오토바이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고 (자전거보다는 훨씬 무거움) 균형 잡는 법, 턴 하는 법 등을 연습했다. 공터에서 어느 정도 연습한 다음 이 업체가 있는 곳에 가서 동네 골목길을 두어 바퀴 돌면 레슨은 종료. 


그때 내가 휘청대면서 골목길을 다닐 때 베트남 사람들의 눈빛은 마치 세상에 처음 태어난 사슴을 보는 듯했다. 이제야 걸음마를 떼는 생명체를 보는 것 같은... 그리고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쟤가 과연 사이공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3단계: 도로주행


레슨을 받고 한참 동안 또 오토바이 타겠다는 마음이 사그라들었다가 어느 순간 빡침이 몰려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찬양하던 그랩 바이크도 주소 제대로 찍었는데 내가 있는 곳을 못 찾거나, 배차됐는데 무시하고 안 움직이거나 하는 일들이 반복돼서 그놈의 오토바이가 뭐라고, 내가 하고 만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다행인 건 내가 사는 동네는 시내 중심지만큼 차가 많지도 않고 나는 출퇴근 시간에는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상대적으로 도로가 한산할 때 나가다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택지는 오로지 50cc뿐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타오디엔 지역에 있는 렌트 업체를 찾아갔고 가장 대중적인 50cc 오토바이를 빌려서 집 앞으로 배달해 달라고 했다. (....) 업체 직원의 도움으로 집 주차장에 주차는 했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몰고 다니나 하다가 든 생각, 내게 요가를 가르쳐주는 한국인 선생님에게 연수를 받기로 했다.


선생님은 호치민에 온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오자마자 오토바이 렌트해서 타고 다니다가 지금은 125cc 바이크를 운전하고 자유롭게 다닌다. 다행히 제자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선사하게 된 선생님은 매우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셨고 집 앞에서 차근차근 도로연수를 시작했다. 


첫날은 핸들 잡은 손이 덜덜덜 떨려서 손에 땀이 흥건하고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맨날 다니던 아파트 길도 다니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일주일 뒤 두 번째 연수 때는 무려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타오디엔 스타벅스에 주차를 한 다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셨다. 물론 선생님 덕분에 어느 구간에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깜빡이는 언제 켜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주차였다. 오토바이 주차장이 아름답게 있으면 좋지만 대부분 인도 위에(....) 오토바이를 대기 때문에 초보자는 오토바이를 올리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연수 첫날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것도 못해서 지나가던 베트남 아저씨가 1층으로 올려줬다. (....) 혼자 자신만만하게 타오디엔 나갔다가 주차 제대로 못해서 오토바이 넘어뜨린 적도 있고... 이래서 처음에는 렌트를 하라고 하나보다.


하지만 그 후에 몇 번 더 도로 위에 나갔고 이제는 예전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출발하고, 멈추고, 주차를 할 수 있다. 


나의 철칙


이제 렌트한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나의 목표는 멀리 나가는 것도 아니고 빨리 달리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편히 갈 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동네, 그러니까 내가 그랩 바이크로 열심히 쏘다녔던 이 곳을 다니는 걸 목표로 천천히 다니고 있다. 


<앨리스의 (초보) 오토바이 운전 원칙 3가지>

첫 번째, 아직은 어두울 때 운전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해지면 안 나간다. 확실히 어두울 때는 시야가 좁아지고, 또 밤에는 차들이 과속해서 위험. 베트남에서는 밤에 음주 운전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음.

두 번째, 비가 오면 나가지 않는다. 다행히 호치민은 지금 건기라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 

세 번째, 내가 아는 길만 간다. 모르는 길은 바이크로 한 번 가 본 다음 주행한다. 


오토바이 운전하고 좋은 점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베트남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랩 타고 다닐 때는 마주칠 일 없던 경비 아저씨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스쿠터 못 꺼내서 낑낑대면 달려와서 도와주고, 방향 안 맞아서 오토바이 제대로 못 빼면 내가 앉아있는 상태에서 움직여주는 박력(!)까지. 어디서 듣기로는 특히 '외국인 여자'들이 오토바이 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더욱 친절하다고 한다. 거기다가 내가 짧은 베트남어로 몇 마디 하면 엄청 좋아하심. 


메이드에게 선물 받은 운전템

또 내가 운전 시작했다고 하니 우리 집 메이드가 대견한 눈빛으로 '그래, 사이공에서는 오토바이 타야 해'라며 다음 날 찐 로컬 스타일 선물을 사다 줬다. 덕분에 강렬한 호치민의 태양을 강렬한 스타일로 (....) 피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베트남에 처음 온 사람들은 밀려드는 오토바이 부대에 정신을 못 차리게 마련이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길 제대로 못 건너는 것도 싫었고,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매연도 별로였다. 어디 나갈 때마다 발이 매이는 느낌도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게 된 나라에 대해 불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작정 '베트남 오토바이 많아서 진짜 싫어'라고 말하는 건 어쨌든 여기 살고 있는 내게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그래도 고된 해외생활, 더 팍팍하고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지. 


그래서 그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오토바이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들이 오토바이에 타게 된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도로 상황도 안 좋고, 차는 비싸고, 일 년 내내 덥고. 효율적인 이동수단으로 당연히 오토바이를 선택했고, 도시 인프라도 오토바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꼭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것도, 오토바이 타는 게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방심금물! 안전이 최우선!) 살다 보니 500m 걷기도 힘든 환경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동네 슈퍼 갈 때 유럽에 살았으면 자전거 타고, 미국에 살았으면 자동차 운전했겠지. 나도 여기가 베트남이라 긴 시간 이 길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오토바이를 선택한 것뿐이다. 실제로 베트남에 오래 산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동네에서는 오토바이 몰고, 좀 멀리 나갈 때 자동차 운전하는 분도 있다.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든 다 적응하고 산다. 


운전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겁낼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동남아에 살면 지루하지 않냐고 한다. 할 것도 없고, 계절의 변화도 없고, 특히 나처럼 일까지 그만두면 뭐하냐고. 


글쎄, 어느 도시든 상관없이 인생은 살기 나름 아닌가? 나는 요즘 오토바이 덕분에 그간 미처 보지 못한 이 도시의 생동감, 인간다움을 느끼고 있다. 



Information

50cc를 선택한 이유: 베트남에서는 50cc 미만 오토바이는 베트남 운전면허 없이 탈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국제 운전면허증이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운전면허를 교환하거나, 여기서 새로 면허를 취득해야 50cc 이상을 몰 수 있음.

한국 운전면허를 교환하면 비자 기간만큼 유효기간이 설정됨. 베트남 면허를 취득하면 영구 면허지만 베트남어를 못하면 면허 취득이 쉽지 않다. 

베트남 사람들은 거의 125cc 오토바이를 몰기 때문에 오히려 렌트 업체에는 50cc가 별로 없다. 하지만 외국인은 면허 이슈로 수요가 많으니 렌트비는 100cc 이상인 거랑 비슷함.

오토바이 구매에 대한 내용은 헤이엠마의 글 참고

귀중품은 가능하면 시트 밑에 넣는다. 거치대에 달려있는 핸드폰, 메고 다니는 가방도 모두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수 있음. 

헬멧은 윈드 바이저가 있는 게 좋다. 달리다 보면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서 위험할 때가 있음. 선글라스라도 끼면 확실히 운전하기 편하다. 

(차든 오토바이든) 운전의 기본은 숄더 체크. 다른 방향으로 진입할 때는 반드시 들어갈 방향으로 달려오는 차/오토바이가 없는지 확인한다. 

안전을 위해 서행, 음주운전 절대 금물, 헬멧 필수! 

베트남에서는 차를 오토바이처럼 운전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 가장 당황스러운 건 아무데서나 차가 선다는 점. 그러니 안전거리를 꼭 확보한다. 

오토바이 탈 때 교통사고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건 화상이다. 오른쪽에 배기통이 있으니 닿지 않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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