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뚜벅이로 산다는 것
머무를 의도가 없었던 곳에 덩그러니 놓였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액정 속 시간표를 야속하게 바라보다, 체념하며 생각했다.
아, 잔혹하구나, 잔혹해.
사실은 출퇴근부터가 문제였다. 지방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이었다. 그 고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선 시골에 대해 통상적으로 갖고 있을 편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방, 농촌, 시골이라고 하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논밭을 지나 이웃집에 놀러가거나 탈탈거리는 경운기 짐칸에 몸을 싣고 옆 동네로 마실나가는 상상을 하기 쉽다. 물론 그런 시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절대 다 그런 건 아니다. 나의 고향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풍경은 그런 여유로움과 차이가 있다. 한적한 건 맞지만 풍경 속 인물이 만끽하고 있을 것은 여유라기보다 인내와 기다림이다. 이 미묘한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여유’와 ‘인내’는 지니는 명도, 채도, 밝기가 모두 다르니까. 세 요소가 다르면 전혀 다른 필터가 된다.
면 지역에 있는 고향 집에서 읍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네이버 지도 기준 쉴 새 없이 걸어 4시간, 버스를 타고서는 50분, 아버지 트럭을 얻어 타고서는 30분이 걸린다. 여정이 아주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가장 만만하게 도전해볼 것이 버스를 타는 일인데, 양 옆으로 나무가 우거진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간이 정류장이 있다. 언덕 위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푸른 논밭을 보는 일이 행복하게 느껴질 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 나를 태우고 읍내로 향할 버스는 하루에 네다섯 대가 고작이었다.
그런 곳에 우리 가족은 여전히 살고 있었고, 읍내 한가운데 있는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몇 대 있는 버스의 배차 시간은 출근하는 직장인보다는 장터로 향하는 어르신들의 시계에 맞춰져 있었다. 자차가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만 당시 나는 면허도 없는 뚜벅이 신세였다. 지하철 노선도가 촘촘한 부산에 살 때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여기서는 그런 ‘신세’가 되었다. 첫째로는 타이밍을 놓쳐서, 둘째로는 겁 많고 요령 없어서 미뤄왔던 운전면허 따기를 도전해야 할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다른 꼭지를 하나 통째로 할애해도 모자랄 우여곡절이었다) 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시 꿈에 부풀어 이제 어디든 마음껏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부산에 두고 온 인연과 미련을 만나러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다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 모든 바람이 헛된 꿈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장지인 창원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기 전날, 나는 무려 밤잠을 설치며 긴장을 했고, 출장지에 무사히 도착하고서도 돌아갈 길이 걱정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처음이니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고 운전 경험이 쌓이면 나아지겠지 했던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긴커녕 ‘왜 난 아직도 이 모양일까’하는 자책까지 몰고 왔다.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어졌다. 나는 신체가 편안하되 정신이 불행하려면 운전형 인간이 될 것이고 그 반대가 되려면 뚜벅이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예정된 운전일(?)이 오기 며칠 전부터 몰아치는 긴장감과 일정조차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패배를 선언했다. 능숙한 드라이버가 되는 것보다 이 세상 모든 도로 위 자동차를 혐오하게 되는 일이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런 부적응자가 되긴 싫었다. 게다가 그토록 애정하여 멋진 모습으로 차를 끌고 방문할 예정이었던 도시, 부산은 특히나 초보운전자에겐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인도 위 사정에만 빠삭했던 나로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잠시 헛된 꿈을 꾸었던 것이다. 특히 유튜브로 ‘부산 초보 운전’ 영상을 찾아볼수록 공포는 극에 달했다. 영상 속의 클락션 소리가 나를 향하는 것 마냥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그날도 당일치기 부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버스를 선택한 참이었다. 오후 1시 약속이었지만 버스 안에서만 두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출근하는 시간과 거의 동일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뚜벅이의 길이니까. 이어폰을 귀에 꽂고 꾸벅꾸벅 졸아가며 도착하니 두 시간도 금방이었다. 버스가 도착한 사상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30분 정도 더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그 와중에 한눈에도 어르신보다 젊은이들이 더 많은 역사 풍경이 생경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어느덧 사람 없고 젊은이는 더 없는 시골에 익숙해졌구나 싶었다.
모임은 한창이었지만 나처럼 갈 길이 먼 사람은 일찍 나서야 했다. 적어도 저녁 7시 버스는 타야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과 회포를 풀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으로 오는 길보다 갈 길은 더 멀었다. 돌아갈 때는 중간 경유지인 마산 남부에서의 정차 시간이 너무 길어서 환승을 하는 편이 더 나았다. 인터넷 검색 결과 19시 10분으로 예정되어 있는 마산 남부행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코로나라는 중대한 이슈를 망각했던 것이다.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고 창구에 문의한 결과 19시 50분이 되어서야 버스가 올 것이라는 무심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벽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마산남부’라는 글자 밑엔 배차 시간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무책임하게도 ‘3~40분 간격’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코로나19로 인해 배차 간격이 조정되었다’는 안내문이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것이다.
출근 전날 저녁 시간이란 귀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기다리는 수밖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서라는 직업이 무색하게도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 속 정보를 철썩같이 믿은 나의 잘못이었다. 몇십 분의 기다림 끝에 버스에 오르면서는 다음번엔 도착과 동시에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정확히 창구에 문의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산 남부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환승까지 다짐하며 마산 남부까지만 티켓을 끊었건만 역시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배차 간격으로 갈아탈 버스가 없었다. 내가 타고 온 버스가 그대로 고성으로 향하는 버스였고, 정차 시간은 무려 50분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은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머무를 의도가 없었던 곳에 덩그러니 놓였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분명 현재 시각이 적혀 있는 액정 속 시간표를 야속하게 바라보다, 체념하며 생각했던 것이다.
아, 잔혹하구나, 잔혹해.
결국 4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집에 도착해서는 허무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오늘의 이 시련은 뚜벅이형 인간을 택한 것에 대한 잔혹인가, 지방에서의 삶을 택한 것에 대한 잔혹인가. 이토록 열악한 환경을 향해 그간 서운함을 표출한 이들이 없었다는 말인가. 나의 허무와 분노는 확장되어 고향의 미래에 대한 자조로 이어졌다. 도시에서의 문화와 담을 쌓고 지내지 않는 이상 살러 온 젊은이들이 이 고된 여정을 겪고 서운해하지 않고 배길 것인가. 코로나로 인한 변수를 차치하고서라도, 하다못해 인터넷이든 어디든 안내만 되어 있었더라도 이 정도의 참사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이 일은 1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자동차로 1시간 20분이면 오고도 남을 거리를 4시간이나 걸려 왔다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 내가 정말 지방에 살고 있구나.”하는 자각을 뼈저리게 체감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의 삶은 그 후로도 청년으로 살기엔 자주 잔혹했다. 대중교통 잔혹사는 미미한 시작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