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속 지저분한 문화의 교차로 위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기
네덜란드 유학 시절, 나는 어떤 이론을 배우든 기어이 한국의 상황을 끌어와 대입해보곤 했다. 매 학기 기말 레포트의 종착지는 한반도였다. 몇 백년 전 서구의 자연법 사상에 관한 이론부터 현대의 안보 이론이나 정체성 정치의 문제까지, 네덜란드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유학생으로선 '국제'를 다루는 그 어떤 이론을 다룰 때마다 내 모국이 생각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깊이 감각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사회에 대해 쓰고 싶다는 고집, 그리고 그 사회에 아주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부채감이 나를 붙들었다.
공부를 하다보니 국제관계를 배울 때 서구의 이론을 일방적으로 한국에 적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큰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동아시아적 맥락을 제대로 공부하고 가르치라고 강요할 순 없으니, 나는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 직접 현지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귀국할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심사는 한반도 평화학, 북한 인권 담론사, 탈식민 이론 등이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보니, 모두가 미국의 이론을 공부한다. 매일 강의실에서는 모두가 앞다투어 누가 더 미국(혹은 가끔 서유럽)의 이론가나 사상가들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가를 두고 이야기한다. 최근 들어 탈식민 이론, 혹은 '한국적' 지식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한국의 학계는 견고한 미국적 공식 위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혹은 동아시아적 지식장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조금씩 확산하더라도, 박사과정은 무조건 미국으로 가야 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좋은 논문을 작성하는 석사생들에게, 혹은 대학원 공부를 더 할 것 같은 석사생들에게 더 이상 미래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박사과정은 무조건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명제는 질문이 필요없는 정답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 인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행을 자처한 나 조차도, 유학을 다시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다. 아무리 국내의 좋은 학교더라도, 기본적으로 유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기본값이라면 유명한 외국 학교들에 비해 지적 활력과 물질적, 학문적 자원이 현저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안정된 펀딩을 받으며 질 좋은 교육을 받고, 탄탄한 박사학위를 얻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미국 유학이 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지금 돌아보니 한국에 막 귀국했을 무렵의 나는 오히려 한반도 문제나 동아시아적 이론을 연구하는데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4년이 지난 지금, 내 안의 관심사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한편으론 '지저분해졌다'는 말이 조금 더 적합하겠다. 이전에는 깔끔하게 구분되던 문화와 지역적 경계선이 여러 지식장의 언어와 교차하며 질서를 잃고 지저분해졌다. 내가 꾸준히 배우고 내 안에 소화시키는 언어들이 대체 어떤 문화적 배경을 지녔고,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정돈되게 형용하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나의 머릿속은 서구 제국의 언어, 특히 제국의 유지와 확장을 고민하기 위해 활용된 여러 구상들의 모음을 하나의 지식장으로 만들어낸 언어로 채워져 있다. 결국 네덜란드에서 지낸 5년보다 한국에서 지낸 4년동안 나는 훨씬 더 많은 서구 이론가들을 접하고, 공부하며, 더 나아가서는 깊게 관심 갖고 동경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내 몸이 기억하고 경험하는 감각은 식민 지배의 역사나 국제사회 속 언제나 약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던 한국의 정체성과 내밀하게 맞닿아 있다. 만국을 부르겠다는 이름 하에 개최된 회의장 안에는 발도 내밀지 못한 채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있어야만 했던 조선의 감각, 혹은 조공책봉 질서 안에서 주변국들과 관계를 맺어가던 동양적 관계성의 감각이 내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어릴적부터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가면 꼭 보곤 했던 신라와 조선의 사찰, 사주와 무속에 열광하는 동시대의 풍경들이 나의 감각적 배경을 이룬다.
이러한 나의 생각과 감각의 분화 그 사이 어딘가에는 근대화 이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서구화되기를 열망한 한국의 모습 또한 담겨 있다. 한국은 서구로부터 유입된 기독교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왕성하게 성장하고, 국가적 에너지를 총동원해 경제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곳이다. 그리고 성장의 물줄기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 노동, 공부 속에 녹아 있다. 서울의 거리를 걷다보면, 서구적 감성을 열망하면서도 결국 저버릴 수 없는 한국적 감성이 묘하게 섞인 간판과 상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내 안과 밖을 휘젓는 이 혼동이 마냥 불쾌하지만은 않다. 결국 내가 가장 충만해지는 지점은, 바로 이 문화와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점을 오히려 깨닫게 된다. 이는 문화와 문화가 - 심지어는 제국과 식민의 관계일지라도 - 선형적으로 깔끔하게 만나는 지점이 아닌, 내 안에서 아주 지저분하게 뒤섞이는 지점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때로는 보편적 세계 질서에 관한 논의는 오직 제국적 경험과 고민을 반영한 이들의 전유물이라 탄식한다. 보편에 대한 거시적 고민 없이는 인간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에 살아가는 일이 지닌 필연적 약자성과 피식민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의식하기도 한다. 한국 특유의 얄팍한 이분법적 정치 싸움과 밥그릇 싸움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제국주의에 치였던 과거를 떠올리면 한국의 촌스러운 정치 담론조차 애처롭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물론 처음 귀국한 뒤 한국적 맥락을 배우겠다는 강한 학술적 소신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이제는 그저 가족과 건강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다시 유학을 나가고자 했던 내 발목을 붙잡고 날 이곳에 몇 년 더 머물게 했다. 나는 여전히 영미권으로 성공적인 박사 유학을 떠난 친구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들은 매일 캠퍼스를 거닐면 우리가 책으로만 배웠던 학자들이 지나다닌다고, 아주 독창적인 연구 주제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만들어내는 지적 활기가 가득하다고 전해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가끔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내가 서울에서 몸 담고 있는 연구실은 여전히 서구 이론을 누가 더 잘 기억하는지, 누가 더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들에게 인정 받는지, 누가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구 실적을 쌓을 수 있는지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나 내 마음 속은 모순적이다. 서구의 학술장을 선망하면서도 얄미워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꽤나 지저분한 욕망과 분노를 강하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 감정이 학계에서 요구하는 객관성과 엄밀함을 해치지는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묻게 된다. 이 '지저분한' 사유 방식과 우려가 도리어 정치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가장 선명한 렌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의 발원지에 서 있는 이들은 가지기 어려운 감각, 즉 경계에 선 자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존재할까?
나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이곳에 머물면서도, 미국이라는 '본진'을 거치지 않으면 학문적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풍토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위치를 의심 받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곳은 서구의 이론과 한국의 특수한 현실이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국의 언어가 이곳의 맥락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과 분열, 뒤엉킨 긴장감의 지점들이 바로 내가 탐구해야 할 현장임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 안에서 나만의 언어를 길어 올리는 일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