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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피그 bonopig Oct 22. 2024

나 홀로 일본 소도시 여행하기-히로시마 (3)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아이폰 미니 12를 사용하는데 배터리가 3시간마다 닳아, 보조 배터리를 계속 충전해야 했다. 내 체력도 아이폰 미니처럼 방전되고 있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며 나도 잠시 쉬기로 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길을 찾느라 배터리가 예상보다 빨리 닳아 불편했다.


휴식을 마친 후, 서울 신림의 백순대 타운처럼 오코노미야키만 파는 '오코노미무라'라는 4층짜리 빌딩이 있는 번화가로 향했다. 오코노미무라는 파르코 백화점 근처에 있는데, 밤에는 유흥가가 많아 여성이 혼자 다닐 때는 주의가 필요했다.


빌딩 안에서는 모두 철판 위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가게마다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둘러보다가 처음 들렀던 가게로 돌아갔는데, 비어 있는 자리도 이미 예약이 차 있거나 최소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오코노미야키는 철판에서 오래 굽고 양도 많아 시간이 꽤 걸리는 듯했다. 마침 골든위크라 관광객이 많았고, 서양인과 현지인 모두 히로시마를 많이 찾은 것 같았다.


구석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잠시 고민하다가 앉으라고 했다.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왜 망설였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자리의 철판은 뜨겁지 않았다. 처음 먹어보는 오코노미야키라 그런가 싶어 잠시 헷갈렸지만, 일단 맥주를 주문하고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은 일본인 남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교토 옆 고베에서 놀러 왔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골든위크에 해외 대신 국내 여행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내가 만난 이들도 대부분 2~3시간 걸려 히로시마에 온 현지 사람들이었다.


대화 중에 내가 "할머니나 가게들이 사람을 가려 받는 것 같지 않냐"고 묻자, 그들도 잘 모르겠다며 요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럴 거라고 했다.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식과 쌍벽을 이루는데, 오사카식은 재료를 섞어 굽고 히로시마식은 층층이 쌓아 만든다. 둘 다 먹어봤는데, 히로시마식은 소화도 잘 되고 재료의 풍미가 살아 더 맛있었다.


하지만 뜨겁지 않은 철판에서 먹으니 오코노미야키가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해져 먹기 힘들었다. 다음 날 다른 가게에 가보니, 그곳 철판은 여름 열기처럼 뜨거웠다.


스몰토크 도중 할 말이 궁해진 나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이면 물어보는 질문을 건넸다. 외국인에게 하는 인사말도 유행을 타는 법이다. 과거에는 "두유노우 김치?", "두유노우 싸이?"를 묻더니, 이제는 "두유노우 오징어게임?"이었다. 나도 모르게 일본인에게 "오징어 게임 알아?"라고 물었고, 모른다고 해서 넷플릭스를 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들이 "네프릭스?"라며 못 알아듣는 바람에 서로 당황하고 말았다. 나중에 브이로그 영상을 보며 일본어 발음으로 '넷토후릿쿠스'라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넷플릭스 얘기로는 소통이 안 됐지만, 그들은 K-팝 아이돌 ‘아이릿’을 좋아한다며 뮤직 앱에 저장된 노래를 보여주었다. 나는 순간 "레드벨벳의 아이린?"이라며 잘 모른다고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아이릿은 하이브에서 키우는 아이돌이었다. ‘슈퍼 이끌림’이라는 노래는 들어봤지만, 아이돌에 관심 없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모레 오노미치라는 마을에 갈 예정인데, 고양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아냐고 묻자, 남자들은 고양이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조금 실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짧은 만남의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오코노미야키 첫 시도는 실패였지만, 현지인들과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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