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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Oct 24. 2023

내게 쓴 메일, 근데 이거 ‘나’ 맞아?

30대가 되어 21살때의 메일을 열어보다

이거 누가 보낸 거야?

오래전 메일로 받았던 자료를 찾다가, 십여 년 전 나에게 보낸 메일 몇 개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이게 누가 누구한테 쓴 건지 몰랐다. 내가 쓴 건지도 몰랐다. 엄청난 자신감과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포부가 가득한 문체였다. 그 시절 저런 내용을 글로만 썼기를 바랄 뿐이다. 입 밖으로 내뱉었던 나라면 엄청 밥맛이었을 것 같은 메일 내용을 발견했다.



내가 가장 이질적으로 느낀 점은, 

엄청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였다.



그땐 그냥 학원 강사 알바나하는 대학생일 뿐이었는데, 왜 그리 포부가 넘칠 수 있었을까. 신기하면서도 사실 가장 큰 감정은, 부러움이다. 내게 저런 배짱이 있던 때가 있었구나. 아주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녔을 것 같은 시절이 있었구나. 젊음의 힘이 저런 거였나 싶고, 지금도 고작 30대일 뿐이지만 20대 시절의 에너지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50대인 엄마는 종종 말한다. 

나이 45만 돼도 뭐든 해볼 텐데. 

30은 한창이야.


엄마의 스치듯 한 말을 떠올리게 된 메일함이었다. 난 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메일을 보냈던 걸까. 그때의 자신감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걸까. 자신감과 자만은 한 끗 차이인데, 난 자신감이 넘쳤던 걸까 자만감까지 흘러갔던 걸까. 그 한 끗 차이를 알긴 했을까..




메일 속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응원의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독기를 품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그때 당시의 내용으로는, 입시 때처럼 독기를 품고 하자는 식으로 다소 무식하게 응원을 하고 있더라.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의 파이팅이 가득한 메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런 ‘나에게 쓴 메일’을 왜 보내지 못할까?

내가 썼던 메일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던 내용들, 할 수 있어, 최초가 될 수 있어, 하던 대로 하면 돼 등등.. 날카롭게 갈린 채 바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가득했던 대학생 때의 나보다 지금 더 발전했어야 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약간 나를 놓아버린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내게 쓴 메일함은, 자료 공유용이나 보관용이 되었을 뿐이다.




그때처럼 파이팅 하자! 

과거의 나도 아무것도 없지만 파이팅 넘쳤는데 

지금 30대의 나라고 못 그럴 이유는 무엇인가?!



.

.

라고 진심으로 적을 수 있다면 좋겠다. 


글을 위해 적어본 두 줄 문장이지만 매우 어색하다. 그때의 파이팅이 그립다. 그립다는 단어를 쓰면서 좀 착잡해지는 현실이 슬프다. 나이 듦은 신체적 노화도 있지만, 생각과 마음도 같이 늙는 것 같다. 20대 만의 에너지가 있는 것처럼, 30대에는 그런 에너지에서 멀어진 것 같다.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뭐가 될 수 있을까, 

뭐라도 될 수 있을까, 

뭘 할 수 있을까... 가 가득한 나의 30대가 가고 있다.




결론 : 

난 20대의 풋풋함, 젊음, 신체적 매력을 그리워하는게 아니라

말랑하고 자신감 넘치는 내 생각과 마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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