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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10. 2023

나의 현재진행형 산후우울증 극복기

프롤로그

아... 5개월 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쓴다. 예전에는 초안도 없이 그냥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써내려가도 꽤 읽어줄만 했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네. 


출산 후 한 번도 브런치 업데이트 하지 않은 것을 보며 임신, 출산 관련 글을 이어서 쓸까하다가 나를 괴롭게 했던 '산후우울증 (Post Natal Depression)'에 대해 먼저 글을 써보기로 했다. (덧: 이 글도 6월 말 쯔음 한 문단 쓰고 저장했다가 8월이 된 지금에서야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오늘 나는 아기를 출산했던 곳이자 산후우울증 치료를 위해 외래진료를 다녔던 병원을 다녀왔고, 의사가 따로 추가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우울증의 특성상 '완치'라는 표현을 쓰기는 좀 애매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굳이 별도의 액션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뜻. 


토리는 '솔아'로 레벨업해서 흔히 기적이 온다는 100일도 훌쩍 지나 어느덧 생후 5개월차,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그 사이 솔아는 통잠도 자고 뒤집기 + 되집기에도 성공해서 신생아티를 벗었다. 



내가 배고프다는 것조차 싫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싫다고


모유수유 하루에 10번 넘게 하던 시


나는 솔아 생후 4-50일 무렵부터 내 자신이 예전과 다름을 감지했다. 


아, 산후우울증이구나. 

임신 때까지만 해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고 일도 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매일 에너지 넘친다고 생각했던 내가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멍하니 창 밖을 보며 눈물만 줄줄 나던 시기였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남편에게 울면서 내가 했던 말인데 당시 모유수유 중이었던 나는 정말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팠다. 하지만 당연히 내가 뭘 차려먹을 여력은 안 되고, 그렇다고 먹고 싶은 걸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3시간에 한 번 수유를 하느라 당연히 잠은 못 자고 생활리듬은 엉망인데다 남편이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해도 방에서 쉴 수 없는 상황. 내가 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아기는 뿌엥하고 울었고, 밖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귀를 막고 쉬려고 해도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3월 한 달 평균 수면 시간


그렇게 나는 출산 후 약 4개월 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거의 매일 불면증, 죄책감과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리며, 온 몸은 부서질 것 같은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각오는 했지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이른 시기에 스스로 산후우울증임을 깨닫고 GP와 헬스비지터에게 연락해서 영국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섰다. 출산은 3월 초, GP에 연락한 건 4월 말, 인지행동치료(CBT)와 그룹세션 시작한 건 6월, 그리고 7월 말에 CBT가 끝났고 8월 초인 지금 외래 진료를 다녀오니 추가적인 치료는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진료는 6주 뒤 쯤 있는데 그때도 괜찮으면 그냥 이 상태로 지내면 될 것 같다. 


이건 대국민몰카가 틀림없어


내가 아기를 출산하고 불과 일주일만에 든 생각이었다. 이렇게 인류가 유지되었다니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분명 힘들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내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모유수유는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출산 후 제대로 몸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만 했다. 


당연히 출산한 그 날부터 나는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는 몸이 되었고,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하루 세 끼 챙겨먹고, 밤에 자기 전에 샤워하던 나의 하루는 밤낮 구분없이 그저 수유텀으로만 돌아갔다. 새벽수유는 당연했기때문에 소파에서 수유하다 아기랑 같이 잠드는 일도 비일비재. 출산 후 한 달 지나가니 모유수유가 익숙해져서 나는 수유 시간에 가끔 눈을 붙이곤 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처음 육아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 아이를 처음 낳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겠지만, 아기를 키우는 건 유튜브 영상과 전혀 딴 판이었다. 모유수유부터 시작해서 아기의 배고픈 신호, 졸린 신호... 내 아기도 다른 아기들과 비슷하긴 했지만 어떨 때는 전혀 아니었다. 실전은 이론과 다르다고 해야하나. 거기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내가 하는 방식이 아기에게 잘못된 습관을 만들까봐'하는 생각이었다. 


쪽쪽이를 주면 쪽쪽이 없이 잠을 자지 못하면 어쩌나, 스윙이나 짐볼을 태워서 재우면 나중에 그거 없이 못 자면 어쩌나, 울 때마다 모유수유를 하면 계속 그렇게 습관이 들텐데 어쩌나, 안 배고픈데 자꾸 먹여서 달래는 거 아닐까, 수유하자마자 잠들었는데 먹여서 재워야하는 아기가 되면 어떡하지, 나는 배고픈 신호랑 졸린 신호를 모르는 거 아닐까, 수면교육을 하면 100일 전에도 아기들이 통잠을 자던데 나는 마음이 약해서 우는 건 못 듣겠는데 어쩌지, 나는 단호하지 못한 엄마인가 등등. 정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혼자 육아를 하다보니 의지할 곳은 유튜브와 맘카페밖에 없다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듯 찾아본 게 오히려 내게는 독이었다. 생후 한 달 넘어가면 수유텀이 2-3시간은 된다는데 우리 아기는 왜 벌써 배고파하지, 밤잠은 왜 못 자지, 낮잠은 왜 30분 밖에 못 자지, 먹놀잠은 왜 안 되지... 유튜브에서 유명한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모자동실하면 당연히 아기 배고픈 걸 알게 된다고 했던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아서 산후조리원 안가고 첫 날부터 아기를 봤는데도 여전히 긴가 민가하는 내 자신이 마치 실패한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스스로 이상한 걸 감지했던 그 날, 나는 GP에 연락해서 항우울제를 처방해달라고 했다. 워낙 흔한 일이라 그런지 전화 한 통에 바로 항우울제가 처방됐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왔다. 


약만 먹으면 나의 이런 고통이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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