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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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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r 08. 2021

용건이 없는 전화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가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원망을 들은 적이 거의 없는 내가, 유일하게 대놓고 들은 원성이 있다면 ‘왜 이렇게 연락이 없냐’는 것이다. 그 말은 들을 때마다 나를 곤욕스럽게 만든다. ‘굳이 왜?’라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고, 그렇다고 그 말을 고스란히 뱉기에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굳이 왜?’라는 의문에 공격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내게 있어 챙겨 가며 연락을 해야 할 만큼 가치 있진 않다, 는 뜻도 당연히 아니다. 나는 내게 아무리 소중하고 친밀한 사람이어도 특별히 전할 소식이 있는 것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다는 말도 딱 들어맞진 않다. 어떤 의도를 갖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말 그대로 굳이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혹은 어떻게 하면 그토록 친밀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기질은 때로 무신경함, 혹은 쌀쌀맞음으로 비춰지고 진심과는 다르게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것 때문에 알게 모르게 내 곁을 떠난 인연들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도무지 내가 해낼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만나서 “연락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반감이 생기기까지 했다. 나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고 선까지 긋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지면 다행이었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투로 나를 나무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잔뜩 풀이 죽어 나는 사람에 대한 정이 없거나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자문해보기도 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애정을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해 밖으로 말하기보다 속으로 생각하는 류의 사람일 뿐이다. 표현을 덜하는 대신 깊게 생각하고 떠올리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한다. 그러다가 내 삶에 어떤 유의미한 일이 생기면 평소 생각했던 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어 진다. 그게 내가 애정을 갖는 사람들에게 하는 연락의 전부이고, 나 자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출생과 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일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 고민할 때는 우리 가족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나는 이 말을 직업적인 경험에서 믿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말이 완전히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어느 정도 영향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끼리의 연락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는 과정은 솔직히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보다는 차갑게 만들었다.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집에서 나와 가족과 떨어져 살았음에도, 우리 가족과 ‘연락’이라는 수단으로 쌓은 추억은 단 하나도 없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거나,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가슴이 아플 뿐인 어떤 일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에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기억, 수화기 너머 들려온 소식에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 그런 기억이라면 분명 존재한다. 우리 가족은 그랬다. 어떤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를 했고, 그것은 주로 문자나 카톡 메시지로 전하기 어려운 류의 말들인 경우가 많았다. 돈을 좀 달라거나, 미안한데 그만한 돈은 없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근의 경우 엄마가 암에 걸렸다거나 하는 정도. 직접 목소리로 전해야만 오해가 생기지 않는 일들, 나눠 들어야만 감당이 가능한 그런 종류의 일들이었다.


  내가 지금 모르는 것처럼, 엄마나 아빠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떤 말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위로가 필요할 때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아빠와 함께 상의한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을 나는 하나도 몰랐다. 말을 어떻게 떼야하는지도, 심지어는 그런 식으로 위로와 해결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도. 배우거나 경험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일 테고,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았더라도 모르는 일은 끝까지 모른다. 하나의 생에서 모든 일을 다 겪을 순 없기 때문이다. 경험의 결여로 인한 무지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생길 수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나는 엄마의 유방암 진단 소식을 전해 들은 그 전화 통화 이후로 지난 내 삶을 통튼 것과 거의 맞먹는 빈도의 연락을 아빠와 주고받았다. 시작은 아침 일찍 걸려왔던 전화 한 통이었다. 엄마를 보러 고향에 내려갔다가 직장이 있는 부산으로 돌아온 뒷 날이었다. 출근길에 걸려온 전화에 [아빠]라는 이름이 떴고, 나는 짧은 찰나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침부터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나? 놀란 마음은 내 입으로 고스란히 튀어나왔다.


  “아빠? 무슨 일 있나?"

  “아이다, 무슨 일은 없고, 어제 잘 갔나 싶어가.”


  나는 순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일을 처음 겪으면 신기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데 전화했다고? 진짜로? 이런 말들을 속으로 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어, 내가 어제 연락하는 걸 까먹었네. 잘 도착해서 지금 출근하려고.”

  “알긋다. 고생해라.”


  최대한 평소에도 이런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처럼, 아빠의 연락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굴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진 못한 것 같았다. 아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나도 이미 끊긴 전화를 또 서둘러 끊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당황스럽고, 신기하고, 마음 한구석이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진짜 아프구나 싶기도 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견디기 위해 이런 안부 연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중이라면, 혹은 당신이 지금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런 것이라면,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의 기질을 뜯어고쳐서라도 도와야 마땅하겠구나. 연락 자주 하기.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그래도 쑥스러워 주어를 빼놓고 덜 완성된 문장을 적어 넣었다.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전화를 거는 쪽이라기보다는 받는 쪽이다. 너무 어렵고 어렵다. 용건 없이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서 어떤 방식으로 끝맺어야 하는지. 나랑 똑같이 어려울 거면서 아빠는 대단하게도 노력 중이다. 아빠는 서울에서 치료 중인 엄마에게 매일 저녁 전화를 건다. 밥은 먹었냐, 몸은 어떠냐, 굳이 다른 용건이 없는데도. 출근해 있는 나에게도 가끔 점심시간에 전화를 건다. 나는 전보다 아빠의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빠의 말투가 이랬나, 싶을 때도 있고 아빠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싶을 때도 있다. 나는 아직도 방법을 모르고 모른다는 그 사실에 가슴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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