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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n 05. 2023

사람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따라 변하잖아요

우리의 종착지가 낭만이라면 좋겠어요

  인구 5만 명이 채 넘지 않는, 젊음이라는 존재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지는 곳. ‘지방’보다도 ‘시골’이 어울리는 그런 고향에서 청년 모임을 만들겠다 결심한 지 1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곳의 젊은이를 위한 문화 인프라는 열악하다 못해 전무했다. 친구를 만나 덜컥 읍내로 향했을 때 행선지를 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거나 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선택지가 없어서 짧거나, 갈 곳이 없어서 길거나. 그런 상황을 당장 어찌할 수는 없으니 우리끼리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방향의 종착지가 일회성에 그치는 만남과 놀이가 아니라 언젠가 가슴속에 보석처럼 남을 ‘낭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모임의 이름은 ‘청년 낭만 살롱’. 멀리 가지 말고, 고향을 떠나지 말고 바로 곁에서 낭만을 찾으며 살자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낭만이거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라는 개인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과연 청년들이 모이긴 할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도록 가입을 문의하는 메시지가 몰려들었다. 첫 시즌부터 가입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무려 20명이었다. 많아봤자 5~8명 안팎의 소규모 모임에서 시작하겠거니 했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고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40여 명의 청년들이 모임을 거쳐 갔다.


  청년들은 본인들 자체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면서 하나같이 모임의 소중함에 대해 말해주었다. 시골에 박혀 젊음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혹은 감옥같이 느껴지던 지방살이에 회의를 느끼려던 찰나 모임의 존재가 삶에 작은 숨구멍이 되었다는 말들을 해주었다.


  그런 말들이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지만 1년 동안 사소한 흔들림이 참으로 많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과정이었으므로 온갖 우여곡절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일 테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시점에서 어느 날 찾아온 과도기는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그 흔들림이 찾아온 데는 여러 문제가 있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모임의 정체성에 대해 나 스스로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모두에게 ‘낭만’이 중요할까?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지향점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내가 틀린 것도, 그들이 틀린 것도 아닌 그저 ‘다름’에 대한 것이었지만 실은 내내 눈치가 보였던 터였다. 남들은 관심도 없고, 공감도 하지 못할 이상적인 얘기를 나 혼자 뱉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낭만’이라는 지향점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청년에게서 나오는 소리는 기침 소리까지 모조리 다 알고 싶던 참이었다. 되도록 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많은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삶들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나 스스로를, 혹은 그들을 설득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그런 와중에 어느 젊은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그날, 우스갯소리로 본캐, 혹은 현생이라고도 말하는 직장 연수를 들으면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청년 낭만 살롱 생각뿐이었다. 이대로 자기 확신을 찾지 못한다면 이미 지쳐버린 마음을 이끌고 앞으로의 모임을 끌어가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나름 간절하게 이것저것 생각하던 찰나, 마침 강연자로 젊은 작가가 온 것이 뜻밖에 행운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청년의 목소리가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시점이었으니까.


  작가는 여러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독서의 경험을 권유하는 어려운 시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따라 변하잖아요.

  그 말이었다. 귀에 들어온 그 말을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여태 모른 채 방황했을까?


  유대를 맺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도 수도 없이 많은 갈래가 있다. 청년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결론은 같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상 속 한 장면으로 남게 되겠지만, 빛바랠수록 보기 좋은 색깔로 칠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살 길을 찾아 이 지역을 모두 떠나고 소멸하는 무언가를 막지 못하더라도, 그때 참 좋았다는 그리움 한 줌이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어느 젊은 작가의 한 마디가 내게 자기 확신을 심어준 것처럼, 함께하는 한 순간에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청년 낭만 살롱은 시즌4를 준비한다. 지금까지 쌓인 이야기로도, 앞으로 해나갈 이야기로도 쓰고 싶은 글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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