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May 01. 2023

지방에선 젊은이가 새삼스럽다

그들의 서사가 궁금했다

  나는 ‘새삼스럽다’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새삼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늘 똑같은 일상에서 특별한 감정 한 줄기를 건져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침마다 내려 먹는 캡슐 커피의 커피 줄기가 새삼스럽게 고급스러운 빛깔로 보이는 날엔 보온병을 들고 걷는 출근길이 내내 행복하다. 늘 함께하는 연인의 눈빛이 새삼스럽게 곧아 보이는 날엔 저 눈이 날 바라보는 일이 더 경이롭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고 했을 때 순식간에 무너지는 마음은 생을 통틀어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 순간들엔 꼭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때 느끼는 감정들을 반드시 기록하고 싶어 진다.



  

  10년 동안 고향을 떠나 부산이라는 제 2도시에 살다 다시 시골로 내려왔을 때도 많은 것들이 새삼스러웠다.      

비가 내렸다 그친 어느 날엔 퇴근길에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랬다. 이 지역에선 가장 번화한 곳인데도 바로 귓가에서 울어대는 듯 생명의 소리가 들려오는 일이 무척이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돌아온 것이 아주 분명한 사실이 되어 다가왔다.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증거가 되어버렸으므로.


  그땐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던 것 같다.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곳에 살기 위해 왔다는 사실과 그렇게 되기까지의 일들이 누군가 버튼을 누른 듯 머릿속에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무척이나 가물었던 가을날, 흙이 쩍쩍 갈라져버린 일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깨달아버려 울적해진 일이 있었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 일이 당연하고 흙은 일부러 거기 두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날들엔 너무나도 무지했던 일이었다.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짤막하게 전해지는 비가 내리질 않는다는 소식들에 얼마나 무관심했던가.


  그런데 이곳에선 가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표정도 함께 가물어갔다. 마늘 농사가 잘 안 돼서 어머니가 힘들어하신다는 동료의 말이나 인사처럼 오갔던 “가물어서 큰일이에요”하는 말들. 모든 것들이 새삼스러웠고 이토록 중요한 사실에 무관심했던 스스로의 무지함에 오랫동안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왔을 때 진심으로 기쁘고 반가웠다. 애써 매만진 머리카락이 내려앉는 일이 싫어 꺼리기만 했던 비 오는 날이 다른 의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엔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에게 “반가운 비가 내리네요” 하는 말을 인사 대신 건넸다.



      

  그런 모든 일을 통틀어 무엇보다 가장 새삼스러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의 존재였다.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 모교의 신입생 수, 승용차로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인 부산에서 돌아오기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던 잔혹하기 그지없던 대중교통 상황,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이라는 존재. 그것들이 내 눈앞에 가져온, 소멸을 목전에 둔 고향의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길거리를 걷고 있는 저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의아하고, 신기하고, 특별하게 느껴진 것이다.


  저들은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이곳에 사는 사람일까? 사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여기서 사는 걸까? 잠시 다니러 온 사람이라면 어떤 연유로 오게 된 걸까? 그런 질문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은 내게 있어선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일이었다. 내성적이고 개인의 서사를 알기 전까진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 데다 낯까지 가리는 내향인. 그런 내가 길을 걷다 마주치는 젊은이들을 붙잡고 말을 걸고 싶은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왜 이곳에 계신가요?”


  그런 욕망이 시작이었다. 이곳 청년들의 삶이 궁금하고, 묻고 싶다는 욕망. 새삼스러운 저 존재들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욕망. 처음엔 그저 그런 마음 하나로 생각했다.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


  내가 지금부터 쓰고자 하는 글은 그런 것이다. 지방에 사는 청년 당사자로서 겪는 아주 새삼스러운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특별한 감정 한 줄기 건져낼 수 있는 ‘새삼스러운’ 것은, 반드시 기록해야만 하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에 살면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