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1919-2004)은 니혼대 종교학과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이후 동인지에 발표한 시들이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들었고 그 이후 월남해서 신문사에 근무했다. 이후 정치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시인의 삶을 살았다. 1952년에는 신문사 폐간 후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부인 서영옥 여사의 의원이 있는 경북 칠곡에 내려와 20여 년간 작품활동에 매진하였다.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승, 걸레스님 중관 등 당대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았다.
노벨상 후보에 오른 구상 시인
구상문학관은 2022년 부인 서영옥 여사가 운영하던 의원 자리에 세워졌다. 문학관 뒤편에는 시인의 거쳐였던 관수재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연작시 강을 비롯해 하루, 꽃자리 등 시인의 시와 여러 언어로 번역된 시집,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중섭 화백의 친필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일생을 만나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구상 시인은 노벨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독창적인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 낸 분이다. 기독교적 존재관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철학과 형이상학을 조화시킨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촌동 황태자로 불리며 전쟁을 피해 대구로 피난 온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애썼다. 꽃다지. 백조 등의 다방에서는 출판기념회와 미술전시회가 열렸고 감나무집과 같은 허름한 막걸릿집에서 예술가들은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이어가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시 중에서 '오늘'과 '꽃자리' 시가 기억에 남아 필사를 해 보았다. 권력과 명예보다는 변함없이 흐르는 낙동강 강물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동료 예술인들을 도와가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 구상.
구상 시인은 무위자연, 상선약수를 추구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전하려 했다. 구상 시인의 사상이 우리의 삶에도 스며들어 그의 시처럼 우리의 미래까지 이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