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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l 07. 2023

3개월마다 이별을 한다

이렇게 생채기가 잘 나는데 호스트를 해도 되나요


  청년 문화 불모지에서 청년들끼리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모임을 만든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멤버들이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3개월 단위로 멤버를 새로 모집하고 있다. 갑자기 생겨난 우리의 존재가 신기한 어른들로부터 왜 굳이 시즌제를 택했냐 하는 물음이 여러 번 있었다. 모임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시즌제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너무 쉽게 왔다 쉽게 가게 되지 않겠냐고. 그럴 때마다 꽤 단호하게 입장을 고수했던 것은 이미 지방과 이곳 청년들의 특성에 대한 고민을 선행했기 때문이다. 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영 지방에 머무를 청년은 극히 적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실제로 첫 시즌을 시작했을 때, 모여든 20명의 청년 중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리까지 잡은 로컬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인원은 직장 때문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상태여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청년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경남 고성은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살다 갈 곳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책임감과 무게감을 동반한 모임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꿔 말하면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모임을 겪어보고 더 머무르고 싶다면 머무르되, 떠나고 싶을 때도 별다른 절차 없이 다음 시즌을 신청하지 않는 것으로 의사 표현이 갈음된다면, 한번 경험이나 해보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들이 머무른 동안만이라도 이곳에서 즐거웠던 기억을 갖게 되었으면 싶었다. ‘고성? 몇 년 살아봤지만 젊은 사람들 할 거라곤 하나도 없더라.’는 회상만 하지 않았으면 했다. 

    

  둘째, 지방은 좁고 좁으며 또 좁다.


  ‘좁다’는 것이 지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남 고성은 면적으로만 따지자면 부산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며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양산시보다 넓고 18개의 시·군이 있는 경상남도에서 10번째로 큰 면적을 갖고 있다. 중간 등수는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중 상가가 몰려 있고 그나마의 문화 시설이 있어 ‘중심지’라고 할만한 읍내는 아주 좁다. 그런 데다가 인구는 5만 명이 넘지 않다 보니 읍내를 다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갸가 갸다(그 애가 그 애다)’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나 역시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이용자들을 만난다. 


  “사서선생님, 어제 OOO에서 식사하셨죠?” 


  나는 언제나 놀란 눈을 하고 되묻는다.


  “절.... 보셨나요?” 


  그러면 이어지는 말들을 통해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까지 강제 회상할 수 있다. 그렇다. 읍내에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걷거나 뛰거나,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아는 사람 누군가에겐 목격되는 이곳을 ‘좁다’라고 말할 수밖에. 사생활이 중요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가 존재하길 원하는 젊은이들에겐 사방에 감시자가 있는 감옥같이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익명성을 갈망할 이곳 청년들이 누군가와 관계를 더 맺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면 자유를 은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 장치 중의 하나가 시즌제인 것이다.     


  셋째, 인간관계에 부담을 느끼기엔 먹고사는 일이 이미 버겁다.


  청년이란 존재는 그렇다. 정착하고자 마음을 먹었더라도 미래가 걱정스럽고, 과연 이곳에 머무르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 되고, 지금 당장 즐거운 일이 있더라도 이게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건가 혼란스럽다. 생계에 대한 완전한 해결로 고민 하나 없는 젊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고민이 깊어지다 보면 어제까진 좋았던 관계가 갑자기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밥벌이에 매진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밀려오기도 하고, 총량이 정해져 있는 나의 에너지를 내 앞길을 챙기는 데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덜컥 짓누른다. 그런 청년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조급함과 부담감에서 구해주진 못하더라도 짐이 되진 말아야 한다. 그래서 가입과 탈퇴가 어렵지 않도록, 한번 경험해 보는 가벼운 기분이 들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선택한 시즌제를 통해 네 번째 시즌에 이르기까지 모임을 거쳐 간 청년은 50여 명 남짓이 되었다. 첫 시즌부터 쭉 함께하고 있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가입 후 한 번의 참여도 없이 그대로 사라진 멤버, 다른 지역 발령으로 떠나간 멤버, 타 지역으로 갔지만 모임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며 남아있는 멤버, 일이 바쁜 시기라 잠시 쉬다 오겠다는 멤버 등 다양한 경우가 있었다. 모든 경우가 존중받아 마땅하고 어쩌면 시즌제를 선택한 의도대로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뜻밖의 곳에 있었다.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시즌이 거듭될 때마다 그 모든 일이 나에겐 작은 이별이 되었다. 말 그대로 나는 3개월마다 작은 이별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스스로가 이별에 취약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단련이 되지 않는 줄은 미처 몰랐다. 무엇이든 반복하면 나아지기 마련일 텐데 헤어짐이라는 것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았다. 사실 ‘헤어짐’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고 손 한 번 흔들지 않는 것도 헤어짐이라 할 수 있을까? 이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누군가 한 명씩 떠나갈 때마다 혼자 마음이 쓰렸다. 그가 가입한 순간 어떤 삶을 사는 청년인지 궁금해하고 설렜던 것, 모임에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서 전전긍긍했던 애달픈 순간이 떠나는 사람 인원수만큼 스쳐 지나간다. 혹시 떠난 이도 마음이 아팠을까? 그러길 바란다고 하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열심히 활동했던 멤버가 떠나는 건 특히나 더 아렸다. 호스트이긴 하지만 나도 모든 게 처음이라 확신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을 잔뜩 내어주고 서로를 응원해 줬던 이가 떠나가면 스스로의 행보에 대해 의구심이 솟구쳤다. 내가 뭘 잘못해서 떠나는 걸까? 모임의 운영이 무언가 잘못된 걸까? 모임 때문에 상처받거나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을까? 그가 사정을 설명하거나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떠났을 땐 달랐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다.      


  시절 인연임을 알고 있고 떠나는 일에 부담을 갖지 말라며 시즌제라는 장치를 선택한 것도 나인데, 이토록 마음에 생채기가 잘 나니 듬직한 호스트가 되긴 글렀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론 잠시 쉬다 돌아오겠다며 응원의 말까지 덧붙인 후 떠나는 상냥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찡한 감동과 사람으로서의 존중을 느끼면서도 그런 귀한 마음을 받기엔 부족하다는 죄의식이 양립한다.     


  오는 덴 이유가 없을 수 있어도 떠나는 덴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없이 떠났든 손 흔들고 떠났든 단 한 가지만 안고 갔으면 좋겠다. 귀를 스쳐 지나간 긍정의 말 한마디, 누군가 자신을 향해 웃어줬던 환대의 기억, 연고 없는 지방에서 어딘가에 소속된 적이 있다는 성원의 기쁨. 그런 것들과 함께 이곳을 기억한다면 생채기가 얼마나 나든, 조금은 더 감당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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