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켐프텐농업직업학교
낯설다.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만나는 장면들이 그랬다. 유채 밭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숲과 초지, 소와 농가가 어우러져 그대로 그림이 되는 풍경, 간판 하나 음식점 하나 찾기 힘든 관광 명소, 수백 년 전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거리, 제집 앞마당에서 풀을 뜯던 소가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는 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비현실적인 장면들.
“농민이 있어 가능한 풍경입니다.”
독일 바이에른 주, 알고이 지역의 중심도시 켐프텐 시 농업국장으로 2016년 정년퇴임한 요셉 휘머Josef Hiemer박사는 말했다.
켐프텐농업직업학교 원예반 학생들
낯설다.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만나는 장면들이 그랬다. 유채 밭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숲과 초지, 소와 농가가 어우러져 그대로 그림이 되는 풍경, 간판 하나 음식점 하나 찾기 힘든 관광 명소, 수백 년 전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거리, 제집 앞마당에서 풀을 뜯던 소가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는 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비현실적인 장면들.
“농민이 있어 가능한 풍경입니다.”
독일 바이에른 주, 알고이 지역의 중심도시 켐프텐 시 농업국장으로 2016년 정년퇴임한 요셉 휘머Josef Hiemer박사는 말했다.
독일에서 농민이 되기 위해선 농업직업학교를 졸업하고 국가공인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농업직업학교의 교육은 학교와 마이스터 농민이 운영하는 현장의 듀얼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독일 농업 정책의 목표는 “농업을 통해서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경관을 유지 보전”하는 것이고, 이 목표를 위해 ‘농’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이끄는 꾸준한 홍보,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그리고 ‘농민 자격증’이 있다.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농업직업학교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독일’을 한글로 써보이고 있다.
농민이 되려면 ‘농민자격증’이 있어야
독일, 오스트리아의 여러 농민을 만나면서, 그들도 역시 ‘뼛골 빠지게’ 농사를 짓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환한 얼굴로 “농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자신의 자녀가 농민이 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다른 한편 궁금했다.
독일 전문가 황석중 박사가 그 답을 주었다. “독일에서 농민은 아무나 될 수 없어요. 수입의 50% 이상이 농업에서 나와야 하고 노동 시간도 50% 이상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민자격증’이 있어야 농민이라 할 수 있어요.”
왜 농민자격증이 필요한가. 황석중 박사가 다시 말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입니다. 농민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국민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국민의 가장 기본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너무나 막중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이미 ‘농민’이 되겠다고 결정한 학생들, 본인의 선택이 빠르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실습농가와 계약을 하고 이에 따라 농장실습활동비를 받는다.
학교와 현장, 듀얼시스템이 만드는 ‘농민’
독일에서는 만 6세에 초등학교(우리나라 초등학교, 4년제)에 들어가 4학년이 되면 진로를 결정한다. ‘농민’이 되려면 5년제 실무학교를 거쳐 3년제 직업학교를 나와 농업국 부설 농업전문학교를 수료(3학기)하고 국가 공인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농민은 보조금을 받고 65세가 되면 은퇴해 연금을 받는다.
지난 5월 켐프텐농업직업학교Staatliche Berufsschule Ⅲ Kempten를 방문해 농민을 양성하는 과정을 보았다. 켐프텐농업직업학교는 3년제로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해당하며, 농업, 원예, 유가공, 육가공 등 농업과 식품 관련 전공 학생 1,060여 명이 있다. 한스 에츨러Hans Etzler교장의 안내에 따라 원예반, 제빵반, 화훼반, 농업반 수업을 차례로 참관했는데, 원예과 수업에서는 마침 실습농가와의 계약서 작성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1학년은 1주일에 4일 학교 수업을 받고 하루는 마이스터 농민의 농장에서 실습을 합니다. 2~3학년은 실습농장에서 4일, 학교에 주 1회만 나오죠. 이것을 듀얼 시스템이라고 합니다.학생들은 실습 농가와 계약서를 쓰고 이에 따라 농장실습 활동비를 받습니다. ”
실습비는 학년에 따라 다른데 주당 1학년이 740유로(약 96만 원), 숙련된 3학년이 되면 1,000유로(약 13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실습은 반드시 교육자적 자질과 기술을 갖춘 마이스터의 농장에서 해야 하고, 이와는 별도로 국공립 전문농업연구기관에서 주기적으로 보완 교육을 받는다.
왜 농민이 되려고 하는가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수업을 합니다. 작물생산을 예로 들면 토양학, 씨뿌리기, 기르기, 식물영양 공급,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가르칩니다. 또 경영, 기계, 목공, 용접 등 농업에 필요한 기능을 다 배울 수 있도록 하죠.”
농업반 교사 칼 리페르Karl Liebherr씨는 학교 교육에 대한 기본적 안내와 함께 농업반 학생들과의 간담회를 특별히 마련해주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찾아온 낯선 이방인들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한글로 독일을 어떻게 쓰냐고 묻기도 했다. 앞 다투어 장난기 가득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런데 “왜 농민이 되려고 하는가” 묻자 진지하고 또렷한 대답이 돌아왔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농업을 하는 것이 좋다.”
“초지가 있고, 소가 있고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문화가 자랑스럽다.”
“농업학교에서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농민이 되겠다는 결정은 내 스스로 했으며, 그 결정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다섯 살 남짓한 그들이 보여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선명한 좌표는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EU와 독일의 농업농촌 정책을 떠올리게 했다. 지속적인 정책이 없었다면 이들의 눈빛이 이렇게 또렷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문화경관은 보존될 수 있었을까.
농민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농민은 국민의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건강한 토양, 깨끗한 물, 맑은 공기 등 생명체의 생존기반을 보존한다”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농민을 그리 쉽게 만날 수 있었을까.
목표가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돈 버는 농업과 지속 가능한 농업, 돌아오는 농촌과 떠나지 않아도 살만한 농촌, 편의시설이 많은 마을과 미래가 있는 마을. 우리는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
“농민은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지키고, 생존기반을 보존한다.” ⓒ 도상헌
*대산농촌문화 2017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