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mpebble Feb 25. 2019

정치는 광의의 의학이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 산제이 바수의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를 읽고




정치학은 광의의 의학일 뿐이다. - 루돌프 피르호, 1848     


책 서문에 등장하는 ‘정치학은 광의의 의학일 뿐’이라는 말은 이 책을 간명하게 요약하는 한 문장이기도 하다. 정치학이 곧 의학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한마디로 정치인은 의사, 정치 행위는 의료 행위와도 같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논의하여 결정하는 경제 정책은 환자(국민)에게 어떤 치료법과 의약품을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과도 같다는 뜻이다. 즉 국회에서 결정되는 정책과 각종 법안들은 하나같이 국민 개개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종국에 그 국민의 생사까지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클러와 산제이 바수의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의 원제는 ‘The Body Economic: Why Austerity Kills’ 이다. 원제를 그대로 직역하면 ‘몸의 경제학: 긴축은 왜 (몸을) 죽이는가’ 정도가 될 테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와 산제이는 몸이 경제체(經濟體, body economic)와도 같다고 설명한다. 경제체란 경제 정책들로 이루어진 공통의 집합 하에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으로서, 이때 사람들의 삶은 경제 정책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정치인들이 모여 결정하는 금융 정책이 인간의 몸과 건강에 미친다는 사실은 떠올리면 아주 옳고 그럴듯하나, 삶의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두 저자는 공중보건학자이자 사회역학자로서, 경제체를 연구할 때 정부의 예산과 경제적 선택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 위험과 회복력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그리고 실제로 각 나라의 긴축 정책(austerity)이 지금껏 사람들의 건강, 수명, 자살률 등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그 데이터를 모아 이 책에 소개했다. 이 책은 미국, 영국, 러시아, 그리스,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위덴 등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적 사건을 사례별로 안내한다. 이어서 각 사건(주로 경제적 공황)에 대응하는 각 정부와 IMF의 금융 정책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건강 변화를 정확한 수치와 데이터를 인용하여 분석한다. 결국 이 책은 긴축 정책이라는 경제적 선택이 죽음을 불러온다는 인과 관계를 밝힌 국제 보고서인 셈이다.  

    

책의 서두에 데이비드와 산제이가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 어쩐지 위안을 받았다. 사회역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에겐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아가 사회 운동을 낭만적으로 접근했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하려면 그 이유가 감상적이거나 추상적이면 안 된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데이비드와 산제이가 아주 간결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라 표현했을 때, 또 우리가 모은 데이터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고 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서 내가 사회역학을 공부하기로 한 최초의 이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는 의욕 하나로 사회경제적 현상들을 비슷한 인과관계로 묶어 버리고 싶은 충동 또한 버릴 수 있었다. 이는 사회역학 공부나 연구를 할 때에 결코 태만해질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보건 데이터에는 종잡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책에 따르면 어떤 나라에서는 불황의 시기에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불황의 시기에 사망률과 자살률이 높아진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담고 있는 데이터들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분석하는 태도를 견지하지 않고서는 사회역학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어렵다. 겉으로는 새빨간 바탕에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체 제목을 걸고 누구에게나 경제경영서로 보일 것 같은 이 책을 읽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사회역학을 공부할 때 유념해야 할 태도를 다시 발견했다.      


Ⅰ. 역사 Ⅱ. 대불황 Ⅲ. 회복력. 이렇게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꽤나 체계적인 순서 하에 쓰였다. 첫 장 ‘역사’에서는 미국의 대공황 시기(1929~1931), 러시아가 시장 경제로 진입하는 시기(1991~1995),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1997~1998)의 사례를 순서대로 소개한다.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다. 불황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 불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어떤 기조와 정책을 펴나갈 것이냐가 핵심이다. 긴축 정책을 펼 것인지 경기 부양(정부 지출) 정책을 펼 것인지의 여부가 건강과 공중 보건은 물론 경제 회복에도 훨씬 더 중요했다. 데이비드와 산제이는 이를 데이터로 증명한다. IMF가 지시한 긴축 정책을 승인하며 민영화를 신속하게 추진한 나라는 국민의 건강 상태 악화는 물론 GDP의 하락을 경험했다. 반대로 부채를 갚는 데 전전하지 않고 사회 안전망 지출을 아끼지 않은 나라들은 오히려 경제 상황을 더 빨리 회복하였으며 국민 건강 또한 좋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다. 이를테면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시행한 미국의 여러 주들은 유아 사망률과 자살률이 감소했고, 러시아가 민영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할 때 상대적으로 그 속도를 늦추며 노동조합과 손발을 맞추어 나간 폴란드는 전체 사망률이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 때 IMF의 긴축 정책을 받아들인 타이와 한국은 빈곤율이 증가했지만,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고 투기 자본을 통제한 말레이시아는 동아시아 중 처음으로 경제 회복을 이룩했다. 역사적으로 긴축 정책은 죽음을 불러온다. 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한 유의미한 결과다. 불황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긴축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두 번째 장 ‘대불황’은 비교적 최근의 사건을 소개한다(이 책은 2013년에 쓰였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의 사례다. 아이슬란드는 미국의 주택담보 대출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2008)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았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은행업자들의 과도한 투자가 불러온 빚더미라는 것을 인지한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긴축 정책의 실시 유무를 투표로 처리하자며 시위했다. 결국 2010년 3월 국민투표가 진행됐고, 무려 93퍼센트의 국민이 긴축 정책을 반대한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투표 결과에 따라 사회보장 체계를 견실하게 유지했다.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에 노동시간을 감축했고, 복지 감시단(Welfare Watch Group)을 만들어 불황으로 국민의 건강과 복지가 위축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했다. 아이슬란드는 시민을 은행보다 우선시했고, 결국 성공적으로 경제를 회복한다. 이와 완전히 반대로, 그리스는 2010년 5월, 국민투표 없이 긴축 정책을 실행했다. 이후 아테네는 HIV가 유행하고 노숙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자살률이 늘어나는 도시가 되었다. 나아가 인상 깊었던 점은 그리스가 긴축 정책을 실시한 후 사회 안전망이 사라지면서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인 이민자, 성소수자 등이 공격과 혐오에 더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굶주리는 이유는 원래 우리 몫이어야 할 것이 ‘원조’나 ‘정상’이 아닌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잘못된 편견. 이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혐오 메커니즘과 유사한 논리로 작동한다.      

 

세 번째 장 ‘회복력’은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경제력과 인간의 건강을 함께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한다. 데이비드와 산제이가 제시하는 것은 세 가지다. 보편적 의료보험, 안정적인 일자리, 주거환경. 미국이 의료보험을 민영화했을 때, 그리고 영국이 미국의 사례를 따라 NHS를 민간에 위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그야말로 ‘의료 제공의 반비례 법칙’의 현실화였다. 민간 보험회사는 가장 건강한 사람을 가입시켜 보험금 지출액을 줄여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니 치료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치료를 가장 적게 받고, 가장 덜 필요한 사람이 가장 많이 받는다. 하지만 두 저자는 의료와 보건 서비스만큼은 시장 경제의 법칙에 따르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건 서비스는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불황이 찾아오면 실업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업 자체를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업을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하느냐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를 방치하는 것은 그의 존엄성과 자존감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다. ALMP(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는 일자리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임을 기조로 만들어졌다. 실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업자가 다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트레이너를 실업자와 연결시켜 구직 활동 계획을 함께 수립하고 실업자는 자신의 구직 활동을 꾸준히 입증해야 한다. 실업자가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나서서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ALMP를 시행하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실업자의 자살률이 감소했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직 이후의 문제를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실직 상태는 아니지만 실직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ALMP는 희망의 한 줄기와도 같았다. 일자리 정책 하나가 자살률을 낮추고 우울증까지 예방한다. 정치는 광의의 의학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근거다. 마지막으로 주거 환경을 안정적으로 구비하는 것은 경제적 건강과 인간다운 건강의 필요조건이다. 주택 압류의 위협은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긴축론자들은 정부 부채를 줄이는 것이 결국 경제를 부양하게 된다고 믿고(객관적 증거 없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노숙자의 발생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가로 간주한다. 그러나 노숙자가 많아지면 결핵 발병률이 높아지고, 다양한 공중보건 문제가 합쳐지며 약물 중독, 폭행, 강간 사건의 수가 증가한다. 결국 경제는 더 위축되어 실업자가 크게 증가한다.     


정부의 예산과 경제적 선택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 위험과 회복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 본다. 경제 정책은 질병과 죽음의 ‘원인의 원인’이다. 경제 정책 하나가 질병의 위험에 누가 노출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유력한 요인이라니. 이쯤 되니 병원에 내원하여 약을 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에 상정되는 법안들을 깊이 살펴보고 비판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긴축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이 국가의 개입보다 항상 더 낫다는 믿음에 불과하다. 이와는 다르게 데이터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말해준다. 데이터는 앞으로도 꾸준히 모이고 갱신될 것이다. 데이터가 달라진다면 그때는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몽상이 아니다. 경험을 통한 반성과 개혁이 없다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데이터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놀랄 만큼 분명하게 말해준다

문제는 앞으로 그 일을 실천에 옮길 것인가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안해요, 살아남았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