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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28. 2023

우린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청년 공간이 없어 방황하다

  읍내 한가운데에 푸른 논밭이 공존하는 풍경. 늦은 저녁, 노곤하게 취한 시끌벅적한 음성과 개구리 울음 소리가 같은 오선지에서 연주되는 장면들. 청년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한 뒤로는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만끽하면서 마냥 즐겁거나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생명이 영글어가는 넓은 논밭을 볼 땐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혹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버려진 공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달나 마른침을 삼켰다. 질척이는 논밭이든 으스스한 공터든 컨테이너 하나라도 이고 지고 와서 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곤 유성매직으로 아무렇게나 써두는 것이다. ‘청년낭만살롱’,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 차라리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았다.




  첫 시즌 멤버를 모집하는 게시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예상했던 소모임 규모의 인원이 훌쩍 넘어갔다. 오히려 계속해서 도착하는 참여 메시지에 최대 인원을 몇 명으로 정해야 할지 결심해야 하는 순간까지 왔다. 이토록 목마른 청년들이 많았구나, 하는 고무된 감정도 잠시. 많은 인원의 기대감을 느낀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주된 콘텐츠로 하는 모임의 성격과 오롯이 나와 친언니 단 둘이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최대 인원을 정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이곳 청년들을 있는 대로 다 끌어모으고 싶고, 호기심이나 흥미라도 가지고 있다면 일단 함께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 청년들의 성향이 미처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인원과 함께하는 건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고민 끝에 정한 인원은 20명이었다. 그렇게 인구 5만이 안되고 2~30대 인구는 7천 명이 넘지 않는 경남 고성군에서,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낭만을 찾겠다는 청년 20명이 모였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통해 모임의 성격을 소개해두긴 했지만, 일반 친목모임이나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들과 다른 결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서로의 이름을 제외한 다른 어떤 정보도 밝히지 않는 ‘익명’이라는 룰을 내세웠으므로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깨기 위한 필연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정규모임 전 오리엔테이션,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이었다. 모임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모임 장소를 구하는 일이었다. 사실 오리엔테이션의 장소 섭외에는 그다지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의 콘텐츠는 모임의 탄생 계기와 지향점에 대한 소개, 개개인의 외적인 조건(직업, 나이 등) 외의 요소들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해시태그 맞히기 게임(I Got Your Hashtag), 간단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파티게임 등이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조건 없이 빔 프로젝터와 마이크 등 제반 시설이 있고 20명 정도의 인원이 수용가능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지연 없이 머릿속에 청년센터가 떠올랐다. 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2021년에 문을 열어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공간마다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 오리엔테이션을 운영하기에 적절한 장소도 마치 우리를 위한 것인 마냥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은 청년센터 1층의 밝고 넓은, 하얀색의 천이 덮인 동그랗고 어여쁜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자람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청년이 모일 공간이 없다는 것인지, 나는 왜 논밭과 공터와 빈집을 보며 입맛을 다시게 되었는지를 말하려면 그 후의 일들을 설명해야 한다.


  우리 모임의 고정적인 정규 콘텐츠는 공통된 영화를 보고 난 뒤 화두를 던지고,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 나눌 화두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이 투영되고, 그 각자의 삶이란 것이 아주 다양하므로 모임 전에 미리 제출되는 화두들은 늘 예상을 벗어나 넓고 깊었다. 그렇게 대화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고, 이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개인정보가 익명인 채 진행되므로 자유롭고도 솔직한 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끈끈한 연대를 만들고 삶에 대한 괴로움을 털고 가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이곳에서의 삶에 숨통이 트이도록 하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모임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은 짐작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모임을 운영하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가진 시선으로 바라보기 전까진 미처 상상하지 못했었다.


  대화를 통해 삶이 충만해짐을 느끼는 경험,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경험, 내가 언젠가 부산의 모임에서 겪었던 경험을 빈틈없이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절로 감정이 끓어오르는 분위기, 대화 나누기에 적절한 밝기의 조명, 마음을 녹일 배경 음악, 대화에 푹 빠져 두세 시간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의자 등 많은 부분에서 욕심이 났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실현하러 애쓰기도 전에 1차적인 문제에 먼저 부딪혔다. 청년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던 청년센터의 홀은 인원은 수용이 가능했지만 대화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다. 너무 밝고 소리가 울리는 구조였으며 대부분의 날짜에 청년 센터의 수업 등으로 대관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또 위치가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라 자차를 갖고 있지 않다면 참여하기 어렵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가 모이는 날짜는 평일 저녁 19시부터였으므로 21시에 문을 닫는 청년센터에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빠듯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진행해야 할 정규모임 날짜는 다가왔고 읍내 공공기관, 카페, 심지어 술집으로까지 범위를 넓혀 찾아봤지만 이 정도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두세 시간 정적으로 앉아 대화를 나눌만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이제 갓 모인 멤버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모임을 만들기 전부터 염두에 뒀어야 할 문제인데 이토록 모임의 규모가 커질 줄도 몰랐거니와 인근 도시에서 오래 지내다 온 탓에 이곳의 물정을 파악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 컸다. 안 다니던 산책을 하며 읍내의 카페나 술집, 그 비슷한 공간들은 죄다 둘러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당한 공간은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야 하는데 어떡해야 하나, 한숨만 나왔다.


  돌고 돌아 첫 모임 장소로 정한 곳은 청년 모임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시는 사장님이 계신 어느 카페였다. 멤버가 추천한 곳으로, 나도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어서 얼마나 멋진 공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전체를 대관할 여건이 되지 않아 카페 좌석을 절반으로 나눠 다른 손님들과 함께 사용해야 했지만 사장님께서 많은 편의를 봐주셔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식물이 많아 푸릇한 기운이 감돌고 밝은 조명에 탁 트인 분위기라 대화를 나누기엔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감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모임을 열었다. 첫 정규 모임에 참여한 인원은 16명 정도였다. 많은 청년들이 여러 테이블에 걸쳐 나눠 앉아 어색하고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광경은 남들이 보기엔 어땠을까. 나로서는 긴장되면서도 감동적일 따름이었지만 카페에 온 다른 손님들은 신기한 눈으로,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의 마감시간까지 꽉 채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매번 이렇게 카페의 마감시간까지 공간의 절반을 차지해 가며 다른 손님들과 섞여서 우리끼리의 시간을 가지는 폐를 끼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간을 찾아 방황하고 전전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가장 적당한 곳이 카페였으므로 넓고 마감시간이 넉넉한 카페에서 모임을 한 번씩 진행해보기도 하고, 결국 여의치 않아 청년센터로 돌아가기도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사비로 구입한 조명, 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한 소품과 다과를 직접 준비해 갔다. 하지만 역시나 21시라는 마감 시간에 쫓겼고 대화를 돕는 여러 요건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답답함이 쌓여갔고 논밭과 공터를 보며 한숨 쉬기를 여러 번, 마침내는 읍내 빈집 시세를 알아보는 지경에까지 갔던 것이다.


  소멸지표로 빨갛게 물든 지방.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있는 빈집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일 공간이 마땅하지 않다면, 앞으로도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적다면 얼마나 허름하든 우리의 분위기를 내며 마음껏 모여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실제로 빈집은 적지 않았고, 여러 부동산에서 올려놓은 매물을 둘러봤고 은행에 가서 대출하는 상상까지 여러 번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내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 만들어야 할 공간이 얼마나 환영받을지, 언제까지 필요로 될지 무서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때 반드시 해야 한다는 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관에 대한 원망이 자라난 것도 사실이었다. 내부에서 자라난 의지와 희망이 갈 곳을 잃자 공공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인구 혁신과 청년 친화는 이 지역에서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이렇게 스스로 모여든 청년들의 말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군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실시한 설문조사에 우리는 모두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호소했다. 다른 지역에 청년들을 위해 속속들이 생겨나는 자유로운 복합 문화 공간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호소의 말을 던진 지 1년이 넘게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원망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애를 써야 했다. 모임을 운영한 지 1년이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 나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린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저 공터 한가운데 컨테이너만 한 우리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런 입 속이 마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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