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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Nov 19. 2024

Ep 11. 남친 VS 남사친

사랑의 작대기 맞나요?

혹시 당근 모임인가요?


은지는 회전식 교차로에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정차와 후진을 반복하며 빼곡하게 들어선 식당가에서 그 집을 찾아냈다. 

대구막창.

알루미늄 테이블을 연상했는데 이 집은 입구부터 출입문으로 가는 길 양쪽에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주변에는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어서 마치 고급 양식당에 들어 선 기분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열 명이 넘는 회원들이 남녀 섞여 앉아 있었고 식탁 위 불판에는 막창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바다님이시죠? 반가워요.

오늘 보스님이 특별히 고기 맛있게 구워주실 거예요.


퇴근 후 저녁 약속을 떠올리며 식사도 하지 않고 밤길을 운전해서 왔더니 허기가 졌다. 첫 만남이라 체면을 차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앞에 앉은 보스님은 체육복 차림에 말수도 별로 없으신 분이셨다. 


막창 드실 거죠?

아뇨. 전 목살이랑 된장찌개 먹을게요.


고기의 육즙이 빠질까 고기 겉면을 센 불에 익히고 잠시 불을 끈 뒤 고기를 썰어서 예쁘게 담고 다시 불을 켜는 섬세함을 보여주셨다. 와우. 게다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셔서 보스님은 굽고 은지는 쌈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었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옆 테이블에 앉은 프리님은 보스님한테 옆자리로 가도 되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그냥 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거들었다. 조금 있으려니 질문이 하나 둘 들어온다.

말투 들으니 대구 분 아니시죠?

네. 충청도가 고향이에요. 

언제 대구 왔어요?

몇 년 됐어요. 

왜 왔어요?

직장 때문에요. 

이때부터였을까. 은지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아. 고향이 충청도 어디요? 두메산골은 아니죠?

음. 뭔가 조사받는 느낌이네요. 저도 질문해도 될까요? 낚시 좋아하시나 봐요. 기다리는 거 잘하세요?

전 낚시 가서 멍하니 물을 보고 있는 게 좋아요.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 힘든 점도 있지만 제가 맡은 직책이 있으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프리님의 이야기를 어디서 끊어야 할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2차는 근처 동성로 우동입니다. 예약해 뒀으니 서둘러 갑시다.


단정한 차림의 부방장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동집에서 다시 테이블 3개를 점령하고 자리를 잡았다. 의자와 테이블이 패스트푸드점처럼 작고 쿠션도 없어서 앉기 불편했다. 게다가 테이블을 모두 붙여두어 어깨를 맞대고 앉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조금 있으려니 끝쪽 테이블에 앉은 프리님이 다음 일정을 계획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는 금요일에 만나서 다들 술 한잔 합시다. 차는 두고 와야 합니다.

바다님도 그때는 술 마실 거죠? 차 두고 오는 겁니다.

글쎄요. 시간 보고 참여할게요.

지금 여기서 약속하세요!

네? 전 못 지키는 약속은 안 합니다.


점원이 양은냄비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치오뎅을 가져다줬다. 꼬치 주변에 쑥갓을 놓으니 꼬치의 붉은 장식과 어우러져 크리스마스 느낌도 났다. 하나 꺼내서 먹어보니 적당히 삶아서 부들부들하고 따뜻했다. 담배를 피우는 회원들은 한 번씩 눈짓을 하며 밖으로 향했고 그럴 땐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머리를 뒤로 넘긴 리치 회원님이 말을 건넨다.

처음이라서 어색하죠? 말도 안 하고.

아. 저 여기서 편하게 시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좋던데요.

그럼 말 통하면 전과자라도 괜찮아요?

어. 이건 무슨 맥락인가. 싸우자는 건가. 그건 아닐 테니 예의를 갖춰서 다음 말을 고민해 봤다.

음. 대화가 잘 통하려면 가치관이 비슷해야겠죠.

여기만 앉아있지 말고 자리도 옮겨보고 그래요. 지금 커플들 사이에 앉아 있습니다. 아직 연애법을 잘 모르시나 보다.

음. 저 모태솔로 아니고 연애도 많이 해 봐서 연애법은 다 알죠. 40대면 다 알지 않나요?

그냥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거다. 알겠냐! 이 말은 꾹 참고 은지는 사회적 미소를 날리며 대꾸했다. 


그러고 나서 은지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한쪽에 서더니 느닷없는 입장표명을 하기 시작했다.

방장님~저 힘들어요. 조사도 받고 강의도 들어야 하고. 

사람들은 잠시 나를 보다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하던 얘기를 계속하고 다행히 조사와 연애강좌는 끝이 났다.


싱글모임도 다 색이 다르구나. 


마침 자리에서 일어서는 회원이 있길래 은지도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부방장님과 여성회원들을 위해 빼빼로를 챙겨 온 준 님이 주차장까지 바래다줬다. 내비도 찍고 톡도 확인하다 보니 시간이 좀 흘렀다. 3분 정도. 고개를 들고 출발하려고 보니 준 님이 아직도 차 근처에 서 있었다. 창문을 내려보았다.


계속 출발을 안 하시길래요.

감사합니다. 


무척 부담스러운 배려였다. 하지만 짧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조금은 고맙기도 했고. 

아. 40대 싱글들의 미팅은 이런 모습일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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