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낭만살롱, 그 시작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흔한 곳, 소멸 위기 지표로 새빨갛게 물든 곳. 그런 지방에서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야기를 들은 주위 사람 중 절반쯤은 내가 받을 상처가 미리 걱정된다는 얼굴로 얼마나 모이겠느냐는 말을 했다. 나 역시 멤버 숫자에 대한 큰 기대는 없이 다섯 명쯤 모이면 좋은 출발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청년 중에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 모임의 지향점(낭만을 찾고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에 동의하는 이들은 더 소수일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겪은 이곳의 청년들은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유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모여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청년들이 골고루 모여있다. 여유 시간이 없도록 아주 바쁜 직장인들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짓 수가 많다. 대학생부터 휴학생, 비교적 시간을 내기 쉬운 직종의 직장인들. 하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대학교가 없기 때문에 대학생이나 휴학생은 당연히 없었고 그 또래의 청년들이 이곳에 보인다면 취업 공부를 하기 위해 고향에 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직장인들보다도 더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법이므로 이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곳에서 쭉 살겠노라고 정착한 경우에는 직장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모임을 갖기로 한 저녁 시간대에 가장 바쁠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모임을 통해서 인연을 맺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경우로 직장 때문에 발령 받아서 온 청년들이 있을 터였는데, 그들은 참여는 가능하겠지만 곧 떠날 것이 분명한 이곳에서 얼마나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할지 미지수였다. 이런 이유들로 ‘소모임으로 출발하는 것도 좋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미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작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혔다.
모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필터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즐길만한 문화생활을 찾아 헤메는 요즘 청년들이 뭘 가장 많이 활용할까를 고민해보니 인스타그램이라는 답이 나왔다. 모임의 이름 ‘청년낭만살롱’을 걸고 계정을 개설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주소는 ‘gs_culture_salon’. 고성의 머릿글자를 가장 앞세운 것은 이 지역에 드디어 이런 모임이 생겼다는 것을 티 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고, 다른 인근의 어떤 도시도 아닌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생긴 모임이라는 것을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정말로 티 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보고 신기해했으면 좋겠고,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눌러볼 첫 게시글로 올릴 안내문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 모임이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모임인지, 어떤 방향을 가고자 하는지를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다. “멀리 가지 않고 곁의 낭만을 찾는 고성 청년들의 모임”. 고민 끝에 모임을 정의 내린 말이었다. 이 정의는 지금까지도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올릴 때마다 끝맺음말로 활용하고 있다. 그 동안엔 문화 생활을 즐기기 위해선 근교 도시로 나가야만 했는데, 그러지 않고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에서 낭만을 찾을 것이라는 포부가 담긴 이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고성청년 #고성모임 #고성영화모임 #고성청년모임 #고성동아리]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첫 게시글을 올렸다. 이런 모임을 만들었으니 알아 달라, 관심 있는 청년들은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목마른 이가 직접 우물을 판 청년들의 모임’. 나처럼 목이 말라 있던 청년들은 부디 나타나달라는 마음이 담긴 말이었다. 그렇게 첫 게시글이 올라가고, 전혀 두근거림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왜 두근거림이 없었냐 하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첫 게시글로 바로 반응이 오겠어?’라는 생각이었고 앞으로 차근히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면 한두명쯤 연락이 올 것이라 기대해봐야지, 생각했다. 그토록 SNS의 힘을 얕봤다는 말이다. 얕보는 너에게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듯, 게시글이 올라가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곧바로 인스타그램 메시지(DM)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잠잠하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되네?’ 라는 생각부터해서 이 나라의 SNS는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지는가하는 놀라움을 거쳐 막상 연락이 오니 두려운 마음 반,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 마음 반. 뛰는 심장을 꾹 누르고 상대방 계정을 타고 들어갔다. 인스타그램을 모집 창구로 선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런 모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나쁜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스타그램은 그 사람의 계정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그런 경우를 사전에 차단할 확률이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계정에 들어간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의 본계정과 이미 친구가 맺어져 있는,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된 몇 안되는 청년 중 한 명 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첫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메시지가 온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그게 하필 이 사람인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아주 즐거워져서는 곧바로 답을 보냈다.
[나야, 나! 주연이에요.]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왠지 모르게 실망한 듯한 장난기 섞인 이모지였다. ‘누군가 했네, 안 그래도 이런 모임을 만들고 싶었는데 네가 선수쳤네’ 하는 말들이 무척이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흔쾌히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그를 보면서 굉장한 안도감이 두꺼운 이불처럼 나를 감쌌다. 내 메시지가 ‘진짜’ 고성 사람들에게 가 닿는구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나처럼 찾아 헤메던 청년들이 진짜로 이곳에 있구나. 특히 ‘안 그래도 이런 모임을 만들고 싶었는데’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자신도 하려고 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 일어났으면 했던 일이구나. 해도 되는 일이 맞구나.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있는 첫 메시지의 그에게 새삼스럽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정도면 훌륭한 첫 발을 디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었으니까. 두 번째 발을 내딛을 용기가 생겼다면 그걸로 괜찮은 시작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청년낭만살롱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