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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 줍는 까마귀 Aug 07. 2023

인공지능은 디자이너를 대체할 겁니다,그러나 다는 아니고

인공지능 시대에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1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심정, 위기감 같은


챗GPT, 달리, 미드저니, 어도비의 AI 등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연일 화제입니다. 알파고 이후 꽤 오랜만의 떠들썩함인 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인공지능이라는 것 자체는 새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이제는 제법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의 결과물들을 뚝딱뚝딱 내놓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 있으면 정말로 내 자리를 위협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좀 아찔합니다. 한쪽에선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직업의 순서를 꼽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당신은 괜찮을 거라고 위로합니다. 얘네도 사실은 버블처럼 유행 타다 지나가는 기술일 수도 있다고 생각도 해보다가도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나는 사라지는 쪽일지 아닐지 위태로이 점쳐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로 글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시작에 앞서 저는 디자이너이고,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 원리 (예를 들어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과 같은 내용) 정도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또 다를 수 있고 그래서 반박과 논쟁을 환영합니다. 탐구해 보고픈 주제거든요.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은 대부분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명합니다.  




얼마 전 웹소설계에서는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때문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 소설의 표지 일러스트가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해 그린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작가는 인정 후 사과와 함께 표지를 교체했다고 합니다. 그런 류의 논란에 의견을 보태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 논란은 합당한 지 생각해 볼거리는 많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두려움에서 기인한 거부감으로 생겨나는 반발은 아닐지, 인공지능에 대한 이런 접근태도가 과연 장기적으로 크리에이터들에게 이득이 되긴 하는 걸 지를 포함해서요.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제 멈추거나 되돌이킬 수 없을 흐름이 되었음을 직시하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은 아닐까요?



거울아 거울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존재합니다. 아래는 미국의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짤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 삼키기 힘든 약(매트리스의 빨간 약 비유) 당신이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개발을 잘하지 못하는 것일 확률이 크다.

대충 뼈를.. 엄청 때리는 내용입니다...

변화를 이끌고 있는 선두 집단과 같은 개발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이제는 직무 분류를 기준으로 어떤 직업은 대체되고, 어떤 직업은 대체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어떤 직무든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대체되는 사람으로 나뉠 거라는 게 정설처럼 이야기됩니다. 이 표현이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에게도 가장 잘 맞는 말이 아닐까 해요.

여기서 인공지능을 잘 활용한다는 건 단순히 인공지능 서비스를 다룰 수 있다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에게 잘 질문하고, 요구하고, 내놓는 답의 옳고 그름과 퀄리티를 파악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가 활동하는 영역은 인공지능이 뚝딱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의 문제를 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행스러울만한 이야기는 내가 이 후자의 영역에 속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 영역은  당분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내놓는 결과물은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요.




디테일을 완성하는 무용한 시간의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전에 제가 믿고 있는 개똥철학을 하나 소개해야 합니다.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인 저는 일과 삶에 있어 믿고 있는 개똥철학이 하나 있는데요 : 바로 20%의 디테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80%의 노력이 필요하다입니다. 경영학에서 나오는 ‘롱테일의 법칙’의 재해석 같은 느낌입니다. 롱테일의 법칙은 파레토의 법칙 -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의 80%는 20%의 중요한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는 법칙 - 을 반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머지 80%에서도 20%나 되는 상당수의 매출이 발생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일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저는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좋은 기획이나 디자인과 평범한 것의 차이는 ‘한 끗 차이’ 디테일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 디테일을 채우는 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적당한 결과물이 80% 정도라고 하면, 나머지 20%의 차이를 더 내기 위해서 들어가는 시간은 80% 정도 된다고 느껴요. 그저 평범한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 4배의 노력을 더 해야만 한 끗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를 ‘디테일을 완성하는 무용한 시간의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80%를 완성한 것 같음에도 나머지 디테일을 채워내기 위해서는 4배의 시간, 즉 밀도 낮은 헤맴의 시간들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이 철학을 일하는 데 있어 신념처럼 씁니다. 이 20을 위한 80의 시간이 더디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 그럼에도 이 시간들을 견디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믿으며 버티는 겁니다.



80:20과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대체할 부분, 그리고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80:20의 영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온전히 이 ‘80의 영역’에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80은 ‘보통, 평범함’이라고 말씀드렸죠.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80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중의 취향’입니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내는 기술입니다. 최근의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고도의 지적결과물들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건 그 기반에 빅데이터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즉, 지금까지 사람들이 만들어 쌓아 온 데이터들이 기술적으로 뒷받침되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즉, 인공지능에게 문제의 정답을 찾는 일은 그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해 평균값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바꿔 말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답을 정답으로 인식한다는 거죠. 실제로 국내 한 인공지능 전문가(KAIST AI대학원 최재식교수)분이 한 사내강연에서, 현재 챗GPT가 내놓는 답의 가장 상위의 필터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만한’ 답변이 ‘정확도’ 보다도 우선순위에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한 바 있습니다. 추측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딥러닝 인공지능 서비스는 만든 사람도 온전히 알고리즘을 파악할 수 없는 블랙박스와 같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디자인과 기획의 영역으로 오면 인공지능의 답은 가장 대중적인 취향의 영역을 향한다는 겁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취향의 영역은 이제 인공지능에게 이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디자인 결과물과 전 세계인의 취향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해, 가장 호감을 얻을 만한 걸 누구보다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80을 만들어가는 데 들어가는 20의 시간이 0.000001 정도로 바뀌는 겁니다. 그러니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공지능이 만드는 80의 결과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경쟁력을 갖게 되긴 할 겁니다.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인공지능이 대체 불가능한 영역


그럼에도 나머지 20이 더해진 100짜리 결과물, 즉, 디테일이 다른 창의적인 결과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특별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욕구는 ‘평범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니즈를 계속 만들어 내니까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이 20을 대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근거는 ‘창의적인 것’의 근본적 속성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의성은 기본적으로 기존 것들을 조합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조합이 이전에는 잘 보지 못했던, 약간 뜬금없어 보이는 것 들의 연결일 때 창의적이라 하죠. 그런데 그저 뜬금없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저 처음 보는 조합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면 이는 컴퓨터가 더 빠르게 생성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조합에 창의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죠. 좀 이상하다고 하면, 그저 ‘특이하다’ ‘괴랄하다’ 등의 평을 받습니다. 어쨌든 새롭고 신선한 조합의 결과가 아름답고 이상적인 무언가일 때 우리는 창의적이라고 평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에게는 ‘남들이 잘하지 않는 이상한 조합 중 그 결과가 이상적이고 좋은 것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은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결과물들을 토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찾는 애거든요. 약간 비약이지만 비유하자면 하위 20%의 이상한 결과물과 상위 20%의 신선한 결과물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한 질문에서 또 다른 전문가(MS 아시아연구소 R&D 그룹 부사장 홍샤오원)도 지금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저 ‘스타일 이전’ 일뿐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누군가 많이 했던 것들을 빠르게 흉내 냈을 뿐이라는 거죠. 애플의 스티브잡스 역시 아이맥의 출시 이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적이 있죠. 사람들이 원하는 니즈가 빅데이터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더라도, 그걸 신선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조합하고 정제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인공지능에게 없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봅시다.


그래서 우리가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도 이곳에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나머지 20을 채우는 무용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은, 흔히 디자인씽킹이라고 알려져 있는 수많은 발산과 수렴의 단계의 반복으로 이루어집니다.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조합하고, 그중 최적을 찾기 위해 헤매는 시간과도 같죠. 여기서 발산단계에 들어가는 무한의 시간들을 좁히는 데에는 인공지능이 아주 제격입니다. 엄청난 데이터를 주문하는 대로 빠르게 찾아주는 비서와 같으니까요. 20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데 들어가는 80%의 무한의 시간들을 좁히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세요. 다음번에는 제가 이 80%의 시간을 좁히는데 서비스들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해보고 있는지, 아주 기초적인 시도 수준이지만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Outro : 혹시 찝찝한 단어를 발견한 그대...


혹시 이 글을 여기까지 예민하게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아마도 찝찝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아직’, ‘당분간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표현한 것이죠. 아니, 그렇다면 나중엔 대체될 거라고 보는데 이제까지 거짓말을 한 거냐!라고 하면 그런 사기꾼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만.. 슬프게도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AI지식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개념을 하나 이야기하는데요, 바로 모라벡의 역설 Moravec’s Paradox입니다. 5살 아이에게도 쉬운 일이 컴퓨터에게는 어렵고, 컴퓨터에게 쉬운 일이 인간에게는 어렵다는 인간과 컴퓨터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이에요. 체스 게임의 모든 경우의 수는 컴퓨터가 쉽게 계산할 수 있지만, 5살짜리 아이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처럼 생긴’ 체스 말을 들어 옆으로 한 칸 앞으로 두 칸 옮기게 하는 일은 컴퓨터에게는 수행하기 굉장히 까다로워지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번역기나 챗GPT 등의 언어 관련 인공지능들의 성능이 올라간 계기가 바로 기존의 사람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컴퓨터에게 학습시키려고 했던 접근방식을 버리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IBM의 음성담당 그룹 책임자인 프레드 젤리넥이 “내가 언어학자를 해고할 때마다 음성인식기의 성능이 좋아졌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진 적도 있어요. 그러니, 어쩌면 저의 시각도 그 한 명의 언어학자와 다를 바 없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울한 반전의 outro이지만, 그럼에도 지금으로서의 담론은 의미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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