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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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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3. 2019

그 날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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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는 흠뻑 술에 취해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어떤 일들을 했다. 새로운 만남도 좋고 가끔은 클럽 같은 곳에서 유흥을 즐기더라도, 결국 우리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은 우리들만 오붓하게 모여 단골 술집에서 술잔을 즐기던 순간들이었다.


한 명 한 명 모두 다른 성향과 개성들을 지니고 있던 우리는, 또한 어딘가 모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같이 보내는 시간들에 한껏 취해, 서로의 취흥을 지켜보며 감격에 겨워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경우, 대개 술잔을 기울이는 속도를 막아서는 제약이란 없었다.


그런 우리의 분위기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술집이 있었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대학가 근처의 그 로터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세월이 느껴지는 데다 방문하는 손님들의 얼굴에서도 이제 막 성인이 된 풋풋함이 아닌 제 나름의 성숙함이 느껴지는 술집이 있었다.


그 일대에는 동명의 술집이 두 군데 있었고, 사장님도 같았지만 우리는 늘 로터리 근처에 있는 곳을 찾았다. 물론 두 군데 모두 깔끔하거나 모던한 분위기, 트렌디한 안주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람이 엄청나게 북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만원대의 저렴하지만 풍성한 양을 자랑하는 소주 안주가 가득해 몇 시간이고 술잔을 기울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런 수더분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의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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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술집을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주문을 하면 기본으로 나오는 이 옛날 소시지와 달걀 프라이였다. 아직은 채 무르익지 않은 내공이었기에 이 것만으로 소주를 비우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처음 이 기본 안주를 봤을 때부터 우리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작은 소시지와 프라이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모두 이 곳이 마음에 쏙 든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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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인기 있는 안주들 중에는 육회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대부분 김치찌개를 곁들여 소주를 먹었지만 이 노른자가 훌쩍 올라가 색 조합이 자못 아름다운 육회로 시작하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노른자를 톡 터뜨려 밑에 깔려있는 달큼한 배 조각들과 육회를 휘휘 저으며 섞어내면, 비록 고기는 냉동일지라도 혀를 감싸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절로 흥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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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음주 역사가 쓰이는 데 한몫했던 것은 바로 이 김치찌개다. 입이 떡 벌어지는 크기의 양푼 냄비 가득한 제대로 우러난 국물에, 손바닥 크기의 목살이 몇 장이고 들어갔던 이 술도둑. 우리는 신이 나서 집게와 가위를 쥐고, 계속해서 국물을 휘적이며 바닥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 슬쩍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목살을 자르기 바빴다.


목살을 다 자르고 그 많던 국물이 어느새 펄펄 끓으며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우리는 점점 김치찌개보다도 붉은빛으로 얼굴을 물들이며 술잔을 털어 넣었다. 대화의 주제는 때때로 다른 것이었지만, 보통은 그토록 특별했던 각자의 연애였다.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털어놓는 연애의 맛은, 그야말로 달콤하면서 동시에 끝 맛은 씁쓸하게 남는 소주 같았다. 달콤한 맛에 한껏 흥이 오르다가도 그 씁쓸함에 다시 한번 소주를 입 속으로 털어 넣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마신 소주야 셀 수도 없었겠지만, 또 언젠가 우리가 각자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찍었던 날에는 소백산맥이 단단히 큰 역할을 했다. 소백산맥이란,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팔리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가 섞인 술이었다. 애주가 인생에 n 년을 더 보탠 지금은,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오는 이 조합은 악마의 조합일 수밖에 없었다. 소주의 도수를 그대로 간직한 주제에 백세주와 산사춘의 달콤 씁쓰레한 맛이 섞이고, 맥주의 목 넘김까지 더했는데 심지어 집채만 한(그렇게 느껴지는) 주전자를 한 가득 채워 나왔다.


처음 나오면 차마 들기도 힘들었던 이 술을,  우리는 또 주거니 받거니 몇 시간에 걸쳐 나눠 마셨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순간들이다. 같이 마신 3명 중 한 명은 실종 미스터리 영화를, 다른 한 명은 코미디를, 나는 가족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리고 이 모든 영화에 특별 출연한 한 명의 친구는, 술자리의 파장 즈음에 도착해 입술 한번 적시지 않은 상태로 우리 모두를 돌보기 바빴다. 지금도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내젓는 이 친구의 활약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실종 아닌 실종이 된 친구가 계속해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다시 그 친구가 집에 잘 갔는지 확인했다. 코미디를 찍은 친구를 위해서는 그 친구의 룸메이트를 부르고, 계속해서 집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나를 대신해 전화를 받아 연신 사과를 했다.


결국 이 모든 영화들의 결말은 나름대로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우리는 다음날 술이라면 원수를 질 것 같은 죽음의 숙취에 시달렸다. 그러고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깔깔대며 전날의 일들을 앞다투어 서로에게 늘어놓으면서 젊음을 한껏 소비했다.


실제로 우리가 그 술집에서 단골이었던 건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다. 모두 함께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시기는 한정적이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각자의 앞길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 얘기에는 허리가 꺾일 정도로 웃어댄다. 술집 간판 상호 뒤쪽에 찍혀 있던 말줄임표를 추억하며, 아마 우리가 그 점들 중 몇 개는 찍었을 거라며 무용담처럼 그 날을 기억한다.


그 날들의 우리는 젊다 못해 어렸고, 나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속내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 수도 없는 방황들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갈팡질팡 내딛는 어수선한 발걸음에도 함께 걸어주는 서로가 있어, 그 방황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었다. 가족의 그것과는 또 다른 편안함으로 서로를 감싸며, 한 치 앞도 불분명한 미래로 조금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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