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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 줍는 까마귀 Sep 09. 2021

코로나 장기화가 불러온 '핫플'의 브랜드 경험 해체

BX디자이너의 내 맘대로 세상읽기 #1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모두의 생활 반경이 강제로 줄어드는 시대가 되었다. 오프라인 공간에 선뜻 들어가기도, 그 곳에 있는 무언가를 만지고 구경하기는 좀 더 꺼려지는 시기를 맞아 브랜드의 오프라인 접점의 경험들이 그야말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을 모두가 체감하는 중이다.




이제는 브랜드라는 단어에 항상 '경험' 이라는 단어가 함께 온다.

브랜드가 뭐예요? 라는 질문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경험의 총합'이라고 하거나, 나아가 '경험 그 자체' 라고 답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경험 하나하나를 탄탄하게 설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경험이라는 단어는 User Experience (UX), Customer Experience (CX) 등등 브랜드의 모든 세부 분야에까지 빠짐없이 붙는 ‘트렌디’한 단어가 되었기도 하다.


그만큼 브랜드의 경험이라는 단어는 흔해졌지만, 들리는 단어만큼이나 브랜드 경험 자체에 대해 깊게 공감해 보는 순간은 있었을까?


사실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순간의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지고, 또 각자의 배경지식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지다 보니 경험의 요소들을 뜯어내어 보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준 계기가 있었다 : 바로 ‘음식 배달’이었다.


그럴듯한(?) 제목에 비해 너무 별 것 없는 카테고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외식’ 이라는 분야야 말로 가장 흥미로운 영역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에 꼬박3번씩 어떻게든 선택지가 주어지는 ‘끼니’ 라는 것 때문인지, 외식은 그 범위가 지하철역 호일에 싸인 김밥 한 줄에서부터 미슐랭 분자요리 파인다이닝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연초 즈음 회사 동료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바깥 활동 하기를 좋아하는 밖순이에게 자가격리는 너무 끔찍한 시간이었고, 그 후 코로나 확진보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될까봐 두려워 한동안 그야 말로 두문불출 하는 시기를 보냈다. 집에 있기는 하지만 집에서는 어떻게 놀아야하는지 모르던 타입이라, 점점 먹는 낙이라도 찾자는 쪽으로 생활이 변질(?) 되어갔다. 집이 옥수동에 위치해 동서남북으로 왠만한 서울 핫플들이 다 배달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 성수동, 한남동과 이태원, 신사, 청담과 을지로까지.... 뜻밖의 최적의 위치선정 덕에 진정한 배달의 민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렇게 인스타에서 많이 본 카페, 매번 줄 서 있는 것만 구경하고 먹어보지 못한 맛집들로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일주일치 식단을 짜며 즐기는 동안 얻게 된 인사이트가 브런치 첫 글 주제로 당첨되었다 :  바로, 상품을 브랜드 경험의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바라보는 체험을 하고 있다는 발견이었다.


요즘의 유명한 ‘핫플’ 맛집들은 보통 섬세하게 닦여진, 각자만의 공간과 분위기를 갖고있다. 발랄하거나, 안락하거나, 매우 모던하거나, 또는 아주 강렬하게 의도되어 있다. 그 공간을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게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게 명랑하거나 다정하거나, 세련되거나 소위 '힙'해보이는 사람들만 온다.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아우라에 더해, 공간의 틔여진 또는 막혀있는 정도, 햇빛이 들어오는 정도, 배경 음악과 서빙되어 나오는 트레이, 그리고 그걸 올려다 놓으면 사진 찍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테이블.. 모두가 그 순간의 경험을 구성한다. 그리고 아마 분명 잘생기고 예쁘고 적당히 친절한 직원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일단 그런 공간에 가는 순간의 나 자신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이거나 또는 혼자가 충분히 즐거운 상태다. 그런 모든 순간이 모여 있을 때는 사실 뭐든 맛있다고 느끼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상태가 된다.


요즘의 유명한 ‘핫플’ 맛집들은 보통 섬세하게 닦여진, 각자만의 공간과 분위기를 갖고있다. 그런 모든 순간이 모여 있을 때는 사실 뭐든 맛있다고 느끼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러나 배달 주문은 음식을 그 모든 맥락에서 똑 떼어서, 일회용 용기와 비닐봉투에 담겨 플레이팅은 좀 흔들린채, 살짝 너저분한 내 방으로 오게 한다. 이전부터 테이크 아웃을 운영하던 브랜드들은 그래도 어울리는 예쁜 쇼핑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것 따위 할 필요조차 없었던 핫플들이 긴급하게 뛰어든 배달시장에는 가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비닐봉지도 등장하는 걸 봤다. 그 모든 의도된 부가적인 감각들을 없애버린 채, 발가벗겨진 음식은 너무 솔직했다.


어떤 곳은 명성 만큼이나 훌륭했지만, 어떤 곳은 식은 온기와 망가진 플레이팅 탓 만을 하기에는 생각보다 너무 평범하기 그지 없는 맛이었다. 어떤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들은 ‘오, 패키지 디자이너 관점에서 봤을 때 얘는 단가와 수량부담을 갖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예쁜 방법을 잘 착안했네 센스있군!’ 이라고 평가했을 법한 디자인들도 내 방 구석에선 왠지 초라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예쁜 곳에 있으니 즐거워라고 위안 삼을만한 공간도 없으니, 가격은 더욱 비싸게 느껴졌다.


첫 한 두 번은 단순히 '이 집은 생각보다 별로네'에서 그쳤는데,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이게 내 선택이 실패한 탓 만은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히 핫플 맛집, 알고보면 사실 너무 맛이 없었다! 는 아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브랜드의 오프라인 접점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기도 하지만, 통합적 경험으로 접하던 브랜드들이 제품과 그를 둘러싼 기타 경험을 강제로 분리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이 일은 외식업종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바깥 나들이는 계속해서 제한되고 있고, 기껏 나가서 마주한 공간에서도 마음껏 만지거나 냄새맡기는 힘들어 오감은 더욱 제한된다. 모든 브랜드에게 경험이라는 옷을 발가벗겨 버리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시기가 ‘시장이 정리되는’ 기간이 될거라는 세간의 냉정한 말 속에는 단순히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를 넘어, 그 누구든 과대포장 된 것들은 강제로 벗겨지고 냉철한 평가를 받게 될 것 같다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제품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히길 바라는 건 사실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이 드러나는 과정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핫플’들은 음식만을 팔고 있던 건 아니었다.


공간과 그 공간에서 주어지는 경험, 오감과 더불어 내가 이런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이야 라는 이미지까지 함께 소비하게 해주고 있다. 똑같이 배달로 음식을 경험하더라도, 가 본적이 있는 곳과 들어보기만 했던 곳에서의 배달 경험이 또 다르다. 가 본적이 있다면, 이미 한 번 경험한 기억들이 내 머리속에서 다시 재생되며 분위기 환기를 돕는다. 나는 집에서 먹고 있지만 머리속은 그 곳에 가있다. 배경지식의 중요성이다.


요즘의 똑똑한 소비자들은 익히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경험을 분리해서 냉정히 평가할 수 있는 건 또 아닌 것 같다. 경험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면 나를 자극하는 다른 수많은 감각들을 무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플래그십 스토어나 팝업 스토어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게 하려고 애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전히 의도된 브랜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경험하게 하면, 그 배경지식이 생긴 소비자는 다른 생뚱맞은 곳에서 그 브랜드를 만나더라도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브랜드를 둘러싼 수 많은 경험 요소는 제품에 대한 평가에 ‘편견’을 제공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편견’을 떠나 냉정히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브랜드에게 경험 요소를 디자인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한 때 오프라인 브랜드는 종말을 맞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들이 많았다. 나는 오히려 오프라인 경험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니고 있었다. 브랜드의 온라인 경험과 오프라인 경험의 차이와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글이 길어지니 이 주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는 걸로 남겨놓아야겠다. 다만, 그 경험의 중요성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계기 중 하나로 ‘핫플’의 음식배달이 있지 않나, 라는 '뇌피셜'을 다시 한 번 펼치며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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